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을 만나는 한 학기가 성급하게 마무리되고, 다시 곧 발표할 논문 작성에 붙들려 바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며칠째 마음과 귀를 기울여 음악을 들었다. 틈틈이 제16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16th Van Clibur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에서 우승한 젊은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연주했던 준결선과 결선 곡을 모두 영상과 함께 감상했다. 음악은 나에게 오랜 친구이자 동반자와 같은 존재다. 80년대, 보수적인 신학대학에 입학한 이후, 고교 시절 너무나 좋아하던 팝 음악을 더는 들을 수 없었다. 신학생이 되었다는 변화가 내가 시작한 배움의 길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즐겨 듣던 음악을 포기하기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크게 남았을 때, 학창 시절 음악 시간에 배우며 들었던 클래식 음악에 다시 관심을 가졌다. 그때부터 조금씩 독학으로 시작한 고전음악 듣기가 어느덧 30년이 넘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예술가는 마음이 하염없는 사람들이라던데, 나 또한 자주 하염없이 마음과 시간을 음악에 맡기는 습관의 사람이 되었다. 음악 듣기에 몰두할 때 어떤 성스러움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금번에 북미 최고의 대회인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는 유난히 피아노 음악을 좋아하는 나에게 큰 기쁨이 되었다. 몇 년 전, 쇼팽 콩쿠르에서 날아든 조성진의 우승 소식 이상의 기쁨과 자랑스러움이 남게 된 데는 임윤찬의 연주가 보여준 기교와 독특한 그만의 곡 해석 때문이라 하겠다. 연주자가 아닌 내가 그의 연주력을 평가하는 것은 상당한 실례가 되겠으나, 피아노 음악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의 연주와 우승 소식이 전해준 기쁨을 이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다.

준결선 첫 번째로 연주했던 프란츠 리스트의 ‘초절기교’는 곡명에도 나타나듯이 피아노 테크닉과 그것을 통해 드러내야 하는 연주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때 제맛을 낼 수 있다고 평가받는 곡이다. 프란츠 리스트는 19세기 ‘피아노의 파가니니’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기교를 자랑했던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동시대 바이올린 연주의 아이콘이었던 니콜로 파가니니(Niccol Paganini)와의 경쟁을 목적으로 초절기교를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총 세 개의 버전 중, 두 번째 버전은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인 파가니니와의 경쟁을 염두에 두고 작곡한 가장 난해하고 절정의 기교를 요구하는 곡이라고 한다. 이 곡은 연주자에게는 연주의 부담을 안기고, 청중들에게는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몰입하게 하는 정교하고 과감한 곡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총 60여 분간 계속된 임윤찬의 연주는 그야말로 '세상 번뇌 시름'을 잊게 할 정도로 ‘초월적 음악성’을 느끼게 했다.

준결선 두 번째 곡인 모차르트의 피아노 콘체르토 22번은 내가 아침마다 독서실로 삼는 카페에서 자주 듣는 음악 중 ‘최애(最愛)’에 속한다. 이 곡은 그만큼 나에게 익숙한 음악이다. 게다가 토요일 이른 아침 연구실에서 혼자 듣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콘체르토는 마치 아침 이슬이 아직 풀잎에 맺혀 있는 공원을 걷고 싶을 만큼 정서적 충만감을 준다. 특히 모차르트는 이 곡을 작곡하면서 당시 일반적이던 오보에 대신 클라리넷을 처음 도입해 그 음악적 느낌이 남다르다.

결선에서 첫 번째 곡으로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콘체르토 3번은 내가 가장 즐겨 듣는 곡 중 또 하나다. 설명이 필요 없는 악성 베토벤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와의 협주라는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최고의 협주곡이라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가장 베토벤다운 음악이 아닐까 싶다. 결선 두 번째 곡인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콘체르토 3번은 그의 대륙인의 기질을 표현한다. 작곡가의 러시아적 정서가 충만하게 배어 있는 장엄함과 섬세한 기교, 그리고 말 달리듯 웅장함이 깃들어 있다. 웅크렸다가 다시 펴고, 다시 날아다니듯 건반 위를 신들린 듯 섬세하게 두드리는 임윤찬의 타건을 응시하다가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의 연주는 결코 나이만큼 어리지 않았다.

새로운 피아노 연주의 보석이 탄생했다. 무척 반갑고 가슴이 벅찼다. 그는 콩쿠르에서 "연습한 것의 30%밖에 발휘하지 못했습니다"라고 스승 손민수 교수에게 말했다고 한다. 더 감동적인 장면은 귀국 후 한예종에서 기자회견을 위해 나온 제자 임윤찬 군을 맞이한 스승 손민수 교수가 목례로 피아노 마스터 자리에 오른 제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순수한 국내파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처음 콩쿠르 영상으로 만났지만, 이런 말로 그의 음악 세계를 칭찬하고 싶다. 솔직히 내가 좋아하는 에티오피아 커피보다 그의 음악이 더 좋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임윤찬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차종관 성결대 교수, 세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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