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공간에서의 심리적 지배가 인간의 이성을 얼마나 마비시킬 수 있는지는 소위 ‘n’번방 사건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수많은 비대면 상호작용도 타인의 정신을 지배하며 합리적 분별력을 잃게 만들어 성범죄의 피해자로 만들었던 것이 바로 ‘n’번방 사건이다. 물론 개인정보를 빼내어 사회적 존재 가치를 상실하게 만들겠다는 심각한 협박이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최근 필자는 인천지검의 전문가 참여 요청으로 용소계곡 살인사건의 수사기록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다시 한 번 느낀 것이지만 인간이란 결코 합리적이지만은 않은 존재이며 비행집단의 부당한 압력은 개인에게 비판적 이성을 상실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리 일류대를 나오고 대기업에 근무하는 건강한 청년이라 하더라도 종국에 가서는 정신마저 집단압력에 지배당하여 죽을 길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깊은 물속으로 뛰어들고 말았다. 매우 희귀한 사례이다.

일찍이 심리학에서는 부당한 집단압력에 대한 개인의 굴종 실험을 실시했던 적이 있었다. Asch나 Milgram 실험들이 바로 그것인데, 사회심리학자들이 근본적으로 묻고 싶었던 점은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고유하냐, 즉 강건한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세계대전 중 부당한 지시에 굴복하여 선량한 유태인을 수없이 많이 학살한 독일군은 애당초 악마로 태어났던 것은 아니었다. 심리학자들은 더 나아가 어떤 조건일 때 자신이 소속한 집단의 부당한 압력에 더 저항할 수 없는 것인지도 실험하고자 하였다. 결과를 살펴보자면 외부 구성원과의 사회적 비교가 불가능할 때 인간의 60~70%는 부당한 집단 요구에 쉽게 굴종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곰곰 생각해보면 이런 부당한 집단 굴종은 사이버공간 속에서 더 쉽게 발생한다. 소위 댓글들은 심리학 실험 속에서의 동조경향성을 그대로 반영하는데, 댓글쓰기를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따라 표현의 정도가 점점 더 고조되어 상승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류에 반하는 의견을 표명하는 댓글 작성자에 대하여서는 비대면으로 결속한 구성원들이 비난을 하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뜻을 꺾지 않는 경우에는 소위 ‘현피’, 실제로 만나 대결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검수완박’법이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하리란 것은 예상된 일이었다. 수많은 단체와 전문가들이 반대의견을 표명하였지만 그와 같은 의견이 반영되기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다만 신기한 일은 그래도 표결 전에는 이번에 개정되는 형소법의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는 소신파 여당 의원들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표결과정에서 이들은 여지없이 당내 분위기에 동조하였다. 정의당 의원 여섯 명 역시 예외 없이 검수완박 법안들에 모두 찬성하였다. 이번에도 역시 다양한 의견의 표명이란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나 보다. 반면 소신대로 투표한 민주당 탈당자 양향자의원에 대하여서는 문자폭탄이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는 소식이다. 집단 규범에서 벗어난 구성원에 대하여서는 피도 눈물도 없이 비난을 한다. 이 같은 비난은 결코 합법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집단정체성에 대한 도전은 집단의 존립에 위험을 초래하게 될 것이란 막연한 불안감을 촉진하는 듯하다.

검경 수사권 조정 후 변호사의 70% 이상이 수사지연으로 약자들의 사건이 잘 처리되지 않고 있음을 보고하였다. 용소계곡 사건처럼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라면 더욱 경찰의 내사종결 판단을 뒤엎기가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에 대한 충분한 대책도 없이 다시금 검찰의 수사권을 제한하려는 시도에 걱정을 금하기 어렵다. 용소계곡에 몸을 던졌던 윤씨의 억울함이 이제는 더욱 쉽게 외면당할 수 있을 것 같아 조바심이 난다. 국회는 하루빨리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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