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통령 관저 청와대(靑瓦臺)가 2022년 5월 10일 제 20대 윤석열 대통령 취임에 맞춰 전면 개방되어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이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의 겨울 궁전처럼 세계적 관광 명소로 자리 잡을 것 같습니다.

이제 국민과 먼 거리에 있던 청와대가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일 날이 없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청와대 터는 고려시대 삼경 즉, 동경(경주), 서경(평양), 남경(한양)의 하나인 남경인 한양에 이궁(離宮, 행궁 임금이 거동 할 때 묵던 별궁)이 있던 곳입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26년(세종8)에 창건된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 밖의 후원이 되었으며 궁을 지키는 수궁(守宮)터로 경무대(景武臺)라고 하였는데 경무대는 어영(御營, 인조반정 뒤에 조직된 군대 명칭)의 훈련장이나 과거시험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또 여기에는 융무당과 경농재(慶農齋, 그 해에 농사가 잘되고 못됨을 알아보던 집)가 있었습니다.

농사가 나라의 근본이던 시절 임금이 손수 농사일을 보던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합니다.

1910년 이후 경복궁에 조선총독부가 들어서면서 후원을 공원으로 조성하였고 그곳에 총독 관저를 지어 7, 8, 9대 총독이 거주했습니다. 총독 관저는 큰 대(大)자로 설계를 해서 지었고 총독부 청사는 날일(日)자로 지었고 경성부 청사(서울시청)는 본(本)자를 본 떠 지었습니다. 총독 관저부터 총독부 청사와 경성부 청사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大日本(대일본)이 됩니다.

건물에도 일본의 식민 지배 야욕을 담아 건축한 음모가 보입니다.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총독관저는 미군정사령관 하지 중장이 사용하였고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되면서 경무대란 이름을 되찾고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사용 후 4대 윤보선 대통령이 입주하면서 청와대(靑瓦臺)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청와는 청기와를 줄인 말입니다. 지붕에 사용된 청기와는 약 30만장으로 일반 도자기를 구워내듯 한 장 한 장 구워 제작한 것으로 100년 이상을 견디는 강도를 지녔다고 합니다.

지금의 청와대 건물은 1978년 1월에 영빈관을 비롯, 1991년에 본관을 건축했습니다.

청와대 옛 건물은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에 의해 구 총독부 건물과 함께 철거되었습니다. 철거 뒤 총독부 건물자리에는 경복궁 건물을 복원시켰고 청와대 건물은 수궁터로 남게 되었습니다.

청와대는 집무실과 관저와 비서실, 경호실, 영빈관, 춘추관, 상춘재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특히, 녹지원은 청와대 경내에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임금들이 농사 짓던 농토로 일제 때는 가축을 사육하고 온실 등을 조성하여 사용했다고 합니다.

1968년 1천여 평에 잔디를 가꾸어 야외 행사장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20여 종의 수목을 심어 조경을 했으며 역대 대통령들이 기념식수를 하여 보존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정상급이 청와대를 방문하면 행사 장면을 TV화면으로 보는 정도이고 어린이날 등 특정한 날에 초대된 사람들이 대통령 내외를 만나고, 행사에 동참하는 장면이 전부였던 청와대가 개방되는 것은 참으로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탁월한 결정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 UNESCO 세계 문화유산인 불국사와 석굴암,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창덕궁, 수원화성, 경주 역사 유적지구,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 조선왕릉, 하회마을, 양동마을과 서원들 등 역사의 향기가 짙은 유산이 세계인의 자랑거리가 되었고 문화민족의 자긍심을 높였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고궁인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은 600년 역사의 수도 서울에 위치한 것으로도 대단한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가 권력의 핵심 권력자가 국정 수행과 대한민국 현대사의 역사를 만든 곳이, 문을 활짝 열고 모든 이들을 받아들이는 명소로 자리 잡고 세계인들의 발길을 불러들인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감동적이고 흥분이 되기도 합니다.

유화웅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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