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전략적 요충지였던 가평 현지에서 기적을 이룬 미군 참전용사들의 헌신과 용기를 기억하는 계기

가평군은 26일 '미군 한국전쟁참전 및 가평전투 71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사진=한국전쟁맹방국용사선양사업회
가평군은 26일 '미군 한국전쟁참전 및 가평전투 71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사진=한국전쟁맹방국용사선양사업회

한국전쟁맹방국용사선양사업회 주관과 봉사기구인 한국핼핑핸즈 주최 '미국 한국전쟁참전 및 기적의 가평전투 71주년 기념행사'가 26일 오전 10시30분에 가평 한국전쟁 미군참전 기념비(북면 카이저길 45-23)에서 국가보훈처 차장, 주한미국대사 대리, 지역구 최춘식 국회의원, 김성기 가평군수와 지역 기관장들과 유지들과 영상으로 참여한 스펜서 J, 콕스 미국 유타주지사, 유타주 민방위군 마이클 터키 소장, 크레이튼 엔더슨 중위와 이 행사에서 국가와 미국 국가를 부른 참전용사들의 후예를 포함해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이 행사는 우리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이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끌도록 도운 혈맹관계임을 되돌아보고,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특별한 전투를 기념함으로써 대한민국과 미국의 동반자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해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주인공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강화하는 계기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가평군은 한국전쟁 당시 중부전선과 서울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수많은 전투가 벌어졌던 현장이며, 1951년 5월 26일 가평군 북면 화악1리 움터에서는 미국 유타주방위군 213 야전포병대대(지휘관: 제이 프랭크 댈리 중령)의 600명 대원 중 240명이 야간에 진지로 쳐들어 온 4천 명의 중국인민지원군(사령관: 팽덕희 원수)을 포격전과 백병전으로 격퇴하고, 중공군 전사 350명, 생포 831명이라는 전과를 올리고, 아군은 부상자들이 있었으나, 전사자는 한 명도 없는 기적의 전투 현장이기도 하다.

또한 미 213 야전포병대대 일부 지휘관들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험이 있었으나, 병사들은 직업 군인이 아니라 유타주 남부의 시더 시와 인근 지역에서 기독교 신앙에 충실하며, 의로움으로 존경 받는 농부, 교사, 상업인, 광산 근로자, 학부생 등 20세 전후의 젊은이들이었다. 출중한 지휘관들은 명확하게 지시했으며, 병사들은 조직적으로 용감하게 지시를 수행하며 싸웠다.

이에 비해 중공군은 지휘 체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오합지졸과 같았다.

그러나 우리 군과 미군 240명이 근접 전투가 포함된 야간 전투에서 한 명도 전사하지 않고 4천 명에 거둔 일방적인 승리는 전세계 전사에서 유례가 없는 것으로서 그들의 전투능력을 초월하는 신앙과 관계된 가호에 의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주최측은 제213 야전포병대대를 포함한 미군은 유엔군과 더불어 이 나라의 자유 수호를 위해 백척간두에 처해 있던 시기에 국군과 함께해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맹스럽게 싸운 희생과 헌신에 의해 오늘날의 자유롭고 번영하는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도록 기여한 사실은 길이 기념할 일이라고 말했다.

최승성 회장의 환영사와 정동환 한국핼핑핸즈 이사장이 기적의 가평 전투 약사를 소개 순서에 이어 주한 미국대사 대리, 한미연합사, 국가보훈처, 가평전투 참전 용사들의 소속인 유타주방위군 마이클 터키 소장, 크레이튼 앤더슨 중위, 스펜서 J. 콕스 유타주지사, 이 기적의 전투 역사를 작년에 발굴하여 행사 개최가 가능하게 한 유타주 BYU대학교 브레드포드 알 테일러의 기념사가 있었다.

장학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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