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남사 전경
석남사 전경

석남사는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 서운산 자락에 있는 사찰로 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이다. 석남사가 위치한 서운산은 안성시 서운면과 충청북도 진천군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 547m로 그리 높지는 않으나 산세가 부드러워 많은 사람이 찾는 경기남부의 명산이다. 이 산에는 청룡사, 좌성사, 서광사, 약사사, 옥련사, 무상사, 은적암 등 여러 사찰이 있다.

석남사 들어가는 입구 계곡은 안성사람들의 여름철 피서지였다. 불과 십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더위가 시작되면 서운산에 흘러나오는 시원한 계곡물에 발 담그고 고기 구워먹는 사람으로 가득 찼었는데, 이제는 취사가 금지사항이라 도시락을 싸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계곡물에 발담그는 것은 여전하지만 세상이 변해가는 것을 그만큼 빨리 느낄 수 있다. 몇 년 전 석남사 출입구 도로 확장 공사를 하면서 도로폭 확보를 위하여 계곡 쪽 나무를 제거하고 도로를 확장하여 넓은 도로가 생긴 것은 좋으나 풍성한 나무가 없어져 옛날의 고즈넉한 맛이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쉽다.

석남사 대웅전
석남사 대웅전

◇신라, 고려, 조선을 이어온 고찰

우리나라의 많은 사찰들이 그렇듯 석남사도 창건에 대하여는 명확하지가 않은데, 그만큼 오래되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사찰에서 내려오는 기록을 종합하면 통일신라시대 문무왕 20년(680) 담화덕사(曇華德師)가 세우고 고려 초기 혜거국사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자복사(資福寺)는 조선 초에 국가의 복을 기원하기 위하여 각 지방에 정책적으로 지정하였던 절로 각 종파별로 나누어 대표 사찰을 선정하였다. 이 자복사 선정과정에서 유서 깊은 대가람이 누락되기도 하고, 이미 없어진 사찰에 주지가 임명되기도 하는 등 문제가 있어 태종 7년(1407) 전국의 산수(山水) 좋은 곳의 대가람 88개 명찰을 선정하여 자복사를 대신하게 된다. 이때 안성에서는 석남사가 선정되었으니 당시 안성을 대표하는 조계종 사찰로 사세와 위상을 짐작케 해 준다.

태종 7년(1456)에는 세조가 석남사 승려들의 사역을 면제하니 수도에만 전념토록 하라는 교지를 내릴 정도의 위상을 갖고 있었으나 임진왜란, 정묘호란(1627) 그리고 병자호란(1636∼1637)을 거치면서 많은 피해를 가져왔다. 특히 두 호란 때 하루아침에 부처님을 모시는 절이 불씨가 되었다는 1725년의 ‘석남사법당칠중창기적’ 기록으로 보아 임진왜란 보다는 그 이후의 호란 때 더욱 피해를 입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병자호란 때는 ‘석남사에 머물던 병사를 용인 광교산으로 이동시킨다’는 내용으로 보아 당시 군인들의 병영으로 삼고 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이후 불타버린 사찰은 효종 때(재위 1649~1659) 석왕사의 해원이 중수하여 사세를 확장하였으며, 1732년(영조 8)에 다시 중수하였다.

‘이 후 주지승이 감언이설에 속아 정전과 대방(大房) 등을 모두 아래로 이건하였다. 이로 인하여 머물던 승려는 망하여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되었고 거리에 나가 걸식하게 되었다. 오혜성이란 자가 절에 산림 9정(町)과 과일나무, 밭 등을 헌사 하였다. 아울러 금성 기씨도 논을 헌납하니 이를 잇는 이들이 2∼3인이 되었다.’

1941년의 ‘석남사사기’에는 위와 같은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이 있다. 주지승이 감언이설에 속아서 대웅전 등 건물을 아래로 이건 하여 망했다는 내용인데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인지 의문스럽다. 지금의 석남사 위쪽으로는 이정도 크기의 사찰이 들어갈 만 한 집터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석남사 대웅전 계단
석남사 대웅전 계단

◇도깨비가 찾아온 장엄한 영산전, 수려한 대웅전

석남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은 보물로 지정된 영산전인데 원래 석가모니 불상과 그 생애를 여덟 가지로 나누어 그린 탱화를 모신 곳이었으나 현재 그림은 남아 있지 않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집으로 낮은 자연석 기단 위에 민흘림기둥을 세웠으나 규모는 작은 편이다.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공포가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쳐 나온 재료의 끝이 짧고 약간 밑으로 처진 곡선을 이루고 있다. 튼튼하게 균형 잡힌 모습을 이루고 있으며 조선 초에서 중기 사이의 건축 양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내부에는 불단을 조성하고 석가모니불을 모셨으며, 천정에는 닫집을 달아 장엄하게 장식을 하였다. 부처님 주변으로는 원래 16나한상이 있었으나 지금은 500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이 영산전의 건립연대는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목재의 연륜연대 측정결과 1549년∼1564년 사이에 벌채가 이루어진 나무로 만들어졌으니 건축시기를 대체로 짐작할 수 있다.

도깨비 촬영지 안내판
도깨비 촬영지 안내판

그 다음 중요한 건물은 대웅전이다. 석남사의 여러 부처와 보살을 모시고 종교의식을 치르는 건물인 불전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축물이다. 석남사 대웅전은 정묘·병자호란 때 불에 타서 없어진 것을 1684년에 다시 짓고, 1725년에 크게 수리한 것이다.

건물의 생김새를 보면 별도의 축대는 없이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 기단만 한 단을 두고, 자연석 주초와 둥근 기둥을 사용하여 몸통을 구성하고, 지붕은 옆면이 수직으로 마감되는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1725년 수리 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나, 여러 차례 부분적인 수리가 진행되면서 다양한 시기의 모습이 같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앞쪽에는 공포를 기둥사이에 2개를 두고 뒤쪽에는 1개만 두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놓는 모습은 조선후기에 기존 건축물을 적극적으로 재활용하는 시대적 특성을 잘 보여 주는 것이다.

대웅전의 주존불은 신라시대의 불상이었다고 전해질 정도로 오래된 불상이었지만, 언제인지 분실되어 현재는 새로 조성한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삼존불을 모시는 불단과 닫집은 다른 사찰과 비교하여 상당히 앞으로 당겨진 위치에 있다. 일반적으로 불단이 뒤쪽 벽에 가깝게 모셔지는 것에 비하여 이곳의 불단은 건물의 정가운데 보다 약간 뒤쪽에 위치하지만 비교적 입구와 가까워 들어가면서 처음 보이는 부처님의 모습은 수직상승감이 있다. 그리고 좌우측에는 1869년에 제작된 칠성탱과 1890년에 제작된 신중탱이 모셔져 있다. 예전에는 1580년에 200근 무게로 조성한 동종이 있었으나 1966년 도난당하여 현재는 소재지가 묘연하다.

이곳 대웅전은 2016년 tvN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도깨비 김신(공유 분)은 눈 덮인 석남사 대웅전 앞에서 죽은 누이동생 김선과 그의 남편인 왕여를 추모하며 풍등을 날린다. 올라가는 좁은 계단 위쪽에 있는 대웅전과 청명한 별밤을 수놓은 풍등의 불빛은 드라마이기는 하지만 석남사의 아름다움을 그지없이 잘 묘사하였다.

석남사 마애여래입상
석남사 마애여래입상

◇사람은 미륵을 만들고, 미륵은 아이를 점지한다

석남사에서 계곡으로 정상을 향하여 약 700m가량 올라가다 보면 거대한 바위에 불상을 새겨놓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석남사마애여래입상이 있다. 높이는 5.3m인데 나말여초에 만들었다고 추정만 할뿐 대개의 마애불이 그렇듯 언제, 누가, 왜 여기다가 불상을 새겨 놓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 이 불상의 전반적인 조각 수법을 볼 때 다른 신체 부위에 비하면 발가락을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미륵님이 넘어지지 않고 잘 지탱하며 오래도록 중생들을 구원해 주길 기원하는 의미였을까?

마을 사람들은 이 불상을 미륵님으로 믿고 있다. 이 미륵님께 빌면 영험이 있다고 소문이 나서 안성, 천안, 평택, 진천 등에서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리고 미륵님의 코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에게 영험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대를 잇고자 하는 욕망은 위험을 무릅쓰고 4m가 훌쩍 넘는 높은 곳에 위치하는 부처님의 코를 갈아내고, 돌가루를 마시는 행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사람은 바위에 미륵불을 깎아 만들고 미륵불은 자신의 코로서 아이를 점지해 주니 신과 인간은 서로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는 관계인가 보다.

뜨거운 여름날 흠뻑 땀을 흘리고 석남사를 찾아가면 시원한 계곡에 발을 담글 수 있다. 석남사 입구에 위치한 서운산 자연휴양림에는 가족과 함께 추억을 쌓을 수 있는 목재체험장도 준비되어 있다. 올여름에는 경기남부의 명산 서운산과 전통사찰 그리고 계곡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석남사를 찾아오길 권한다.

홍원의 안성맞춤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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