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개방부터 요즘의 분명 달라진 그림들은 음지가 양지 된 탓이 크다. 그림은 그려봤어도 정말 이런 날들이 오리라 생각 못한 사람들도 많다. 따지고 보면 오락가락하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가늠하기 어려웠던 탓이 크다. 당장 민주당의 울부짖음은 당내부터 선거현장 거리 곳곳마다 차고 넘치고 있다. 급기야 이번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하는 이재명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저만큼 응달진 구석에 처박혀있는 민주당의 지지율에 그 자신도 어렵다는 말을 고백하기에 이른다. 최근 나온 여론조사, 인천 계양을 결과다. 국민의힘이 거의 버리다시피 한 지역 아닌가. 그런데 이제와서 반전이라니… 민주당은 지금 패닉상태다. 이 위원장과 얼굴도 못 내밀었던 국민의힘 윤 후보가 오차 범위 내 접전을 벌이다가 앞서고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서다. 계양을이 어떤 지역인가. 지난 2004년 17대 총선 이후 민주당이 내리 5선을 차지한 텃밭이다. 그리고 2020년 21대 총선 땐 송영길 후보가 지금의 윤형선 후보를 무지막지한 차이로 이기면서 민주당 아니면 명함을 못 내미는 곳이다.

더구나 민주당이 그토록 믿고 싶어하던 지난 대선 때의 근소한 표 차이에도 이곳은 계양구 전체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8.7%포인트 이긴 승전지였다. 이런 결과가 과연 이 위원장 말대로 취임이나 한미 정상회담의 컨벤션 효과로 마감해야 하는지는 물음표의 연속이다. 차라리 최근 당내에 생긴 여러 문제와 민주당에 대한 불만이 계속 악순환하는 상황이라는 고백이 더 이치에 맞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울고 싶은 민주당이다. 그래서인지 문재인 전 대통령 당시 지금의 국민의힘이 지리멸렬해 야당 복이 많다는 평가를 받은 것과 지금의 상황이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연일 떨어지는 지지율에 차가운 바람은 더 세고 강하게 불고 있다. 당내에서 기대했던 계양을뿐 아니라 낙승을 기대했던 수도권의 다른 지역에서도 패배의 분위기는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계양을 국민의힘 윤 후보의 말을 빌리자. "지금 계양에 이재명 후보의 대선 팀이 와 있다고 한다. 수백 명씩 떼를 지어 다니면서...아직도 대통령 후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계양을 자신의 놀이터쯤으로 알고 계양 주민을 ‘호구’로 알고 대변인 정도로 착각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잊지 않았다. 연약하게만 보였던 상대 장수의 이런 강하고 거친 얘기가 이 위원장을 향해 마치 ‘독사 독 올리는 격’으로 들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윤 후보와의 대결로 알려진 탓도 없지 않다. 그래서 지금의 지지율로 본다면 이 위원장이 오히려 호구로 격하되는 것이라는 면도 없지 않다. 거리 유세를 하던 이 위원장이 철제 그릇을 맞을 뻔한 사태도 포함해서다. 시민들의 이런 강한 항의와 부정적 반응이 이 위원장의 출마를 바라보는 싸늘한 민심이라는 지적도 가능하다. 민주당의 당혹감이 감지되는 시간임에 틀림없다. 4년 전 그 상황과는 격세지감을 많이 느끼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나는 어찌보면 이 모든 상황은 예견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소위 컨벤션 효과라는 대통령 취임 3주 만에 치러지는 선거에서 과거처럼 민주당 간판 하나로 성공이라는 단어를 가져오기는 처음부터 무리였다. ‘너무 부풀려진 기대’라는 민주당 중진의원 지적과 함께…

며칠 전 친노계 정치인으로 알려진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공교롭게 그날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를 맞은 날로 소위 친노와 친문을 자처하는 정치인들을 향해 "노무현·문재인과 친하다는 것 말고 국민에게 내놓을 만한 게 없다" 며 스스로를 비판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만한 원조 친노 정치인은 없다. 그래서인지 노무현 대통령 13주기를 맞는 올해는 마음이 심란하다는 말로 운을 떼며 지금 하고 있는 정치가 면목이 없다는 말도 거르지 않았다. 중요한 얘기는 민심이 자기 편이라고 주장하기는 민망한 상황이라는 대목이다. 그의 말처럼 민심은 정치에 뒤늦게 뛰어든 윤 대통령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친노나 친문의 586정치는 예선 탈락했다는 판단이었다. 10년 동안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숙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결론이 민망할 정도다. 이 말은 민주당이 지방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자기 정치를 근본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뜻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마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퇴장하면서 던진 메시지 "민주주의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매일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인 부분과 맥을 같이 한다.

참패가 자명해지면서 기대했던 이재명 효과도 없어지고 있다. 문재인 효과나 노무현 효과마저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리더십 부재도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의 반성·쇄신 회견의 여진으로 이어지고 있는 민주당이다. 분명 때 늦은 후회지만 자중지란을 넘어서 선거에 미칠 악영향마저 걱정해야 하는 민주당이다. 월드 프리미어를 통해 첫 공개된 후 칸의 심장을 제대로 저격해 전 세계 찬사의 중심에 선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은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와 사망자 아내와의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그린 영화다. 전형적인 형사 스토리를 와일드하고 로맨틱한 영화로 탈바꿈시켰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미스터리한 스토리를 풍성하고 전개를 매끄럽게 이어낸 수작이란 평가다. 루틴한 얘기라도 감독의 더한 연출이 극을 풍성하게 만드는 사례다. 민주당의 남은 얘기는 익숙한 것과의 헤어질 결심에 있다. 그 결심이 무엇인지는 의원 모두가 알고도 남는다. 다만 모른 체할 뿐, 뜻 없을 소리만 질러대고 있다. 실력 있고 된 사람이나, 된 정당은 쓴 얘기라도 새길 줄 알며 조용한 법이다.

문기석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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