인천의 가장 큰 문화적 유산은 한국 근대사회 품은 흥미로운 곳… 개항 통해 中·日·서양 문물 들어와
떠돌이·토박이 이분법 시각 반대, 인천의 다양성은 단점 아닌 강점… 市·區 유기적 협동 큰그림 그려야

최원식 인하대학교 명예교수가 인천시 미추홀구 연구실에서 중부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선식 기자
최원식 인하대학교 명예교수가 인천시 미추홀구 연구실에서 중부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선식 기자

"인천의 문화적 성취는 인천 지방자치가 얼마나 잘 진행됐는지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최원식(72)인하대학교 명예교수는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까지 인하대 교수로 재직한 그는 초대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역임하기도 한 지역 문화계의 산 증인이다. 그는 지방자치 30년을 맞아 인천 문화의 30년을 돌아보며 문화와 지방자치의 연관성을 깊게 봤다. 인천의 외형적 위상이 커질 수록 지역 문화의 외형도 커졌지만 중요한 건 내실이라고 강조한다.

지방자치가 시작된 1990년, 소련은 경제 개방·개혁정책이 정치적 개혁으로 확대되면서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정책 간섭 포기와 함께 냉전시대가 막을 내렸다.

냉전시대에는 강대국들 사이에 껴 죽은 바다였던 황해바다가 냉전의 끝을 알리며 화려하게 부활했는데 황해바다의 배꼽인 인천도 지방자치제도 도입과 함께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최 교수는 "인천은 냉전시대가 끝나면서 도시의 성장이 급격히 이뤄진 도시지만 화려한 외형에 걸맞는 내실은 부족한 게 사실이다"며 "단순한 문화적 과제가 아니고 인천이라는 도시가 당면한 과제로 봐야 내실을 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천의 가장 큰 문화적 유산은 한국의 근대사회를 품고 있는 흥미로운 곳이라는 점이다. 개항을 통해 중국과 일본,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외세의 교두보로 굳어진 도시기 때문이다.

인천의 과거 문화는 이때 만들어진 근대 건축물부터 시작한다. 차이나타운을 비롯해 중구청사는 리틀 재팬, 자유공원은 리틀 서양으로 불렸다. 정지용, 이상, 김기림과 같은 모더니스트들이 외국식 건축물에서 외국 음식을 먹으며 국제화를 즐긴 것을 보면 인천에 모던이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 교수는 "현재 우리는 6·25전쟁 이후 다 망가진 것만 보고 있지만 그래도 멋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인천의 근현대사를 비극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때의 모든 것들이 문화적 유산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근대 문화 유산의 파괴를 염려하고 있다. 난개발 속에서 자연파괴이자 근대파괴를 막아야 지역 문화를 지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가장 큰 업적을 ‘근대문화재 분권’으로 보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근대 건축물을 등록문화재로 보존하기 시작했기 때문인데 중구 일대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이제라도 보존될 수 있어서다.

최 교수는 "지방자치도 이를 유의해야 한다. 시 정부와 기초자치단체가 외형에 치중하며 난개발로 자연은 물론 근대 풍경을 파괴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며 "인천의 갯벌과 근대 풍경은 미래의 먹거리로 엄청난 관광자원이기에 그야말로 빛나는 화석들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천은 토박이가 적어 문화의 지역적 색깔이 옅다는 걱정이 우습다는 그는 근대도시는 토박이들로 만드는 게 아니라고 단언했다.

떠돌이와 토박이를 이분법적으로 보는 시각에 결사 반대하는 이유도 팔도에서 모여 만들어진 게 근대도시여서다. 근대라는 건 도시문화이자 인천을 의미한다.

인천은 자유노동이 처음 생긴 곳으로 부두 일감을 찾아 흘러 들어온 떠돌이들이 인천드림을 이룬 도시다.
 

최원식 인하대학교 명예교수가 인천시 미추홀구 연구실에서 중부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선식 기자
최원식 인하대학교 명예교수가 인천시 미추홀구 연구실에서 중부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선식 기자

최 교수는 "뉴욕에 토박이가 없듯이 미국은 온갖 인종이 모여 강대국을 만들었다. 다양성의 협동이 엄청난 폭발력을 가져온다는 걸 알 수 있다"며 "현대사회는 단일성보다 다양성의 시대로 인천의 다양성은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바뀐지 오래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와 함께 시는 시대로, 구는 구대로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노력하는 부분을 유기적으로 크게 모아 큰 그림을 그려 협동하기를 바라고 있다.

특히 인천의 보여주기식 문화가 안타깝다는 그는 지방자치를 살려 동네 사람들이 문화를 누리고 살게 하겠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문화적 성과는 비약이 아닌 축적이기에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축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방자치의 역할도 중요한데 지방의 자율성이야 말로 문화의 축적을 불러 온다.

중앙이 아닌 동네 사람들이 동네를 위한 고민을 한다면 스스로 만족하게 되면서 서울 집중 현상을 없앨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의 서울 집중을 분산할 수 있는 방법도 지방자치에 있기에 지방자치보다 더 높은 수준인 주민자치의 실현으로 지역 문제에 대한 지역민들의 자율적 논의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최 교수는 "인천의 축제가 대부분 비슷한데 음악적으로는 특출난 점만 봐도 답을 알 수 있다. 양풍이 들어온 곳이라 대중음악이 발전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보여주기식 보다는 자생성을 키운다면 모던도시 인천에서 시작된 포크음악이 대중문화의 발전으로 이끈 것 처럼 문화적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류 열풍을 타고 K-문화라는 기회가 한국에 오고 있음을 인지하고 잡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움직이는 세계의 축이 동아시아를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중심에는 한국이 있고, 한국의 중심은 인천이라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이라는 덩치 큰 국가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통일이 절실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동아시아로 넘어 오는 세계의 축을 한국이 잡기 위해서는 통일을 해야 하는데 통일에는 남북화해가 우선적이다"라며 "남북화해에는 인천의 역할이 크고, 지혜로운 역할을 위해서는 내부를 잘 가꿔야 한다. 바로 지방자치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문화적인 면에서의 지방자치를 위한 시민들의 감시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시가 세금을 써 문화행사를 하고 나면 모니터링을 해야 하는데 그게 부족하다. 공연을 한다가 아닌 어떤 공연이었다가 중요한데 지방자치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며 "문화토론회로 인천 문화를 설계해보는 건 어떨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문화의 체계가 잡히고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유정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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