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만에 경찰국 부활이라니" 민주경찰 흔들
"견제 아닌 정치권력 눈치보게 될 것" 우려
행정안전부가 거센 반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경찰을 통제하는 이른바 ‘경찰국’ 신설 계획을 발표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권한이 커질 경찰을 견제한다는 명목이다.
21일 행안부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는 ‘경찰의 민주적 관리·운영과 효율성 제고를 위한 권고안’을 내놨다. 권고안은 민주적 관리·운영과 효율적 업무수행 내용으로 나뉘어 ▶행안부 내 경찰 관련 지원조직 신설 ▶행안부장관의 소속 청장에 대한 지휘 규칙 제정 ▶경찰 인사절차의 투명화 ▶감찰·징계제도 개선 ▶경찰 업무 관련 인프라 확충 ▶수사 공정성 강화 등이 담겼다.
자문위는 최근 법 개정으로 검사 수사지휘권이 폐지되고 경찰에 독자적인 수사권과 불송치 결정권이 주어지면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경찰 수사 권한이 확대된 만큼, 권력 균형을 위해 견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경찰은 이 같은 자문위 결정에 반대 목소리를 높여 왔다. 정치 중립성과 수사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것.
김창룡 경찰청장은 전날인 지난 20일 "자문위 주장은 경찰법 정신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직접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경찰국’은 ‘민주 경찰’ 근간 흔드는 조치"= 경찰 조직은 자문위 판단에 강한 반발을 내놓고 있다. 경찰청은 행안부 발표 직후 김창룡 청장 주재로 18개 시도경찰청장 회의를 소집해 2시간가량 논의한 뒤 성명을 내 "경찰을 둘러싼 그간의 역사적 교훈과, 현행 경찰법 정신에 비춰 적잖은 우려를 표한다"며 "이번 권고안은 민주성·중립성·책임성이라는 경찰제도 기본정신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나아가 국가 조직 기초이자 헌법 기본원리인 법치주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며 "경찰 제도와 활동은 국민의 생명·신체·인권·자유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 부작용은 오롯이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만큼, 충분한 의견 수렴과 폭넓은 논의를 이어갈 것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일선 경찰 사이에서도 경찰국 문제는 큰 현안이었다. 경찰들은 권고안이 발표되자 일제히 반발하는 모양새다.
경기남부경찰청 직장협의회는 "1991년 이후 외청으로 개편돼 독립적 치안 행정을 한 조직에 대해 경찰국을 만든다는 권고는 경찰청을 옛날 치안본부로 격하시키는 시대적 역행의 착오다"며 "경찰청 예산과 인사, 감찰, 정책 권한 통제는 경찰 중립성과 수사 독립성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민주 경찰 근간을 흔드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경찰 권한을 통제하겠다는 행안부 직제령은 법률 취지에 어긋나는 행위다"며 "법적 근거 없는 경찰국 신설을 당장 중단하고 국가경찰위원회와 자치경찰위원회 권한을 강화, 경찰청 중립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남부청뿐만 아니라 각 시도 경찰 역시 같은 의견을 내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같은 반발에 자문위는 "헌법, 정부조직법, 경찰법, 형사소송법 등 관련 법에 따라 행안부 장관은 경찰청과 관련해 법령 발의·제안, 소속 청장 지휘, 인사제청, 국가경찰위원회 안건 부의, 수사 규정 개정 협의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지만 현재 행안부 내 관련 업무를 지원하는 조직이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임기 2년을 보장받는 경찰청장 경우 스스로 자신의 징계를 요구해야 징계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며 "때문에 경찰청장을 포함한 일정직급 이상 고위직 경찰공무원에 대해 행안부 장관에게 징계요구권을 부여할 것을 권고한 것이다"고 부연했다.
◇"‘검수완박’으로 권한 커진 경찰 견제 필요치만 ‘경찰국’은 아냐"= 자문위가 내놓은 ‘경찰국’ 권고안은 경찰 조직뿐만 아니라 일부 시민단체에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경찰 견제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그 해답이 ‘경찰국’은 아니라는 까닭에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이창민 변호사는 "경찰 견제는 필요하지만, 경찰국이라는 권위주의적이고 정치적인 통제는 옳지 않다"며 "자치경잘제나 국가경찰위원회를 실제화해 경찰 권력을 분산시키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인사권을 갖고 통제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경찰들이 행안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 정치권력에 따라 움직이는 경찰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며 "민주적인, 시민에 의한 통제 방안을 통해 경찰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 경찰개혁네트워크도 반대 의견을 펼쳤다. 이 단체는 "행안부 경찰 통제 권한이 강화되면 경찰 독립성이 약화하고 정치권력에 직접 종속될 수 있다"고 질타했다. 다만 "문제는 권력기관 개혁과정에서 경찰 권한이 비대해진 것인데 이 권한을 어떻게 분산하고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인지 공론화 과정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경찰 견제 필요성을 내비쳤다.
경찰과 시민단체는 자문기구에 그친 국가경찰위 권한을 강화하거나 자치경찰제를 실질화해 경찰 권한을 분산하자는 의견을 지속해서 피력해왔다.
국가경찰위는 경찰 정치적 중립 보장과 민주성·공공성 확보를 목적으로 1991년 설치된 경찰행정 심의·의결기구다. 그러나 비상설이고 경찰 외부 인사가 주를 이루는 자문기구 성격으로 ‘경찰 민주적 통제’라는 목표 달성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찰 내부에서는 중립성과 민주성을 지닌 인사들로 위원을 구성하고, 위원회를 보좌하는 전문위원 조직을 만드는 등 국가경찰위 권한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주장해왔다.
또한 자치경찰을 제대로 키워 경찰권을 지방으로 분산하자는 의견도 꾸준히 흘러나왔다. 현행 자치경찰 사무를 수행하는 국가경찰 조직·인력·예산을 자치경찰로 완전히 옮겨 국가경찰을 통제하자는 것.
그러나 이들 방안은 자문위가 설치 권고한 대통령 직속 경찰제도발전위원회에서 장기 과제로 논의될 전망이어서 당장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양효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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