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을 단순하게 생물학적으로 구조화하면 탄생-성장-노화-죽음으로 정리된다. 하지만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 중첩돼 사회공동체로 확장된 한 인간의 삶은 죽음 이후에도 지속가능할 수 있다. 개인의 유·무형 기억이 공동체를 통해 보존되고 문화유산으로 확장되었을 때 말이다. 이것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공동체간 소통을 통해 후세에 전달될 것이다. 곧 나의 삶은 죽음으로 마침표를 찍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발전을 이뤄나갈 수 있다. 공동체를 통한 지속가능성의 담보야말로 인류가 다른 종과 차별화된 영생의 방법이지 않을까.

공동체의 형성과 공동체 문화의 생성은 인간이 가지는 필수적 요소이다. 인간은 다양한 의미와 종류의 사회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 욕구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 인간관계의 조직, 사회를 필요로 한다. 여기서 사회적 욕구를 충족, 즉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자하는 것, 유대를 지속하고자하는 욕구를 만족하기 위해 인간은 타인과의 협동과 대화를 통한 필연적 공동체를 형성시킨다.

공동체는 인종, 민족, 국가, 자치단체, 지역, 마을, 가족 등 지리·혈통으로 단순히 나뉘기도 하지만 더욱 복잡하고 난해한 특성을 지닌다. 이를테면 직업, 취미, 성격이나 취향, 정치적 성향, 기호 등 비가시적이고 변형 가능한 영역으로 나뉠 수도 있다. 앞선 공동체의 분류가 필연적이고 선택불가능한 선천적 조건이라면 후의 공동체는 비교적 선택가능하고 가변적이라고 하겠다. 그렇기에 공동체를 정의할 때 쉽게 지역공동체라 지칭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른다. 물리적으로 특정적 장소가 있다하더라도 다양한 문화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다. 공동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인에서부터 사회로 확장되는 가시적, 비가시적 영역의 가능한 모든 범위의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공동체를 언급할 때 지역공동체와 문화공동체를 합해 지역문화공동체라 지칭함이 적당할 것이다.

지역문화공동체가 해체되고 있다. 그간의 신도시, 신시가지 위주의 개발 정책으로 인해 기존 도시의 원도심 및 구시가지와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한 구상권이 급격히 침체했다. 비수도권 지역의 경우 도시 전체가 쇠퇴의 조짐을 보이는 곳도 많은 바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도시재생사업이다. 그러나 그간의 도시재생사업은 주로 개별 건축물이나 도로 정비에 국한된 물리적인 재생 경향이 있다. 1960년대 근대화, 산업화 이후 형성된 원도심의 노후화로 인한 도시계획은 주로 재개발, 재건축 등으로 이어졌다. 이는 막대한 비용의 지가상승,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져 기존의 공동체 구성원의 대부분을 이탈시키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불러오기도 했다.

도시재생은 물리적 공간의 활용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영역에서 지역문화공동체의 정체성과 가치를 재생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해야만 한다. 또한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닌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수십 년 혹은 수년이 흘러 제2, 제3의 도시재생을 반복해야 한다. 긴 시간, 우리는 그러한 사례를 수없이 목격했다. 얼마 전부터 문화적 도시재생의 전략으로 ‘마을만들기’나 ‘문화마을’ 사업 등 예술가와 지역주민이 힘을 모아 문화경관을 조성하고 관광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들이 각지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현주민의 지속가능한 정주환경 마련과 사회경제적 삶의 선순환 없이는 공동체는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는 것을 수차례 드러냈다.

지난해 12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제3차 문화도시’로 수원시를 포함한 전국의 6곳을 지정했다. 문화도시는 지역의 특색 있는 문화자원을 활용해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을 이루고 주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지역문화진흥법」에 따라 지정한다. 선정된 도시에 2022년부터 2026년까지 5년 동안 최대 국비 100억 원, 올해에는 도시당 국비 15억 원을 지원한다. 이 가운데 수원시의 문화도시 조성사업은 시민협의체·기관단체협의체·행정협의체·기획자문그룹 등 ‘문화도시 추진 거버넌스’를 구성하고 문화도시센터·운영위원회 등을 운영하며 추진체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본격화했다. 문화도시 사업에 참여하는 시민이 행정과 예술 등 각 부문의 전문가와 함께 성장하는 것을 추구하는 기반 마련으로 유의미하다.

문화도시 사업은 수십년 동안 이뤄진 도시재생 사업의 연장선에 있다. 실패 혹은 성공로 분류하는 모든 사례에 정답은 없다. 도시와 구성원이 다른 만큼 족집게 선택과 적용이 반드시 필요하다. 무엇보다 마을을 구성한 물리적 시간과 공간의 주인으로서 삶을 꾸려온 공동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우선이다. 또 이 공동체 안에 살아서 꿈틀거리는 역사, 정체성, 꿈, 그리고 내밀한 욕망까지 두루 살피는 것이 성공적 문화도시 조성의 방향이다. 마지막으로 공동체의 삶을 보존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보다 실질적이면서도 독자적인 대안 마련에 공을 들여야 한다. 낡고 허름하고 쇠퇴한 원도심에 대한 문화적 도시재생은 개발이 아닌 회복이자 치유의 과정이 돼야 할 것이다.

조두호 아트스페이스 어비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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