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과 숭렬전
광주시의 대표적인 문화재로는 ‘남한산성(南漢山城)’이 있다. 조선 인조(1595~1649)는 병자호란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왔는데, 어느 날 인조의 꿈에 온조왕이 나타나 청병의 기습을 알려주자 인조는 온조왕의 영혼을 기리고자 이 곳에 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자 온조왕이 또 한번 인조의 꿈에 나타나 인조의 신하를 거두어 가겠다고 했는데 그 꿈을 꾼 다음 날 남한산성을 축성한 이서 장군이 병사했다고 한다. 이에 이서 장군 또한 이 사당에 배향되었는데 이 사당이 남한산성 ‘숭렬전(崇烈殿)’이다.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온조왕과 남한산성의 이 연결고리는 사실 조선 초기부터 언급됐었던 화제였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서 남한산성을 백제 고성(古城)이라고 언급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뜬금없이(?) 인조가 온조왕의 꿈을 꾸면서 둘 사이의 연결고리가 다시 부각되었고, 남한산성이 백제의 초기 도읍지라는 이야기는 최근에도 심심치 않게 회자되고 있다.
 

남한산성에서 발굴된 신라 기와 와적층
남한산성에서 발굴된 신라 기와 와적층

◇백제의 초기 도읍지, 위례성
그런데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백제의 초기 도읍지는 ‘위례성(慰禮城)’이다. 이와 관련한 언급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BC18년 온조가 한산(漢山)에 이르러 살 곳을 바라보다가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였다

②BC6년 온조가 순행을 나가 한수(漢水, 지금의 한강)의 남쪽을 보니 땅이 기름져 이 일대를 도읍으로 정하였다.

③371년 도읍을 ‘한산’으로 옮기다.

이 기록만 놓고 보면 백제는 초기 도읍지를 여러 번 옮겼던 걸로 보이며 실제로 이에 대한 다양한 학설들이 쏟아져 나왔었다. 다만 현재는 하북 위례성에 머물던 온조가 하남 위례성으로 천도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일까?

남한산성에서 보이는 서울 전경
남한산성에서 보이는 서울 전경

◇위례성은 어디에 있었을까?
삼국사기에 언급된 위례성의 입지에 대한 설명, 미추홀에 대한 언급, 한수를 지금의 한강으로 보는 관점에서 볼 때 위례성이 한강 유역의 어디 쯤에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하남(舊 廣州) 춘궁동 유적 등이 언급되기도 했으나 발굴 결과 신라 유물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확인되어 지금은 폐기된 학설에 가깝다.

현재 학계에서 가장 지지를 많이 받고 있는 후보지는 풍납토성이다. 풍납토성이 위례성 후보로 언급된 주된 이유는 고고학 발굴조사에 의해서이다. 성곽 규모가 왕성 후보지에 걸맞고 이 곳에서 출토된 백제 유물들이 질적으로도 우수하며 양적으로도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인근에 위치한 석촌동 고분군이 왕릉급 무덤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 한다.

그런데 풍납토성을 하남 위례성으로 비정하고 이후 천도를 했다고 가정할 경우, 풍납토성의 남쪽에 백제의 왕도로 추정할만한 유적이 현재로선 마땅한 곳이 보이질 않는다. 이런 탓에 초기 위례성은 하북에 있었으며 이후 하남의 위례성으로 천도했다는 학설이 지지를 얻고 있다.

문제는 하북 위례성과 한산의 위치 비정이다. 하북 위례성 후보지로 임진강 유역, 북한산성(삼각산) 등이 언급되었으나 의견이 분분하다. 한산 또한 그 위치가 확실치 않다. 여기서 한산의 위치 비정과 관련하여 남한산성이 언급된 바 있다. 그런데 이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들이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무시하고 근초고왕 대 실질적인 역사가 시작된다는 주장에 기인한다. 이들은 광주를 위례성, 남한산성을 한산에 비정하였다. 그러나 남한산성의 험준한 입지는 결코 한 나라의 왕도로서 적합하지 않다. 무엇보다 남한산성 행궁터 하궐지에서 대량의 신라 기와층을 동반한 신라 건물지가 발견되었고, 일부 성벽구간에서 신라 축성기술이 반영된 석축성벽도 확인되었다. 학계에서는 남한산성을 신라가 당나라와의 항쟁을 대비하여 쌓은 주장성(晝長城, 672)으로 보고 있다.

결국 백제의 초기 도읍지에 관한 문제는 풍납토성을 위례성으로 전제하면서도 이로 인해 하북 위례성과 한산의 위치 비정에 관해서는 확실한 정설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 그 본질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백제의 초기 왕도가 풍납토성일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매우 어렵다.

박찬호 광주시청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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