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인.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인.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이 6·1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도민들의 선택을 받았다. 166만 학생 교육을 책임지는, 대한민국 교육 심장으로 불리는 경기교육 수장 자리에 오른 그는 ‘13년간 이어진 진보교육이 낳은 문제’를 하나씩 되짚어 새롭게 바꾸고 경기도를 교육도로 탈바꿈하겠다는 포부를 내놨다. 3선 국회의원, 고용노동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국립한경대학교 총장,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특별고문까지 국정과 교육을 두루 다뤄 온 경륜을 바탕으로 경기교육 쇄신을 약속했다. 임태희 당선인이 맞은 오늘의 순간까지 오는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화려한 정치 경력이 교육 가치를 훼손한다는 공격 대상이 된 탓이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그 경력을 강점으로 경기교육 변화를 다짐, 도민 공감을 끌어냈다. 임태희 당선인이 그동안 걸어온 길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본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이 성남 양영중 재학 시절 어머니, 동생과 함께한 모습.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이 성남 양영중 재학 시절 어머니, 동생과 함께한 모습.

◇성남 소년 임태희, 글로벌 경제 일꾼에서 공무원으로=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은 1956년 12월 1일 성남 판교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낙생초등학교와 양영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 유학길에 올라 경동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 만능 스포츠맨으로 유명했다. 100m 최고 기록이 12.7초였고 멀리뛰기는 5m 기록을 갖기도 했다. 탄탄한 체격에 운동감각까지 뛰어났던 임 당선인은 유도부에서도 활약했다.

운동부 생활을 하던 그의 삶을 바꾼 것은 고등학교 첫 성적표였다. ‘46등’. 난생처음 받은 두 자릿수 등수에 ‘당장 운동을 그만두고 공부에 전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

공부에 매달린 임 당선인은 재수 끝에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대학교 4학년 시절, 그는 진로를 고민하다가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행정고시에 응시했고 1차에 합격했다. 그러나 그는 2차 시험 준비 대신 외환은행 취업을 선택했다. 장남으로서 집안 경제를 맡아야 한다는 책임감과 조금 더 넓은 세상에 나가 경제 감각을 키우며 일하고 싶다는 욕심에서다.

입사 이후 6개월간 임 당선인은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느꼈다. 1980년대, 당시는 우리나라 경제가 매우 힘들 때다. 경제적 약소국의 서러운 처지가 뼛속까지 느껴졌다고 한다.

고민 끝에 은행 문을 나온 그는 행정고시 2차에 도전했다. 6개월간 절박한 마음을 모아 책과 씨름했고, 경제 일꾼을 꿈꾸던 샐러리맨은 공무원이 됐다.

이 기간 임 당선인은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 두 딸을 둔 아빠가 됐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인 신혼여행 모습.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인 신혼여행 모습.

◇국가 경제 걱정하던 공무원에서 정치인으로=재무부 사무관으로 일하던 그는 1996년 영국 옥스퍼드대 객원연구원으로 떠났다.

타국으로 떠나는 임 당선인 가족의 짐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은 성장기인 두 딸에게 가르칠 도덕과 대한민국 역사, 정체성과 관련된 책이다. 국어나 도덕, 사회, 역사는 생활 속에서 꾸준히 학습해야 자연스럽게 자신의 것으로 습득할 수 있다는 것이 임 당선인의 생각이었다.

영국 생활을 시작하고 1년 6개월이 지났을 때 대한민국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맞았다. 도산하는 기업이 속출했고 국가 경제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온 나라가 깊은 좌절에 빠진 시기였다.

예정된 귀국일은 6개월 뒤였지만, 경제부처 공무원인 임 당선인은 하루빨리 귀국해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짐을 쌌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대통령 경제비서실에서 은행권 구조조정 업무를 맡았다. 뼈를 깎는 고통과 같은 과정을 겪으며 임 당선인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피부에 와닿는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현실 속으로 파고드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 그는 2000년 고향인 성남 분당에서 ‘국민을 위한 마음, 더 크게 쓰겠습니다’를 슬로건으로 걸고 제16대 국회의원에 도전해 지역 주민을 위한 정치인의 삶을 시작했다.

토박이 경기도민인 임 당선인은 국회의원으로 있던 2004년 제2의 고향을 갖기도 했다. 한나라당 의원이던 그는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민주당 세가 강한 목포와 자매결연을 하고 성남은 물론, 목포 발전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1897년 목포항 개항 이후 여섯 번째 명예시민증을 받기도 했다. 민주당 텃밭이던 목포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명예시민이 된 것은 한동안 화제였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의 국립한경대 총장 시절 모습.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의 국립한경대 총장 시절 모습.

◇국민 삶 걱정하던 정치 내려놓고 ‘학생’ 위하는 교육자 삶 시작=임 당선인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일하던 시기 학생들 대학 등록금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국가장학금 제도를 도입하고, 만 3~5세 취학 전 아동에게 공통으로 제공하는 교육·보육과정인 누리과정 도입을 주도했다. 또 고교 졸업 후 취업을 원하는 학생을 위해 선취업 후진학 제도와 마이스터고 고용유지지원금 등 다양한 지원책 마련에도 기여했다.

이어 2017년 국립한경대학교 총장 직무를 수행하면서 학생들이 왜 교육에 만족하지 못하는지 원인을 찾았고, 초·중·고 교육 변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40년 이상을 공직자로 살아 온 임 당선인은 이제 경기도교육감으로 다섯 번째 공직 수행에 나선다.

초·중·고 교육을 새롭게 바꾸고 진정 학생이 원하는 교육을 맞춤 제공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율과 균형, 미래지향 교육을 이루고 책임 돌봄으로 육아 걱정 없는 나라를 경기교육에서부터 만들어가겠다는 것이 그의 각오다.

‘지기추상 대인춘풍(知己秋霜 對人春風)’.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다른 사람에게는 봄바람처럼 대하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산다는 임 당선자는 경기도민과 경기교육가족이 준 혜택이자 명령을 받아 경기교육감 길을 걸어간다.

양효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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