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2월 26일 본희의를 열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 개정안’을 재석의원 240명 중 236명의 동의로 가결하였다. 앞으로는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대화를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한다거나 아이들을 성적 행위로 유인하거나 권유하는 ‘그루밍’ 행위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앞으로는 경찰이 신분을 위장해 수사할 수 있는 특례도 도입이 되었는데, 법원이 허가하는 경우 아동 위장 수사가 가능해질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수사의 방식은 이미 네덜란드 등 유럽이나 영미법 국가들에서는 아동 인신매매나 성매매를 근절하기 위하여 활발하게 활용되는 수사기법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아동·청소년에 대한 그루밍 방지법에 대한 논의는 2007년도 최영희 전 의원이 국가청소년위원회의 위원장에 취임하였던 때부터 이루어져왔다. 그러던 것이 이제 결실을 맺게 되었으며 국민의힘 황보승희 위원의 아청법 개정안이 기본 틀이 되어 여야 합의하여 통과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가 박원순 사태로 혼란을 겪으며 합류하였던 성폭력 대책특위의 성과물이기도 하여 아청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때 감회가 새롭기도 하였다. 여성과 아동의 범죄피해 방지에 대하여 이제는 진보이든 보수이든 모두 중요한 사안으로 여기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여성이나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중대범죄에 포함되지 않아 검사에 의한 수사 개시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중대범죄수사청의 대상사건은 6대 범죄에만 국한되어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과 대형 참사만이 검·경이 합동으로 수사를 벌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마저도 검사의 수사권을 없애야 한다는 논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6대 범죄에 포함되지 못한 아동학대와 112 신고사건은 자치경찰에서, 성범죄는 국가경찰에서 수사를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는 것이 어찌 보면 타당한 일인 것 같기도 하여 이 같은 역할 분담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없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구체적 사건 내용으로 들어가면 검찰의 재수사권 조차 박탈하게 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의문을 같게 된다.

경찰의 초동 대처가 중요하기는 LH의 부패비리 사건이나 여성 아동 대상 사건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자체의 경찰에서 실종사건만으로 처리되었던 고유정 사건이 이런 부류의 사건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고유정 사건의 경우 전 배우자를 만나러 나갔던 피해자의 유가족이, 돌아오지 않는 고유정의 전남편을 찾아 나서게 되면서 사건은 완전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초동수사의 난맥상을 유가족들이 언론사에 제보하게 되면서 제주지검에서 대대적인 재수사에 나섰던 것이 기억난다. 결국에는 전남편 뿐 아니라 청주에서 현재 남편의 자녀까지 살해하였을 수 있음이 밝혀지면서 경찰의 초동수사의 부실함이 만천하에 드러났었다. 이런 문제는 아동학대사건들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정인이 사건이 전형적인 사례인데, 전문인력이 초동단계에서부터 투입되지 못하는 실정에서 진술능력이 떨어지는 피해자를 대상으로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되기는 어렵다. 세 번이나 내사 종결된 상황이 결국 정인이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약자들의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사건들은 대개 전조적인 사건들에 대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게 된다. 배우자나 애인에 의해 살해되는 여성들의 숫자가 연간 백 명을 육박하며 학대로 목숨을 잃는 아동들이 오십여 명에 이른다는 사실은 수사기관의 초동대처가 매우 중요함을 시사한다. 더욱이 이들 사건의 경우 인명피해가 났을 시 즉시 중대사건으로 주목받지 못한 체 은폐될 수 있는 위험성마저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사실 중대범죄는 앞서 언급한 6대 범죄이기보다 생명 손실에의 가능성이 은폐될 수도 있는 여성 아동 대상 강력범죄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무력한 약자가 피해를 입어 수사방향이 틀어진 경우, 뒤늦게라도 이를 바로잡을 기회가 검찰에게도 주어지길 희망해본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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