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문에 난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둘이 쥐어 잡고 함께 울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해서 기사를 읽다보니 몇 줄 읽지 않고도 완전 공감할 만 했다. 기사의 내용인즉슨, 방송인 김원희씨가 자신과 남편에게 함께 찾아 온 갱년기를 겪는 이야기였다. 김씨는 그 기사에서 여러 가지 경험담을 털어 놓았다. 김씨는 최근에 이상하게 자주 체력이 떨어지고, 온 몸은 시도 때도 없이 피곤해지고, 그리고 별 거 아닌 일에도 분노를 참지 못하고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지곤 했단다. 그럴 때는 자주 자기를 누구보다 아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남편도 미워지더란다. 심지어 남편에게 짜증 좀 부릴라치면 소파에 앉아 반려견을 무릎에 올려놓고 노닥거리는 남편은 "엄마 왜 또 저러냐?"하며 뒷담화를 한단다. 갱년기가 찾아 온 거였다. 얼마 후, 두 살 아래 남편과 함께 영화를 보다가 두 사람은 영화에 깊이 몰입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어느 한 장면에서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 바라보며 손을 부여잡고 함께 펑펑 울었다는 경험담을 쏟아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읽으며 이백 배 공감할 수 있었다.

호르몬 분비의 변화로 말미암는 갱년기는 일반적으로 중년에 이르러 소리 소문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몸과 마음의 전환기적 시기를 말한다. 갱년기는 주로 여성들이 경험하는 것 같지만, 왠만한 남성들도 겪는 인생 후반기에 찾아오는 나이듦의 증상이다. 안면 홍조, 심장이 뛰는 증상, 그리고 여기 저기 욱신거리며 오십견(동결견)이라는 정말 반갑지 않은 손님까지 찾아와 짧게는 수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떠나지 않고 눌러 붙어 있게 된다.

갱년기와 함께 찾아온 신체적 증상은 마음의 병까지 얻기가 쉽다. 열심히 미래를 위하여 달려왔지만, 얄궂게도 번거로운 증상이 인생의 황금기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갱년기는 ‘예고도 없고, 전조도 없으며, 심지어 매뉴얼도 없다’고 말한다. 이런 세상에…. 그래도 사춘기를 앓는 십대 아이들의 투정과 거친 끼는 알아주는 사람들이라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자신도 조절할 수 없는 중년이 겪는 이상한 증상은 오히려 부끄러움과 설움이 되어 몸과 마음을 고통스럽게 한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처럼 그렇게 세월은 흘러 여기까지 온 건가?

아니다! 인생은 어쩌다 꺾어져 버린 곡선 그래프가 아니다. 나이듦에 대하여 구차한 변명을 하려는 게 아니다. 100세 인생이라고들 하지 않나? 실제로 내 주변에는 은퇴한 선배님들이 많다. 70이 넘으신 분들이 얼마나 바쁘게 사시는지 모른다. 오래 전, 어거스틴이라는 성인은 인생은 시간을 타고 여행하다가 가장 아름다운 곳, 천국에 이르는 ‘과정’일 뿐이라고 정의했다. 셔윈 눌랜드는 나이듦이란, 아침 마다 나를 찾아와 주는 새날을 맞이하며 그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때라고 말하며, 중년의 때를 인생의 황금기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노안으로 불편한 자신의 눈을 위해 다초점 안경을 쓰고 책을 한 권 썼다. 제목이 ‘The Art of Aging’이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면 ‘나이듦의 예술’이나 ‘나이듦의 기술’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시인 롱펠로우의 ‘모리투리 살루타무스(Morituri Salutamus)’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에는 이런 유명한 싯귀가 있다. "나이듦은 젊었을 때보다 못한 기회가 아니다. 다만 다른 옷을 입었을 뿐. 저녁 황혼이 스러져갈 때, 하늘은 낮에는 보이지 않는 별들로 가득하다." 그뿐인가? 성서에는 나이 드는 것을 가리켜 ‘백발은 영광의 왕관(a crown of splendor)’(잠 16;31)이라고 말했다. 머리 색깔이 희어지는 것은 쇠퇴를 상징하는 늙음이나 추함이 아닌, 경험과 그에 따르는 지혜의 상징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나이듦이란 인생의 지혜가 풍부하여 길을 잃은 누군가에게 길을 안내해 줄 수 있는 지혜자의 자리에 있다는 뜻이다.

오늘도 나는 벚꽃이 눈이 부시게 핀 과천 서울대공원 수변(水邊) 길을 걸으며 머리에 희끗한 화관(花冠)을 눌러 쓴 채 세월이 무색하듯 크게 웃는 사람들의 힘찬 걸음을 따라 걸었다.

차종관 세움교회 목사·성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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