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6기 인천시장 재임 당시 힘주어 훈시하는 유정복 당선인
민선6기 인천시장 재임 당시 힘주어 훈시하는 유정복 당선인

최연소 기록 보유자, 행정의 달인, 관료형 정치인.

유정복 국민의힘 인천시장 당선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마흔 이전에 군수, 구청장, 시장을 모두 경험하는 흔치 않은 이력은 ‘행정의 달인’이라는 별명과 함께 그의 능력과 노력, 열정을 모두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그는 36세 군수, 37세 구청장, 40세 시장 등은 한국 정치사에서도 흔치 않다.

지난 2018년 시장선거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여파로 선거판 자체가 아예 기울어진 상태에서 시작해 박남춘 당시 당선인에게 17.7%p 뒤진 37.99%의 득표율을 보여 낙선됐다. 하지만 그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당히 시장 재선에 성공했다.

◇유정복 인천시장 당선인 어렸을 적 별명은 ‘유세비오’=유정복 인천시장 당선인은 1957년 6월 인천의 대표적 달동네인 수도국산에서 4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유 당선인의 부모님은 두 분 모두 고향이 황해도 연백이지만, 6·25 전쟁이 발발하자 큰형과 두 누나를 데리고 남쪽으로 넘어왔다.

유 당선인의 아버지는 양복점 등 가게를 운영했고, 어머니는 두부와 묵을 팔며 생계를 유지했다.

유 당선인은 송림초등학교 시절 학업 성적은 늘 상위권을 유지했고, 축구 등 운동도 좋아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친구들과 축구하기를 좋아해 해 떨어지기 전 집에 들어간 적이 별로 없을 정도"라며 "공을 잘 차 포르투갈의 축구 영웅 아우세비오를 빗댄 ‘유세비오’란 별명도 얻었다"고 말했다.

유 당선인은 초등학교 졸업 후 선인중학교을 거쳐 제물포고에 입학했고 평소 꿈꿔 온 외교관이 되기 위해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갔다.
 

유정복 당선인 송림초등학교 사진(오른쪽)
유정복 당선인 송림초등학교 사진(오른쪽)

◇대학생 때 ‘국가를 위해 보람있는 일을 하겠다’ 결심...공직의 길 개척=유 당선인은 대학교 3학년 때 ‘국가를 위해 보람있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행정고시에 응시해 1차 시험에 합격했으며, 4학년 때 2차 시험을 치러 1980년 5월 중앙공무원교육원에 입교해 강원도청에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유 당선인은 강원도청으로 발령 받은지 2개월 만에 학사장교 1기를 지원해 강원도 양구군 백두산 부대의 일반 보병 소대장으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했다.

3년 3개월이라는 군복무를 마치고 1984년 9월 30일 전역과 동시에 강원도청에 복직했다가 1987년 4월 행정안전부의 전신인 내무부 지방자치기획단으로 파견됐다.

이후 내무부 장관 비서관, 교부세계장, 교육고시계장, 인사게장, 경기도 기획관을 거쳐 1994년 1월 김포군수로 부임하게 된다.

그는 당시를 회상할 때 자신이 3선 국회의원, 2번의 장관, 인천시장 등 정치인으로 변신할 것이라고는 상상해보지도 못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유정복 당선인 육군 학사장교로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사진
유정복 당선인 육군 학사장교로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사진

◇30대, 앞날이 탄탄한 고위공직자의 길을 접고 민선군수 출마 결행...중대한 사안 결정시 매우 단호, ‘결단의 정치인’=1995년 인천 서구청장으로 전보 발령을 받은 유 당선인은 김포 주민들이 김포 발전과 미래를 위한 민선군수에 출마해 달라는 요청을 외면할 수 없었다.

당시 김포군민 100여명이 서구청으로 찾아와 주민 5천여 명이 서명한 연명부를 제시하며 김포군수 선거에 출마해야 한다며 농성을 벌인 일을 두고, 안정적인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닌 주민에게 봉사하기 위한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는 선거 20일 전 여·야도 아닌 무소속 상태로, 15개월 군수 경력을 제외한 어떤 지연, 학연, 혈연, 정당도 없이 4무(無) 선거를 치렀다.

결과는 여야 후보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표를 획득해 김포시장에 당선됐으며, 이 경험을 바탕으로 김포지역 국회의원에 도전하게 된다.

그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김포지역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내리 3선에 성공한다.

이후 이명박 정부 때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박근혜 전 대통령 정부땐 초대 안전행정부 장관을 역임했다.

◇인천 무대에 선 유정복, ‘인천 출신의 힘있는 시장’ 캐치프레이즈로 1.8%p 차이로 대역전 저력 보여줘=유 당선인은 2014년 3월 안행부 장관과 국회의원직을 내려놓으며 인천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유 당선인의 상대 후보는 인천 계양을에서 국회의원 3선을 했고, 4년간 시장을 재임해 인지도가 높았던 송영길 후보였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며 "내 가족의 삶과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유년시절의 꿈과 눈물을 흘린 곳, 송림동 피난민촌에서 시작해 행정고시에 합격하기까지 늘 가슴 한쪽에 품고 살았던 인천으로 돌아가 위기의 인천을 구하고 희망을 만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선거 운동 당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며 각종 여론조사에서 송 후보에게 턱없이 밀리는 현상이 계속됐지만 오직 진심으로 시민을 대했고 진정성을 가지고 후보 토론에도 임했다.

진심이 통했는지 세월호 사태 이후 끝모르게 추락하던 지지세가 많이 회복됐지만, 아직 언론에서는 유 당선인의 열세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1.8%p 차이로 대역전. 민선 6기 인천시장에 당선이 확정된 순간 안도감과 함께 인천아시안게임과 부채에 시달리는 인천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졌다.
 

유정복 당선인 어머니와 친형과 연세대 졸업 기념 사진
유정복 당선인 어머니와 친형과 연세대 졸업 기념 사진

◇인천시장으로서 숱한 성과...일 잘하는 시장, 결국 2022년 재선에 성공=유 당선인은 인천 출신 첫 시장으로 뽑아준 고향 시민께 일과 성과로 보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재임 시절 누구도 생각못한 인천발 KTX 유치를 추진했고 GTX-B 예타검토대상 선정 등 교통망을 대폭 확충했다고 자부했다.

또 제3연륙교 건설과 서울7호선 청라 연장을 확정짓고 문학산 정상 개방, 경인고속도로 일반도로 전환, 검단신도시·루원시티 착공 등 현안 모두 해결했다는 평가다.

그는 스스로를 흐트러짐없는 공직관과 도덕성·청렴 갖춘 보수의 아이콘이라고 평가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어진 임무와 역할에 성심 다하는 자세 견지하고, 온갖 난관 속에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살아온 백범 김구의 ‘선공후사’ 정신을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이런 노력 끝에 유 당선인은 1일 인천시장 선거에서 다시 한 번 승리했다.

국회의원 2선 이상, 장관 두 번 이상, 광역단체장 두 번 이상인 경우 붙여지는 ‘더블 트리플 크라운’이란 더 없는 영예를 안았다.

그는 ‘시민 행복, 세계 초일류도시 인천’ 조성을 캐치프레이즈로 상대 후보와의 리턴매치에서 완승해 인천을 초일류도시로 만들겠다는 시민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전예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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