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인 필자에게 사법기관이 요구하는 범죄사건에 대한 감정주제는 사건의 주인공인 범죄자들의 범죄 유발 의도나 능력에 관한 질문들이다. 이에 응답하는 일은 어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흥미롭기도 하다. 이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지점은 바로 그들의 눈높이에서 사건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때로는 그들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주변 세상을 보려고 노력을 하기도 하는데, 이런 시도는 일반적으로 전문가 자신의 삶에 대한 경험치를 벗어나기 힘들다. 언제나 그 한계를 뛰어넘어보려고 치열하게 상상력을 동원해보지만 그 역시도 인위적인 노력일 뿐 실재 삶 속에서 그들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감정서를 볼 때마다 다시금 깨닫게 되는 공통적인 질문은 바로 ‘왜’이다. 대부분 형사처벌을 받게 될 어리석은 선택을 ‘왜’ 했었는지에 답변해주기를 기대한다.

가장 최근 필자를 인식의 고통 속으로 밀어 넣었던 사건은 피를 나눈 친족을 죽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그야말로 흔해빠진 금전적인 이득을 노린 범죄도 아니다보니 대체 왜 피해자에게 오랫동안 학대를 하여 죽음으로 몰아간 것인지, ‘왜’ 학대행위를 멈추지 않았는지를 설명해야 했었다. 더욱이 궁금한 지점은 바로 죽음을 충분히 예견할만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는 왜 외부에 구조 요청을 하지 않은 것인지? 그 역시 제3자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가 무척 힘들다.

친족 살해 후 자살, 소위 동반자살이라고 지칭하는 사건이 최근 반복되어 발생하고 있다. 치매인 배우자와 함께 자살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경우도 있었고 발달장애인인 자녀와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도 있었다. 서구사회에 비하여 유달리 우리나라에서만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하는 친족 살해사건들은 경제적 상황이 급속하게 어려워지는 시기에 더 많이 발생한다.

근본적으로 보자면 동반자살이란 용어는 이런 사건들을 미화하기 위한 용어에 불과하다. 본인의 자살의지 때문에 가족을 함께 죽인 사건은 살인사건일 뿐 자살이 아니다. 간혹 자살에 실패한 부모는 결국 살아남아 자식을 살해한 가해자로서 재판을 받기도 하는데, 이들은 전형적인 아동학대 가해자들과는 심리특성이 퍽 다르다. 치사사건의 주인공이 되는 아동학대 가해자들이 자식을 짐처럼 적대시한다면, 동반자살을 시도하는 부모들은 자식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 같은 책임감은 어떻게 보면 오해나 망상에 가까운 것으로서 그들의 희생양이 되는 가족구성원들에게는 오히려 매우 위험하고 불필요한 사고이기까지 하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특히 가족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이 존재한다. 내가 아니면 가족구성원들이 살아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과도한 신념. 그것은 경제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동안은 미덕으로서 기능하겠으나 사회경제적인 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오히려 본인 자신 뿐 아니라 가족구성원들의 안위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 가족에 대한 병리적 책임감이 바로 부양가족을 곤궁으로 밀어 넣게 되는 것이다.

극단적인 삶의 위기로 내몰렸던 가족들은 특히 코로나 시국으로 더 많이 발생하였다. 이제 감영병도 한 고비를 넘기고 있는데, 해외 리포트들에 따르면 이런 시기에 자살률이 오히려 증가한다고 알려진다. 주변 사람들은 삶이 생기를 찾아가는데, 자신의 삶만 나아지지 않는다는 조바심과 자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손실보상지원금이 이제 지급되기 시작하였다. 참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사회적인 네트워크가 끊어져 자책과 우울을 반복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서는 ‘찾아나서는 서비스’가 필요하다. 특히 아동이나 노인을 부양하고 있는 자들에 대하여서는 지자체가 적극 나서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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