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세월 큰아들 의지하고 살아온 어머니, 작년가을 오토바이 사고로 큰아들을 잃고, 깜박깜박 하다가 얼마 전 요양병원에서 이내 눈을 감으신 어머니, 부모님을 함께 납골당에 모시려고 아버지 묘소를 찾았다. 노란 국화꽃 한 아름 안고 가시덤불 헤치고 찾아간 아버지 산소, 오랜만에 들러서인지 아버지 산소가 보이지 않았다. 정신을 가다듬고 전에 왔던 기억을 더듬어서 다시 둘러 봤더니 우거진 수풀사이로 아버지 비석이 빼꼼히 보인다. 산소 앞에 커다란 청소탱크가 놓여 있어서 그곳이 아닌 줄 알고 지나쳤었는데 뒤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위치를 확인하고 곧바로 돌아와 파묘 날짜를 잡았다.

파묘 전날, 작은오빠 내외와 새벽 4시에 집을 나섰다. 새벽이라 그런지 묘소에 약속시간보다 빨리 도착했다. 포크레인 기사와 일하는 분들이 벌써 현장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파묘하기 전 고인에 대한 기도를 하고, 포크레인 작업을 하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모두 비를 피해 잠시 쉬고 있는데 빗줄기가 약해지면서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풀섶이라 벌레, 모기가 많아 우리는 차 있는 곳으로 몸을 피했다. 그런데 갑자기 포크레인 기사님이 소리를 지르며 우리를 부른다. 현장에 뛰어가 보니 아버지 유골은 보이지 않고, 물만 가득 고인 웅덩이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놀라서 당황스러워 하고 있는데, 현장소장님이 종종 이런 사례가 있다고 하며 한쪽에 길을 내서 물을 빼내고 유골을 건져내야겠다고 했다. 우리는 소장님의 말대로 작업을 계속하고 마지막 뼈 조각까지 다 건져내니 먹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맑아지면서 햇살이 비추었다.

이장 전까지 쏟아진 소낙비는 아버지의 눈물이었던 것 같다. 37년간 홀로 어두운 무덤 속에서 물에 잠겨 지내시다가 유골이나마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 좋으셨던 것 같다. 하늘나래원에서 아버지 유골을 화장 하며 기다리는데, 귓불을 스치는 산들바람이 아버지의 따스한 손길같이 느껴졌다. 보자기에 곱게 싸인 유골함을 받아들고 어머니가 기다리는 추모공원으로 향했다. 추모공원에 도착해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한 공간에 모시고 나니,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고아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남지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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