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Story

다문화인 200만 시대다. 주위를 둘러보면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관념은 아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중부일보는 이에 대한 간극을 좁히고자 ‘다문화人Story’를 연재한다. ‘다문화人Story’는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다문화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소개하고 우리 사회의 변화를 함께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중부일보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인도 출신 배우 가우라브 씨. 사진=김도윤기자
중부일보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인도 출신 배우 가우라브 씨. 사진=김도윤기자

"어디서 본 듯한데..." 기자가 인도 출신 배우 가우라브 샤르마(Gaurav Sharma) 씨를 보고 든 생각이다. 청바지와 흰색 스웨터 차림으로 중부일보 스튜디오에서 들어선 그는 방송을 통해 본 모습보다 더 훤칠했다. 현재 MBC 예능 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고정적으로 출연하고 있는 가우라브 씨는 소위 ‘잘 나가는’ 외국인 배우다. 영화, 드라마, TV 예능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출연하면서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다.

◆ 영화 ‘부산행’ 보고 한국행…친절한 한국사람들에게 반해

가우라브 씨는 2017년 친구와 함께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그가 한국에 온 이유는 영화 ‘부산행’ 때문이었다. 가우라브 씨는 "영화에서 슈퍼맨처럼 좀비를 맨주먹으로 제압하는 마동석을 보고 팬이 됐다"며 "영화를 계기로 한국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한국행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도인들은 대부분 중국이나 일본 영화를 즐겨보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선 잘 모른다"며 "삼성, LG, 현대 같은 글로벌 브랜드도 일본 건 줄 알았는데 영화를 계기로 한국 브랜드라는 걸 알게 됐다" 했다.

가우라브 씨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발전된 나라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더욱 특별하게 느끼게 된 건 사람들 때문이었다"고 했다. 특히 친절함에 감동 받았던 경험담을 풀어내며 한국인들에 대한 애정을 깊게 드러냈다. 그래서인지 그는 대다수 외국인 배우들이 강남이나 이태원 등에 거주한 데 비해 경기도 수원에 거주하며 방송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그 이유가 사람 때문이라며 "한국인 친구들과 가까운 곳에 살고 싶어 수원을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촬영 현장 모습. 사진=가우라브 샤르마 제공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촬영 현장 모습. 사진=가우라브 샤르마 제공

◆ 한국에서 배우로 살고 싶다

그는 첫 번째 방문 때 약 두 달간 머물며 전국 각지를 여행했다. 이후 인도로 돌아간 그는 다시 한국을 찾았다. 좋았던 기억 때문이었다. 두 번째 방문지는 제주도였다. 여행만 즐기다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우연히 접한 모델 구인 광고가 그의 인생 항로를 배우로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

가우라브 씨는 광고를 보자마자 작성자에게 연락해 어떻게 하면 모델 일을 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유년 시절에 인도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한국에서 방송활동을 하고자 하는 외국인은 E-6 또는 C-4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가우라브 씨가 가진 비자는 단순 여행 비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때 비록 캐스팅은 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연기자로 활동하기 위해 뭘 준비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렇게 인도로 발길을 돌려야 했던 가우라브 씨는 약 6개월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어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숭실대학교 어학당에 입학해 공부에 매진하던 그는 배우의 꿈을 잊지 않고 각종 오디션에 틈틈이 참가했다. 그러던 중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도 오디션을 보게 됐다. 가우라브 씨의 연기를 본 제작진은 ‘E-6비자’를 받아오면 출연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마침내 한국에서 연기자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었다.

MBC 예능 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출연한 가우라브 씨. 사진=가우라브 샤르마 제공
MBC 예능 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출연한 가우라브 씨. 사진=가우라브 샤르마 제공

◆ 인종 차별에 힘든 순간도… 지금은 피부색 때문에 오히려 활발하게 활동 중

그는 현재 MBC 서프라이즈 연기자로서 매달 2~3회 정도 고정 출연하고 있다. 이 외에도 각종 예능 프로그램이나 영화, 드라마에 조·단역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지금이야 외국인 배우로서 주목을 받고 있지만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특히 오디션을 보러 갈 때마다 느끼는 인종차별은 커다란 벽처럼 느껴졌다. 그는 "얼마 전까지 한국의 방송 콘텐츠 제작사들은 외국인을 캐스팅할 때 백인이나 흑인을 선호했다"며 "대부분 미국 스타일의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고 했다. 가우라브 씨는 "최근에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며 "제작사들이 중동이나 동남아를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펼치는 데 집중하고 있어 나 같이 갈색 피부(Brown skin)를 가진 외국인의 활동폭이 넓어졌고 인종차별 경험도 현저히 줄었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정작 그가 느끼는 문제점은 인종차별이 아니라 외국인 배우에 대한 낮은 처우에 있었다. 피부색과 상관없이 외국인 배우들이 수준 이하의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에이전시(대행사)들이 취하는 수수료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가우라브 씨는 "현재 한국에는 방송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이 많다 보니 이를 악용하는 에이전시들이 있다"며 "출연료를 온전히 지급하지 않거나 싼 출연료로도 섭외 가능한 외국인을 출연시킨 뒤 차액은 모두 가져간다"고 토로했다.

이 문제를 대하는 외국인 배우들의 태도에도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터무니없는 출연료에 응하는 일부 외국인 배우들도 문제"라며 "당장은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겠지만 연기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결국 캐스팅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한국 전통문화 관련 행사에 참석한 가우라브 씨 모습. 사진=가우라브 샤르마 제공
한국 전통문화 관련 행사에 참석한 가우라브 씨 모습. 사진=가우라브 샤르마 제공

◆ "돈, 유명세 얻으려 연기하는 것 아냐…한국에 인도 문화 알리고 싶어"

인도의 방송 산업은 ‘발리우드(인도의 도시 지명 ’봄베이‘와 미국 영화시장의 중심인 ’헐리우드‘의 합성어)라고 불릴 정도로 큰 시장을 가지고 있다. 인도에서 배우로 성공한다면 한국에서보다 더 큰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 굳이 왜 인도보다 시장이 작은 한국에서 배우 활동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기자의 질문에 가우라브 씨는 "나는 돈을 벌거나 유명세를 얻기 위해 살지 않는다"며 "항상 도전적이고 열정적인 삶을 살고 싶다"고 답했다. 그는 "한국에서 배우로 활동하는 것은 나에겐 큰 도전이고 이를 통해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며 "특히 주변 사람들이 내 방송 활동에 자랑스러움을 느끼고 무엇인가를 해냈다고 말해줄 때 큰 기쁨을 얻는다"고 했다.

가우라브 씨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인도인 배우로서의 다짐과 목표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그는 "나는 언제나 인도를 대표한다는 생각으로 한국에서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며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사람들은 나만 질타하는 게 아니라 인도 사람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인도인에 대한 좋은 인상과 나의 목표를 위해 배우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인터뷰를 마친 가우라브 씨는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세용기자/

※ 한국말이 서툰 가우라브 씨를 위해 실제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됐음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