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일찍이 ‘전쟁과 평화’ 라는 소설을 발표하여 전 세계인들에게 스터디 셀러로 꾸준히 읽히고 있다.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하는 요지는 인간의 순치된 영혼으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야한다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듯 소설에서뿐만 아니라 많은 종교 단체, 선인들이 전쟁이 없는 세상이 되어야 된다고 수없이 역설해 왔다.

전쟁이 없으면 평화는 자연스럽게 존재한다. 그 쉬운 것을 인간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거나 이익 추구의 욕망을 억제하지 못해 종국에는 전쟁이라는 위험한 행위를 서슴없이 한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국지전을 치르거나 전쟁이 발발할 위험성이 있는 나라도 많다. 전쟁을 한다는 것은 자국의 이익을 쟁취하기 위한 욕심이다. 그 욕심이 작게는 개인으로부터 또 나아가 집단에 이르기까지 이해 충돌이 되어 이성적인 자제가 되지 않았을 때는 무력을 사용한다. 그 현상이 지금 끔찍하게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났고 미얀마에서도 내전이 일어나 하루에 수백 명 수천 명이 상해를 입거나 죽임을 당하고 있다. 유사 이래 인간은 끊임없이 싸움을 해 왔다. 미개한 시대에도 부족과 부족, 종족과 종족은 물론 심지어 가족 간의 살인도 많았다. 그 중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신성한 신을 믿고 모시는 종교인들도 전쟁을 일삼아 왔다. 내가 믿는 신에 대한 교리가 상이 하거나, 서로 자신들이 믿는 신이 옳다고 전쟁을 서슴치 않았다. 그렇다면 신의 계시가 전쟁을 치르라고 하는 계시가 있단 말인가. 무신론자들이 볼 때에는 이해되지 않는 모습이다.

불법에서 십계의 어느 한 가지를 나타내는 일순(一瞬)의 생명을 포착해서 거기에 움직이는 모습과 법칙을 생생하게 비춰내는 것을 십여시(十如是)라고 하는데 법화경 방편품에 그 중 여시력(如是力)있다. 여시력이란 생명에 내재하는 힘의 발동을 말한다. 여기서 힘이란 단순한 운동 에너지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갖추어진 종합적인 힘을 말하며 상성체를 갖추고 있는 생명이 운동하고자 하는 발동성이 여시력이다. 그런데 이 여시력을 엉뚱한 곳에 사용한다. 만약에 주먹 힘이 센 사람이 자신의 뜻대로 안된다고 주먹을 아무데나 휘두르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확대된 연장선상이 전쟁이다. 작금에 문제만이 아니지만 연일 매스컴에서 세계 각처에서 해괴망측한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는 기사들이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다. 그것이 마치 일상의 일처럼 여겨져 죽음이라는 것이 별것 아닌 양, 무감각이 되어버렸다고 하면 과도한 표현일까.

다시 말하면, 궁극적으로 인간은 평화를 원하고 있지만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일이 우선이지 그 말을 하면 먼 외계의 일처럼 간과하거나 무관심으로 지나쳐 버린다.

그런데 이 일을 몇 년 전부터 전 세계인에게 부르짖는 종교단체가 있다. 신천지 예수교증거장막 성전에서 평화운동을 하고 있다. 이 종교단체에서 종교간의 전쟁, 국가간의 전쟁을 종식하고자하는 취지의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을 법제화하자며 유엔에 호소하고 있다. 흔한 일 같지만 이 운동에 종교와 종파, 무신과 유신을 떠나 동참해야 한다. 당장 대한민국도 북한과 언제 터질지 모르는 극한 대치상태에 있다. 너무 큰 일 이라고 방관하거나 머뭇거릴 것이 아니라 나부터 평화운동에 동참하여 전쟁과 싸움이 없는 세상이 되었을 때, 국가는 물론, 가까이는 내 가족의 안위가 유지되어 인간이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행복한 세상, 행복한 삶이 햇살처럼 따스하게 비춰지는 날이 올 것이다.

김현탁 한국현대문학연구소 소장,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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