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선 넘어 경기도 최북단의 마을
해방 이후 남북의 분계선이었던 ‘38선’을 한참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강원도 철원군청보다도 더 위에 포천시 관인면이 있다. 삼엄한 군사지역일 것으로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비록 농로 하나를 경계로 군사지역인 신철원과 인접하고 있지만, 관인은 따뜻한 볕이 드는 풍요로운 농촌의 풍광을 간직한 마을이다. 철원군의 동송읍과 포천시의 관인면, 영중면, 영북면 등 일명 철원평야로 불리며 무수한 곡식이 자라나는 곡창지대로 ‘6.25-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각축전의 주요 무대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중 남한에 의해 수복된 관인을 빼앗긴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은 원통하여 보름을 통곡했다는 설이 전해질 정도다.

한국전쟁 이후 황해도 지역의 피난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염원한 실향민들은 수복지역인 관인면을 정착지로 삼았다. 당시를 기억하는 마을 어르신들의 관인면 정착기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척박하고 극적이다. 이 지역에 주둔 중이던 미군 40사단의 도움을 통해 마을이 조성되었는데, 미군이 사용하고 남은 천막과 나무기둥을 이용해 임시 주거지를 조성하고 인접한 불모지를 농토로 개간했다고 한다. 전쟁의 상흔을 극복한 1960~70년대의 관인을 기억하는 주민들은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활기로 넘쳐나던 그때를 생생히 증언한다. 날마다 문전성시를 이루는 장터의 풍경이며, 중고등학교 전교생이 모이면 운동장에 발 디딜 틈도 없었던 이야기로 가득하다.

◇쇠락한 마을, 그러나 지속가능한 공동체
관인의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거리는 조용하고 잔잔한 바람은 비료 냄새를 가득 싣고 코끝을 자극했다. 가게들은 대부분 비어있거나 살림집으로 변해버린 모습이다. 그런 가운데 눈에 들어온 것은 손으로 깎아서 만든 간판들의 흔적이다. 뜯어지고 빛바랜 글자들 사이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오래됨과 친숙함이 주는 다정하고 따뜻한 감정은 동시대를 살며 마모돼 날카로워진 감정을 무디게 하는 힘을 지닌다. 60~70년대가 멈춰버린 마을의 풍경은 자체가 살아있는 박물관이며, 도시의 시간성과 역사를 내포하는 중요한 사료이기도 하다. 과도한 물질문명과 소비사회가 부추긴 지금의 도시가 천편일률로 찍어낸 마천루라면, 관인의 그것은 꾸준히 살아 숨 쉬는 유기체적 마을의 모습으로 다양성의 보루이자 ‘오래된 미래’이다.

마을의 쇠락이 방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관인은 골목 어디를 가도 쓰레기가 떨어져 있거나 훼손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사람 손길이 닿는 마을 곳곳에는 삶의 터를 아끼고 사랑하는 주민들의 애정이 넘친다. 오히려 수도권 도심에서 나타나는 버려지고 노후화된 마을의 경우처럼 공동체 의식의 결여나 불특정적인 외부요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쇠퇴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관인의 경우 오랫동안 지속한 공동체의 참여와 화합의 문제가 아닌 산업기반 시설과 일자리 부족으로 인한 젊은 세대의 이탈과 기성세대의 초고령화로 인한 생산인구손실이 가장 큰 문제로 보였다.

◇관인에서 문화재생을 꿈꾸다.
관인면과의 인연은 2017년 여름부터였다. 경기문화재단이 경기북부의 쇠락한 지역 중 대상지를 선택해 문화재생 연구를 추진하던 중 관인면의 문화와 공동체에 대한 연구를 의뢰받으면서다. 2017~2018년 2년간 현지조사와 참여관찰을 통해 관인면의 역사적, 환경적, 문화적 도시재생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었으며, 주민 공동체의 적극적인 참여로 ‘관인문화재생연구회(회장 조춘희)’를 창단하게 되었다. 선행한 연구사업을 통해 2019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의 ‘문화마을’ 3년 장기사업에 선정되기에 이른다. 약 5년여의 문화마을사업이 마무리되는 시점이다.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무엇보다 마을공동체가 스스로 자신의 마을을 문화재생하고자하는 정신적 의지라는 기반이 재생되었다. 결국 마을도 사람처럼 병들고 늙고 종래에는 소멸될 것이다. 하지만 공동체의 기억이 남을 것이다. 누군가는 기억해 주리라. 그곳에 행복한 문화마을이 있었다고.

조두호 아트스페이스 어비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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