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Story

다문화인 200만 시대다. 주위를 둘러보면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관념은 아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중부일보는 이에 대한 간극을 좁히고자 ‘다문화人Story’를 연재한다. ‘다문화人Story’는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다문화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소개하고 우리 사회의 변화를 함께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전쟁을 겪으며 힘들어하는 우크라이나 동포들을 생각하면 먹는 것조차 미안해집니다"

17년 전 우크라이나에서 한국으로 왔다는 드미트리 고루코(Dmitry Gorulko) 씨는 힘없는 목소리로 기자에게 말했다. 그는 같은 우크라이나 출신 아내와 수원에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세 딸을 두고 있는 가장인 만큼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는 등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 2월 24일(현지 시각)부터 그의 주말은 완전히 달라졌다. 매주 열리는 러시아 대사관 앞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행 버스에 오르는 게 일상이 됐다. 자신의 나라를 침공한 러시아 정부를 규탄하기 위해서다.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을 규탄하는 티셔츠를 입고 집회에 참석한 드미트리 고루코 씨. 사진=이세용기자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을 규탄하는 티셔츠를 입고 집회에 참석한 드미트리 고루코 씨. 사진=이세용기자

◆ "부차 학살은 명백한 전쟁 범죄(War Crime)…푸틴은 뉴 히틀러와 다름 없어"
지난달 3일부터 시작된 러시아 정부 규탄 집회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2차례로 진행된다. 두 달 가까이 매주 열리고 있지만, 집회 참가인원은 수백 명에 달한다. 지난 10일에도 집회는 어김없이 열렸다.

드미트리 씨는 "러시아군은 민간인들의 손발을 묶고 머리에 총을 쐈다"며 "민간인을 학살한 러시아군의 만행은 명백한 전쟁 범죄이고, 이것이 우리가 푸틴을 ‘뉴 히틀러’라고 부르는 이유다"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집회에 참석한 우크라이나 출신의 한 여성은 "부차(Bucha: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도시)에 진입한 러시아군이 수많은 여성을 성폭행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불에 태웠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군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어린 소녀를 강간하는 등 짐승만도 못한 행동을 하고 있다"며 "민간인 중에서도 가장 약한 여성과 아이를 상대로 몹쓸 짓을 하는 것은 전쟁 범죄를 넘어 우크라이나의 문화와 정신을 없애려는 것"이라고 분개했다.

재한 우크라이나인 페이스북 그룹 계정.
재한 우크라이나인 페이스북 그룹 계정.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은 고국의 전쟁 상황을 알리기 위해 온라인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소셜미디어나 지인 등을 통해 각자 파악한 정보를 페이스북 계정(Ukrainians in Korea)을 통해 공유하며 세계인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전하고 있다.

페이스북 계정 운영자 크리스티나 마이단추크(Khrystyna Maidanchuk) 씨는 "당초 한국 내 우크라이나인들의 정보 교환을 위해 만들었지만 현재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관련 정보를 주로 다루고 있다"며 "특히 한국 언론인들에게 전쟁과 관련된 정보를 전달하고 국내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후원금을 모집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하는 우리의 활동이 전쟁을 멈추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지난 10일 진행된 러시아 규탄 집회 참석자들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도시 부차(Bucha)에 자행된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을 성토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드미트리 고루코
지난 10일 진행된 러시아 규탄 집회 참석자들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도시 부차(Bucha)에 자행된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을 성토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드미트리 고루코

◆ "우크라이나 돕기 위한 노력 감사... 그러나 필요한 것은 무기"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기 위한 세계 각국의 다양한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대부분 유럽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도 이에 동참 중이다.

서울도서관 외벽에는 우크라이나 평화를 기원하는 대형 글판이 걸렸고,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긴급구호자금 5만달러를 전달했다. 대구시는 도심 곳곳에서 평화 기원 메시지를 담은 미디어 파사드를 하루 100여차례 송출하고 있고, 광주 광산구와 광산시민행동은 우크라이나 평화 기원 성금 1억여원을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 전달했다.

경기도의 경우 수원시가 우크라이나 국기 색을 띤 빛을 매일 밤 수원 화성에 쏘는 ‘평화의 빛’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또 안산시는 원곡동에 위치한 외국인 주민지원본부에 모금함을 설치하고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기 위한 행사를 펼치고 있다.

지난 10일 진행된 러시아 규탄 집회 참석자들이 거리행진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페이스북 Ukrainians in Korea 
지난 10일 진행된 러시아 규탄 집회 참석자들이 거리행진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페이스북 Ukrainians in Korea 

하지만 반전집회 참가자들은 이러한 노력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보다 실질적이고 강력한 조치를 원하고 있다.

벨라루스 출신의 알리세이 이반이누코비치(Aliaksei Ivaniukovich) 씨는 "한국은 러시아와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와의 경제 교류를 멈춰야 한다"며 "‘친 러시아, 친 푸틴’ 국가로 알려진 자신의 나라와도 경제 협력을 이어가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모국인 벨라루스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세계 평화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국적의 고려인 3세 비 드미트로(Vi Dmytro) 씨도 "우크라이나를 지키는 것은 단순히 한 나라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민주주의 국가를 지키는 일"이라며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한 국제 사회의 움직임에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길 호소했다.

이세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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