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람이에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가 국제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인들이 국적을 속이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사진=TikTok 'masharoko'  
사진=TikTok 'masharoko'  

한국에 거주하는 러시아 출신 올가(가명) 씨는 한 편의점에서 “러시아인 출입 금지(Russians are not allowed to enter)”라는 황당한 경고 문구와 맞닥뜨렸다. 올가 씨가 멈칫하는 사이 종업원은 출신 국가를 물었고, 그는 당시 분위기상 우크라이나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경험담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편의점 종업원이 러시아인은 모두 사라져야 한다”고 했다며 “이후 너무 충격을 받아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심경을 전했다. 해당 게시물은 20만명의 이용자가 ‘좋아요’를 누르며 공감을 표했다.

러시아인에 대한 반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이를 오해한 해프닝도 발생했다.

경기도 수원에 거주하는 이반(가명) 씨는 가족과 함께 방송에 출연하는 등 꽤 알려진 러시아인이다. 이반씨는 한국에 거주하며 삼남매를 키우고 있는데 자녀 중 딸은 한 모델 에이전시에 소속돼 키즈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에이전시가 자사의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한 내용에 따르면 이반 씨의 딸은 대형 통신사 광고에 출연하는 등 꽤 성공한 키즈 모델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보다 더 주목을 끌었던 것은 에이전시 측에서 이반 씨 딸의 국적을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로 표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전쟁이 발생하기 전까지 이반 씨와 오랜 시간 동안 친분을 쌓아왔다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한 여성은 해당 내용을 발견하고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문제 제기했다. 이 우크라이나 여성은 러시아에 대한 국제 여론이 나빠지자 이반 씨가 딸이 모델 일을 계속해서 할 수 없는 것을 걱정해 국적을 속였다고 주장했다.

사진=페이스북 캡쳐
사진=페이스북 캡쳐

이와 관련 에이전시 측은 “해당 아동을 섭외한 담당자가 국적 확인 없이 개인 프로필을 작성했다”며 “이 내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발생하기 전에 작성된 것으로 국적을 속이겠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반 씨 역시 기자와의 통화에서 “에이전시에 국적을 우크라이나라고 말한 적이 없다”며 “에이전시 측에 정정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심리 전문가는 “러시아인들이 국적을 속이는 일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라며 “자신의 나라가 전쟁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만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은 전쟁을 일으킨 자국을 부끄럽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왜 국적을 숨길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세용기자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