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0일 오전 대구 모 변호사사무실에 재판 결과에 앙심을 품은 50대 남성이 찾아가 방화를 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변호사 1명과 직원 6명이 사망 했고, 가해자까지 현장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정작 가해자가 앙심을 품고 찾아간 변호사는 지방재판 중이어서 화를 면했고, 가해자와 전혀 관련 없는 6명이 사망한 사건이라 더 황당했습니다. 특히, 사망한 변호사와 직원인 사무장은 사촌관계이고, 여직원은 이제 막 결혼한 신혼이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안타까움이 더했습니다.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이 이러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할 뿐입니다. 다행히 화마를 피한 변호사는 어떤 마음이고, 가해자를 대리한 변호사는 또 어떤 마음일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이 사건 소식을 접한 가족과 친구로부터 괜찮냐는 안부 전화를 받고서야 실감을 합니다. 급하게 최근에 다투거나 불편한 관계의 사람은 없었는지 기억을 떠올려 보기도 합니다. 혼자 사무실에 앉아 화재가 났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상상을 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가로젓기도 합니다. 도통 일할 맛이 안 나는 요즘입니다.

변호사로서 10년 가까이 일 해왔기 때문에 이 사건을 접하고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판 결과는 대개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고, 패자는 억울함과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의뢰인이 자신이 위임한 변호사에게 불만을 표출한 경우는 들어봤어도 상대방 변호사를 찾아가 테러를 가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봅니다. 이제 의뢰인뿐만 아니라 상대방 당사자의 보복까지 고려하면서 재판을 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일까요?

사건 자체도 충격이지만, 더욱 충격을 받았던 것은 관련 기사의 댓글들입니다. 상당수의 댓글은 오히려 가해자를 옹호하고, 변호사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내용이었습니다. 경험인지 풍문인지 모를 사실들을 언급하면서 마치 변호사가 무슨 잘못을 해서 그런 일을 당한 것처럼 쓴 글도 자주 보입니다.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인권이사로 활동하면서 작년부터 해온 여러 공익 관련 업무들이 떠올랐습니다.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학금 지원 사업, 안양소년원(정심여자중고등학교) 삼겹살 지원 사업 및 장학금 지원 사업, 수원구치소 재소자 지원 사업, 불우이웃 연탄 배달 행사, 불우이웃 쌀 기증 행사 등 나름대로 열심히 공익활동을 해왔는데 그런 부분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도 사회에 꾸준히 기부를 해왔는데, 이 모든 것이 무의미 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조차 들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환자가 응급실 의사를 찾아와 낫으로 뒷목을 찍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피해 대상이나 방법도 일반적인 생각의 범주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기사에도 어김없이 의사들이 불친절해서, 의사들이 돈만 밝혀서 이런 문제가 생긴 것처럼 써놓은 글들이 많습니다. 분노 사회입니다. 분노를 마음대로 표현하는 가해자, 피해자보다 그런 가해자를 두둔하는 사람들,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지난 10년간 여러 사건을 경험하면서 우리 사회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이면을 보고 있습니다. 절대악과 절대선을 쉽게 구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각자의 위치와 상황에 따라 나름대로 힘든 인생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나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악인으로 만드는 일을 그만 멈추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 조절 장애’가 아니라 ‘분노 조절 잘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양승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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