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메마른 봄. 비로 질척대는 땅을 밟아본 지 오래됐다. 감정조차 메말라버린 느낌이다. 비가 많이 오지 않은 대구 지역이 특히 그러하다. 그런 가운데 도처에 꽃나무들이 환하다. 개나리, 매화, 살구, 벚꽃으로 이어지는 봄의 장엄이 걷잡을 수 없이 펼쳐진다. 따뜻한 햇빛은 꽃가지들을 야생적으로 치켜올린다. 겨울을 견뎌낸 신비하고도 매력적인 모양의 쑥과 달래, 씀바퀴, 질경이, 냉이들과 입맛으로 해후하는 게 기적 같다. 시각이 미래적 전망을 갖는다면, 미각은 추억과 그리움의 원천인 듯하다. 그런 것들로 봄은 어지럽게 전개된다.

날이 풀리니 절로 잦은 외출. 봄기운으로 기분은 들뜨지만, 괜히 혼자 떠돌아다니는 듯해서 외롭다. 이상하다. 꽃나무 아래 선 연인들에게 드리워진 꽃그늘의 살랑댐이 유독 환하지만, 밀착한 그들이 위험해 보인다. 이상하지 않은가? 공포는 허전하고 결핍으로 수런댐의 그런 모든 것들을 나는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역병의 그늘이 여전히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맞는 세 번째의 봄. 더욱 위험해진 봄이다. 조심해야 한다. 봄이 숭고하다면, 역병 너머로 의식하는 환한 봄의 기대 때문이리라. 그러나 여전히 서로 살갗이 닿는 걸 거부하고, 일정한 띄우기로 거리두기를 한다. 하지만 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감염의 기운은 더욱 세져서 이젠 도처에 확진자들이고, 그 가운데서 꽤 많은 죽음들이 매일 보고된다.

아아, 머위와 상추, 돈나물과 두릅의 개성적인 잎들이 저마다의 향기를 뽐내며 솟아올라와 불현듯 사라졌던 미각들이 둘러앉은 밥상머리에서 되살아나는 것처럼, 기적같이 피어나는 봄의 생기를 함께 손잡고 흔쾌히 맞을 수 있다면.

#우울
그런 봄이니 다 각자대로 해체되어 저마다의 울타리 안에서 우울하다. 코로나 이후 노인 우울증 환자가 종래의 배로 불어났다는 통계를 본다. 가족 간 만남마저 금해지고, 노인정도 문을 닫은 지 오래다. 각종 행사와 집회가 힘들어지면서 외로움은 나날이 배가된다. 공원 등지에서 산책하는 노인들이 유독 많아지고 있단다.

통계청이 지난달 15일 발표한 ‘국민 삶의 질 2021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우리 국민의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위기 상황에 도움 받을 곳이 없는 사람의 비율인 사회적 고립도는 최고치에 이르렀다. 불신과 고립이 심화된 사회.

확진자들의 삶은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운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코로나19 대면 추적조사에서 확진자 10명 중 6명 이상이 1년에서 1년 9개월이 지난 시점에서도 후유증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대 김신우 교수팀의 보고서 내용이다. 후유증의 증상은 건망증, 수면 장애, 피로감, 불안, 관절통의 순이었다. 집중력 저하와 탈모 증세도 보였다. 롱 코비드 현상이다. 몇 달 동안 미열이 계속되는가 하면, 말을 더듬거나, 심장이 크게 뛰어 숨을 몰아쉬는 경우도 있단다. 이런 증세가 장기간 계속되면 다른 장애로 발전할 수도 있어서 환자들은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병원을 전전하면서 치료에 애를 쓴다. 그러나 아프다는 고통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 게 현실이어서 막막하기만 하다. 롱 코비드 단톡방에서 정보를 주고받으며, 치료에 도움을 얻기도 한다. 모진 안간힘이 아닐 수 없다.

국민 중 반이 코로나를 앓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3월 한 달에 9천 명 가까이 사망했다. 그런 가운데 코로나가 엔데믹으로 풍토병이 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렇다면 후유증의 피해도 장기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피해자는 물론 연구자들이 롱 코비드에 관한 다각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확진자들의 후유증 추적이 이루어지면서 보다 적극적인 관리를 위한 표준화된 정밀 자료 확보가 시급하다는 요구도 많아진다. 아픔을 이해하고 공유하면서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기구 건립 희망도 늘어난다.

#실종
재난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님을 올봄은 또 잘 보여준다. 올 들어 SNS를 뜨겁게 달군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가 망한다"라는 소문. 그래, 자연계에선 지금 수상하기 짝이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벌들의 실종사태’다. 사람이 붓으로 직접 농장에서 꽃가루받이를 하는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벌사람이라고도 하는데, 중국의 스촨성에 벌들이 사라짐에 따라 매년 봄이면 사람이 직접 꽃을 수정하는 일들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게다.

올들어 꿀벌들이 사라졌다는 양봉업자들의 보고는 전라도 남부지방과 경남 창녕, 경북의 각 지역은 물론 제주도에서도 잇따라 나왔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올 초부터 전국적으로 60~70억 마리의 꿀벌이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이런 일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 추세란다.

‘이상기상-면역약화-병해충-이상기상’이라는 ‘악재의 연결고리’가 초래한 현상이다. 기후 변화와 해충의 대 발생, 신종 바이러스 등의 복합적인 작용의 결과다. 코로나 역병처럼 병 든 지구의 후유증인 셈이다. 벌이 멸종하면 인류는 4년을 못 넘기고 따라서 멸종한다는 아이쉬타인의 무시무시한 말이 떠오른다. 인간이 기르는 작물 1천 500종의 3분의 1이 꿀벌의 수분작용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앗 메뚜기가 없다"라는 정현종 시인의 시구 ‘들판이 적막하다’가 떠오른다. 황금빛 가을 들판에는 ‘눈부신 것 천지인데’ 갑자기 메뚜기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적막감을 느낀다. 인간의 탐욕으로 자연이 파괴되어 나타난 공허의 현상이다. 어찌 메뚜기뿐이겠는가? 꿀벌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조차 겁난다.

이하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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