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근무하는 구급대원 A씨는 요즘 들어 잠을 못 이루는 날이 잦아졌다. 6·1 지방선거 시즌이 다가오면서 시내 곳곳에 걸린 선거 현수막이 불러온 트라우마 탓이다.

때는 2019년 9월 2일 새벽 1시 36분께. A씨는 화성시 소재 한 음식점에서 낙상사고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3m 높이에서 떨어졌다는 요구조자의 상태를 점검해 보니 정상 혈압보다 낮게 측정됐다. 낙상사고이기에 어떤 부상을 입었을지 몰라 수원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로 이송하며 정맥주사를 놓던 순간 A씨의 눈앞이 번쩍였다.

술에 취한 요구조자가 욕설과 함께 A씨의 얼굴을 때린 것. 하필 얼마 전 라섹수술을 한터라 고통은 심각했다.

요구조자에서 가해자로 변한 B씨는 범행 당시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부인했다.

이듬해인 2020년 2월 1심 재판부는 가해자 B씨의 폭행이 고의 없는 행위라거나 심신상실 상태에서 이뤄진 무의식적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 소방기본법 및 119구조·구급에관한법률 위반으로 벌금 100만 원형을 선고했다.

비록 가해자로부터 진정 어린 사과를 받지는 못했지만 재판부의 판단에 어느 정도 보상을 받았다고 A씨는 생각했다.

그땐 몰랐다. 법정공방이 수년간 이어질 줄은. B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소송은 결국 대법원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들어서야 대법원은 B씨의 상고를 기각했고, 지리한 법정 다툼은 끝을 맺었다.

그러나 A씨의 악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구급대원 폭행으로 전과가 생긴 B씨가 국민의힘 화성시의원 예비후보로 출마하면서다.

시내에 걸린 B씨의 홍보 현수막을 보는 순간 A씨에게는 수년간 법원을 오가며 쌓인 트라우마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A씨는 "3년이라는 시간동안 재판을 이어가면서 단 한 번도 B씨에게 사과를 받아본 적이 없다"면서 "많은 출마자들이 전과 이력을 가지고 있다지만, 정말 국민을 위해 일하는 우리같은 구급대원을 폭행한 사람이 그 사실을 덮어두고 출마할 수 있었는지 묻고 싶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같은 A씨의 트라우마에도 B씨는 여전히 의식이 없던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입장이다.

B씨는 중부일보와 통화에서 "대법원까지 가서 확정된 부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억이 전혀 없던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찾아가 뵙고 (사과를)하겠지만, 2차 가해로 비춰질까봐 그것도 조심스럽다"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경기도당 관계자는 "현재 기초의원 예비후보에 대한 서류심사가 진행 중이고, 해당 사안은 공천심사위원회에 자료를 추가 제출했다"고 말했다.

황영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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