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다. 코로나로 인한 저성장, 침체에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세계 공급망 교란과 에너지 및 식량 가격 급등, 그리고 미중 갈등이나 브렉시트에서 보는 경제적 자국 우선주의와 블록화 경향 등등, 온갖 악재가 중첩하여 이른바 복합위기 조짐마저 보인다. 세계 각국의 물가는 수십년간 안정세를 유지해서 한때는 이제 인플레 시대는 끝났고 저물가, 침체가 문제라는 분위기가 만연했으나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지금은 두 자리 숫자를 넘보는 인플레이션 시대다.

저물가의 시대는 가고 고물가의 시대가 오고 있다. 미국도 물가 상승률이 예상 외로 높아지자 제롬 파월이 이끄는 연준 이사회가 부랴부랴 금리 대폭 인상으로 돌아서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을 타개하려고 도입했던 네 차례의 양적 완화는 모습을 감추었고 금융정책은 금리 인상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어떤 경제학자는 연준의 최근 대처가 너무 안이하고 늦어서 일단 불붙은 인플레를 쉽게 잡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래 저래 세계경제의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맞아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연달아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비상대응 체제로 정부 운영을 전격 전환했다. 대통령실은 비상경제상황실을 운영하며 매일 점검회의를 연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의 소위 ‘3고 시대’의 장기화를 예측하면서 정부와 민간 경제주체가 함께 노력하자고 호소했다. 대통령실에 의하면 윤 대통령과 수석비서관 회의 때 경제수석이 경제, 산업 동향을 맨 먼저 보고하는데, 이는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윤 대통령은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다음 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윤석열 정부는 첫째도 경제, 둘째도 경제, 셋째도 경제란 자세로 민생 안정에 모든 힘을 쏟겠다"고 선언했다. 내각도 추경호 부총리가 주재하는 비상경제 장관회의를 매주 열기로 했다. 이런 분위기에 맞춰 여당에서도 물가 및 민생안정 특별위원회를 발족하기로 했다.

대통령실은 새 정부가 직면한 경제문제를 3가지로 설명했는데 그것은 세계적 복합위기 상황, 2019년부터 시작한 재정적자 전환의 고착화 우려, 탈원전 등 문재인 정부 추진 정책의 실패에 대한 정상화 과제라는 것이다. 여기서 세계적 복합위기 상황은 객관적 사실이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2019년부터 시작한 재정적자 전환의 고착화 우려라든가 탈원전 등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를 정상화하겠다는 선언은 뭔가 석연찮고 정치적, 정략적 냄새가 난다. 코로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3년간 세계 각국이 엄청난 재정 지원금을 쏟아부었고, 특히 미국은 무려 5조 달러를 투입했는데, 한국의 재정 지원금은 그 규모가 OECD 평균에 비해 훨씬 낮았다. 지원이 너무 인색해서 탈이지 결코 과도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의 재정적자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런데도 마치 전임 정부가 흥청망청 재정을 낭비한 것처럼 몰아붙이는 것은 객관적 사실과 맞지 않는다. 또 탈원전 문제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다소 오락가락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탈원전을 향해 뭔가 큰 변화를 한 것도 없다. 또한 새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 대해서도 시비를 걸고 싶은 것 같은데, 실제 문재인 정부는 첫 두해의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거의 30%) 말고는 소득주도성장을 열심히 한 게 별로 없다. 실제로 필요했던 것은 부동산 투기 억제, 대기업의 중소기업 착취 근절, 복지 확충을 통한 사회안전망의 구축 등 진정한 의미의 소득주도성장이었는데, 이들 분야에서 보여준 문재인 정부의 노력과 성과는 미흡했다. 국민의힘의 새 정부는 상투적으로 소득주도성장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 채택하는 것이 경제위기 타개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세계적 경제위기 상황을 맞아 발빠른 대처를 하겠다는 것은 좋으나 그 방향 설정과 방법이 문제다. 새 정부는 규제가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하면서 대폭 규제완화를 시사하고 있는데, 이는 과거 이명박 대통령의 ‘전봇대 뽑기’, 박근혜 대통령의 ‘규제는 암덩어리’ 발언에서 보듯 부정확한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또 다시 실패할 확률이 높다. 김대중 정부 이래 모든 정부는 불필요하게 기업을 옥죄는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런데도 남은 몹쓸 규제가 있을 수는 있겠으나 사실 그것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며칠 전 기재부는 종부세와 법인세 인하를 발표했는데, 이는 명백히 잘못된 부자 감세 조처다. 한국이 세금 높고 규제 많아 기업하기 어렵다는 것은 끝없이 반복되는 푸념인데, 사실 세계은행 조사에 의하면 한국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 세계 4위의 국가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도 기업이라고 전혀 납득할 수 없는 발언을 한다든가(이는 ‘미국의 사업은 사업’ The business of America is business 이라고 한 백년 전 캘빈 쿨리지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연상시킨다) "저녁 시간에 연락 달라. 경제문제를 의논하자"고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경제대통령을 표방하던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기에 주요 기업인 백여명에게 개인 전화번호를 알려주면서 언제든지 연락하시라고 했는데,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었고 결국 실패한 대통령이 됐다.

과거 어느 대통령이 경제비상 대책회의 첫 회의를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개최한 적이 있다. 그때 참석한 모 수석이 아무리 경제가 비상이라도 회의까지 이런 벙커에서 열어야 하느냐고 다른 수석과 잡담을 하고 있었는데 막 회의실에 입장하던 대통령이 그 말을 들었고, 그 수석은 바로 해임됐다고 한다. 수석의 말은 타당했고, 대통령은 옹졸했다. 지금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급하고 부산스럽게 움직인다고 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 초청해서 투자해달라고 부탁해서 경제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경제 문제는 경제의 논리로 풀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 첫 단추는 잘못 꿰지고 있다.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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