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매향리의 봄

꽃피는 4월,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에는 봄이 가득하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심은 7만 그루의 매화나무가 마을 곳곳에서 꽃을 피운다. 봄의 매향리에서는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색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마을의 지난 고통을 잊지 않고자 쌓아놓은 포탄 더미 주변을 중심으로 매화꽃이 피어나면서 새로운 장관을 만들어 낸다. 마을 길목마다 심어진 매화나무를 따라 걷다 보면 화성드림파크 옆으로 매화나무 군락지를 만날 수 있다. 수천 그루 매화나무가 모여있는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물론, 다른 지역에서도 꽃구경을 올 정도다. 매향리는 매화 향기가 넘치는 마을이라는 이름이 지어질 정도로 매화나무가 많았던 곳이다.

그러나 6·25전쟁이 끝나도 떠나지 않고 남아 사격훈련을 했던 미 공군에 의해 50여 년 동안 매일같이 ‘화생방 훈련’을 견뎌야 하는 마을이 됐다. 매화 향기가 가득했던 마을은 매캐한 화약냄새에 휩싸였다. 하늘에서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지붕 위에는 뿌연 연기가 내려앉았다. 사격장이 들어서고 난 뒤 봄도 찾아오지 않았다. 매일 화약 연기가 머리 위를 맴돌았고 꽃도 예전만큼 피지 않았다.

밥때가 되면 밥 짓는 냄새가 풍기던 다른 마을과도 달랐다. 매일이 전쟁통인 마을은 웃음을 잃었다. 하루하루가 고문 같았던 사람들은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간절한 마음이 통했던 걸까. 1957년 매향리 마을 입구에서 200m가량 떨어진 작은 공터에 교회가 세워졌다. 처음에는 작은 집의 모습이었다. 그래도 일요일이면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제발 이 고통을 끝내 달라’고 기도했다. 기도를 하는 그 순간에도 포탄은 쿵 쿵 소리를 내며 사정없이 떨어졌다.

마을 주민들은 미 공군에 예배 시간만이라도 훈련을 멈춰달라고 요청했다. 다행히 미 공군이 이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매향리는 ‘휴전’ 시간을 갖게 됐다. 하지만 예배시간만 잠시 쉴 뿐 미 공군의 폭격은 교회 건물이 세 번이나 다시 지어질 동안 계속됐다.

교회는 미군과 매향리를 연결하는 창구 역할도 했다. 54년 동안 매향리에 머무르면서 미 공군 사격장을 관리하던 군인들이 교회를 통해 어느새 마을 사람들에 섞여 들었다.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 온 이들은 교회를 지을 때 중장비를 가지고 와 터를 닦아주거나 예배당에 쓸 기름을 지원하는 등 거들기도 했다.

1969년 두 번째 문을 연 매향교회는 2016년 매향리의 어제와 내일을 담은 다양한 조형물 등을 전시하는 ‘매향리 스튜디오’로 다시 태어났다.

꽃향기 가득한 4월의 어느 날, 매향리 매화나무 아래서 장응녀(89·여)·조금옥(65·여)·한승철(74)씨를 만났다.

화약연기 속에 살아온 가족 장응녀·조금옥 씨
화약연기 속에 살아온 가족 장응녀·조금옥 씨

화약 매서워 울고 애들 걱정에 또 울던 시절

사격장 나가고 한풀이하듯 매화나무 심었죠

화약 연기 속에서 살아온 가족 장옹녀·조금옥씨
 "큰 소리 나고 집 흔들리는 것도 고통인데 가장 큰 문제는 화약 연기, 그 매운 연기가 하루 종일 집 주변을 감싸고 있으니까 죽겠는 거지."

화성시 우정읍 매향3리에 살고 있는 장응녀·조금옥씨가 한목소리를 냈다. 장씨와 조씨는 고부간이다. 장씨는 60여 년 전 인천의 한 섬에서 매향리로 이주했고, 조씨는 1980년대 시집을 왔다.

장씨 집에는 매일 안개가 꼈다. 미 공군이 발포한 포탄에서 화약이 터지면서 만들어 낸 연기가 하루 종일 지붕 위를 맴돌았다.

장씨는 "냄새가 말도 못해. 어떤 날은 연기가 매우니까 눈물도 나고 콧물도 나고 훌쩍거리는 게 일이었어"라며 "사격장 나가고 한풀이 하듯이 밭에다가 매화나무 수백 그루를 심었지"라고 돌이켰다.

이어 "매화나무 심고나서는 봄 되면 꽃향기도 나고 여름 가까워지면 매실도 열리고 너무 즐거워"라며 "그냥 일이 없어도 우리 나무 잘 있나 보러 가고 싶다니까"라고 덧붙였다.

조씨는 "살기 좋고 예쁜 마을이라고 들었는데 오자마자 깜짝 놀랐지"라며 "매일 화약 연기가 떠 있으니까 애들 건강도 걱정되고…, 수십 년을 온 가족 걱정하느라 보낸 것 같아"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언제부턴가는 애들도 적응을 했는지 폭격을 해도 놀라지도 않고 화약 냄새도 아무렇지 않아 하더라고"라며 "그때 참 마음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렸지"라고 말했다.

장씨 집은 전투기가 하강했다 상승하면서 사격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때문에 매일 전투기가 만드는 먼지와 사격 시 나오는 화약 연기에 시달렸다. 사격장이 떠나고 마을 주민들은 화약 냄새를 지우고 포탄이 남긴 상처를 덮고자 마을 곳곳에 매화나무를 심었다. 조씨와 장씨도 함께했다.

그렇게 식재된 매화나무 묘목은 어느새 매실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가 됐다. 이 나무들은 마을을 덮고 있던 매캐한 화약 연기를 씻어내고 달콤한 꽃향기를 선물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시간이 날 때마다 매화나무가 있는 곳을 찾아 예쁜 매실이 열릴 수 있도록 나무를 관리한다. 매화꽃이 활짝 핀 이맘때면 마을 꽃구경에 나선다.

"요즘 매실 판로가 좋지 않아서 걱정이기는 한데…, 고민하다가 문득 옛날 생각하면 이마저도 행복한 걱정이구나 싶어. 바람에 실려오는 꽃향기와 곧 만날 매실을 떠올리면 모든 걱정과 고민이 사라지지. 평범한 삶이 참 누군가한테는 간절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느끼고 나니까 하루하루가 소중한 것 같아." 조씨가 며느리를 보며 웃었다.

"지금만 같으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원래는 농사 짓고 물고기 잡는 사람들이 늘 하는 고민인데 이걸 우리는 수십 년 만에, 사격장이 나가서 할 수 있게 된 거니까 작은 것에도 그냥 다 감사해요." 장씨도 시어머니를 보며 웃었다.
 

'주민들의 안식처' 매향교회 한승철 장로
'주민들의 안식처' 매향교회 한승철 장로

폭격소음에 시달리던 주민들 의지했던 교회

평안 찾은 마을사람들 사랑방으로 거듭나길

'주민들의 안식처' 매향교회 한승철 장로
"교회는 미 공군에 도움 받은 것들이 꽤 있지…. 폭격하고 그럴 때는 정말 죽도록 밉다가도 교회 도와줄 때는 또 고맙고 그랬어."

매향교회 장로 한승철씨가 기억하는 당시 매향교회는 서로 감정이 좋지 못하던 마을주민과 미 공군이 유일하게 화합하는 장소였다.

한씨는 "우리 교회가 1957년 처음 지어지고 세 번을 옮겼는데 그중에 2번을 미 공군이 중장비 끌고와서 터도 닦아주고 짐도 옮겨주고 그랬어"라며 "또 예배시간에는 훈련도 안 하고, 나름 기독교 나라 사람들이라고 우리 교인들을 배려해 준 것 같아"라고 돌이켰다.

매향교회는 폭격 소음에 시달리던 마을 주민들이 간절한 소망을 기도하고 의지하던 곳이다. 두 번째 매향교회는 처음 세워진 곳 바로 옆에 지어졌다. 1969년 문을 연 이곳은 132㎡(40평) 터에 200명가량이 예배할 수 있는 규모였다.

한씨는 "두 번째 교회를 두고 전투기 때문에 고도제한이 있어 십자가가 없었다. 포탄에 맞아 지붕이 무너졌다 등 말이 많은데 전부 사실이 아니야"라며 "원래 나무로 만든 지붕이랑 십자가가 있었는데 이게 세월이 흐르면서 나무가 썪으니까 어느 날 무너져 버렸어. 그때 교회가 돈이 어딨어. 그래서 수리를 못하고 두니까 한동안 십자가가 없었지"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교회는 1984년부터 지금까지 운영 중인 세 번째 교회가 문을 열면서 문을 닫았다. 두 번째 교회는 경기문화재단의 경기만에코뮤지엄 사업을 통해 2016년 ‘매향리스튜디오’로 새롭게 태어났다. 매향리 역사를 예술로 표현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이용된다.

세 번째 매향교회에서 진행된 첫 예배 모습. 사진=매향교회
세 번째 매향교회에서 진행된 첫 예배 모습. 사진=매향교회

"미 공군 높은 사람들이 와서 예배도 같이 드리고, 교회에 유리도 달아주고, 추울 때는 기름을 가져와 불도 때주고 그랬지. 교회에서 연이 닿아 결혼한 부부도 있어. 소음으로 괴롭힌 것은 맞는데 교인들한테는 참 잘했어. 마냥 악당은 아니었다는 거야."

매향교회는 여전히 마을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장소다. 일요일이면 주민들은 매향교회를 찾아 예배를 보고, 점심 식사를 하면서 일주일을 정리한다.

한씨는 "매향교회는 힘들었던 그 시절 마을 사람들이 많이 의지했던 곳이라서 의미도 있고 역사도 깊어"라며 "앞으로는 의지가 되는 장소이면서 행복과 평안을 찾은 우리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이 됐으면 좋겠어"라고 전했다.

이금미·양효원기자
사진=김근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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