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경암 전경
망경암 전경

성남에는 수정구 복정동의 영장산과 분당구 율동의 영장산 두 곳이 있다. 두 곳은 한자도 같아서 신령 ‘령(靈)’자와 길 ‘장(長)’자를 쓴다. 수정구 복정동의 영장산은 1893년에 세워진 ‘망경암 소비’에 ‘영장산’이라고 표기가 돼 있고, 경기도 광주시 직동과 성남시 율동에 걸쳐있는 영장산은 조선후기 실학자 순암 안정복이 1754년에 지은 ‘영장산객전(靈長山客傳)’이란 글 속에서 자신이 사는 곳(현재 광주시 중대동)을 영장산으로 표현했으니 그곳도 위치상 영장산이 맞다.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부터 분당구 율동에 이르기까지 성남을 한 아름 품고 있는 영장산은 백두대간으로부터 연유하는 한남정맥에 속한 산이다. 한강 이남의 산맥을 뜻하는 한남정맥은 안성의 칠장산에서 출발해 용인의 석성산과 수원의 광교산을 거쳐 안양의 수리산으로 이어지는데 성남의 영장산은 석성산에서 광교산과 갈라져 남한산성 검단산으로 내려오는 지맥에 자리하고 있다. 한강 이남의 굽이치는 산맥 끝 자락, 가천대학교 뒷산 영장산에 오르면 서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곳에 망경암이 있다.

‘암자의 이름을 망경(望京)으로 한 것은 이 암자에 올라 서울을 바라보면 대궐에 계신 우리 임금을 향한 애절한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라고 적힌 망경암 비석의 글을 통해 그곳에 서서 서울을 바라봄이 그저 경치를 감상하는 뜻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망경암의 바위 절벽에는 마애여래좌상(경기도무형문화재 제102호)과 함께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을 향해 복을 비는 축원의 글자들이 14군데나 새겨져 있다. 이 글자들이 새겨있는 바위는 ‘칠성대(七星臺)’라 불린다. 이 역시 망경암 비석에 ‘이 대에 올라 칠성에 빌면 하늘이 감동해 임금의 수명을 더해주기 때문에 대의 이름을 칠성이라 했다’고 쓰여 있다. 칠성은 하늘의 북두칠성을 말하는 것으로 사람의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신으로 신격화된 우리나라 대표 토속신앙이다. 전통 상례에서 시신을 북두칠성 모양의 일곱 구멍이 뚫린 칠성판 위에 모시는 것은 칠성님께 명을 받아 태어나 다시 칠성님께 돌아간다는 관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칠성신앙은 산신신앙과 함께 불교에 수용돼 사찰내 칠성각, 산신각, 삼성각의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망경암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
망경암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

토속신앙과 융화된 사찰의 이러한 공간들은 우리나라 불교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망경암의 바위 절벽 칠성대의 존재는 국내 사찰들의 일반적인 토속신앙 수용 방식과 다른 자연물 형태의 원형을 엿볼 수 있는 특별한 문화유산이다. 따라서 망경암과 가까이 있는 봉국사 관련 사료인 ‘봉국사신창기’에서 보이는 성부산(星浮山)이라는 명칭 즉, ‘별 뜨는 산’이라는 산 이름이 망경암과 더 잘 어울린다고 볼 수도 있겠다. 망경암 칠성대는 사찰 안에서도 접근이 어려워 바위 위 글씨들을 직접 육안으로 보기는 어렵다. 칠성대에 새겨진 명문들 중 대표적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영장산 망경암 칠성대에서 하늘과 산에 비나이다.
주상전하 임자생, 중궁전하 신해생, 만세토록 성수를 누리소서
세자저하 갑술생 빈궁저하 임신생 천세를 누리소서


임자년생 주상전하는 1852년생 고종을 뜻하며, 신해년생 중궁 전하는 고종의 왕비 중전 민씨이다. 그리고 세자와 세자비는 순종 부부를 말한다. 순종의 부인 세자빈 민씨를 맞았던 시기가 1882년이므로 이 각석은 1882년 이후, 대한제국 성립 전에 새겨졌다고 볼 수 있다.

대한제국 광무원년, 대황제폐하 만만세, 황후폐하 만만세, 황태자전하 천천세, 황태자비전하 천천세, 황자의화군 천세, 군부인 천세, 황자아기씨 천세, 귀인 마마 천세
우리 황실을 보우하소서

1897년 대한제국 이후 새긴 것으로 유추되는 두 명문 역시 모두 군주로 상징되는 나라의 명과 보전을 위해 칠성에게 비는 축원의 내용이다.

망경암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
망경암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

망경암 칠성대의 새겨진 글과 함께 그 앞에는 ‘망경암소비(望京庵小碑)’와 ‘망경암칠성대중수비(望京庵七星臺重修碑)’가 나란히 있다. 두 비문은 망경암과 칠성대에 얽힌 역사와 사연을 생생히 전해주고 있다. 비문의 내용에 의하면 비석과 칠성대 바위 절벽에 부처님과 글씨를 새기고 망경암을 중수한 사람은 조선 왕실의 종친 이규승(李奎承, 1835~?)이다. 이규승은 고종 9년(1872년)에 후손을 두지 못한 세종의 일곱 번째 아들 평원대군(平原大君)과 평원대군의 양자로 입적된 예종의 둘째 아들 제안대군(齊安大君)의 제사를 지내는 봉사손이 됐다.

망경암 칠성대는 고려시대부터 역대 성군들이 와서 친히 수복을 빌어 효험을 보았고 평원대군과 제안대군도 이곳에 제단을 설치하고 분향해 충효를 온전히 한 곳이라 하니 망경암과 칠성대의 연혁은 적어도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규승은 ‘망경암칠성대중수비’에 ‘가시덤불을 헤치고 폐허가 된 암자 터에 단을 설치하고 돌을 깎아서 절벽 위에 글을 새겼다’, ‘석공이 일을 마치차 망경암 스님들이 치하하였다’라고 적고 있는데 이를 통해 두 번째 비석이 세워진 때인 광무 2년(1898) 전에 망경암 중수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이규승이 1882년부터 망경암 칠성대에 조선 왕실에 대한 축원의 글씨를 새기고 기도를 이어가던 중 망경암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봉국사와 법륜사를 드나들던 궁인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졌다. 궁인들은 이규승의 정성에 감동했고 그 사실을 고종에게 전했다. 이규승은 이를 계기로 1885년 벼슬길에 나가게 된 것으로 보이며 기록상으로는 1904년 지금의 대통령비서실장 바로 다음 직위에 해당하는 비서원 승(丞)에 오른다.

망경암 칠성대
망경암 칠성대

1885년 처음 고종을 친견하는 날, 이규승은 고종의 망경암 칠성대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동안 칠성대에 글자를 새기고 매월 초하루 보름으로 분향하며 치성 드린 보람과 그 효험을 실감했을 것이다. 이규승은 벼슬길에 나아간 후에도 망경암 칠성대에서의 제의를 지속해 1893년 종묘서 영(令)으로 임명된 직후 칠성대에 첫 번째 비석 ‘망경암소비’를 세웠다. 그리고 을미사변 이후 국장위원으로 명성황후의 장례식을 주관하기도 한 이규승은 대한제국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개창된 후 나라의 영속을 빌기 위한 각석을 망경암 칠성대 위에 추가로 진행했다.

대황제 폐하 임자생 만만세 / 만세토록 영원히 평안하시며, 오랑캐 모두가 복종하게 하소서

황후 폐하 신해생 만만세 / 돌아가신 존호는 명성이며, 하늘이 덕으로써 보답해 극락연화대로 가시게 하소서

황태자 전하 갑술생 천천세 / 자태가 의젓하시니 창성하고 수를 누리게 하소서

황태자비 전하 임신생 천천세 / 그윽한 덕과 정숙한 거동

황태자 의화군 무인생 천세 / 이웃국과 사귀어 유람하시고 마음가짐이 충정하시도다.

군부인 신사생 천세 / 덕은 가정을 가지기에 알맞고, 거동은 규범에 합당하도다.

황자 아지씨 정유생 천세 / 경사는 덕을 따라 흡족하고 복은 수와 함께 융성하소서

귀인마마 갑인생 천세 / 하늘에서 상서로움을 내리니 길해 이롭지 않음이 없으리라.

평원과 제안 두 대군의 사손 신 이규승 혹 아들로 대신 행하게 할 경우는 가손 신 이용호는 삼가 정성을 다해 축사를 지어서 영장산의 신령과 법륜사의 아미와 봉국사의 세존과 망경암의 약사와 칠성대의 성신 앞에 성수를 비나이다.

위 내용은 이규승이 대한제국 이후 세운 망경암칠성대중수비의 일부이다. 명성황후의 명복을 비는 내용과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화군 즉, 의친왕 이강이 1894년 대사 자격으로 일본을 다녀오고 유럽 방문을 추진했던 것과 관련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 정유생 황자 아기씨는 고종의 일곱째 아들 영친왕 이은을 가리키며, 귀인마마는 영친왕의 어머니 귀인 엄씨이다. 을미사변 후 고종은 귀인 엄씨와 러시아 공사관에서 함께 생활했으며, 1897년 영친왕 이은을 낳자 귀인의 봉작을 내린 사실이 있다. 이어서 영장산의 산신과, 칠성대의 칠성신, 그리고 망경암, 봉국사, 법륜사의 세 부처님 등 신앙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이곳의 모든 신들에게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 앞에서 대한제국이 독립을 유지하고 번영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망경암 느티나무 보호수
망경암 느티나무 보호수

우리 황제의 덕은 하늘처럼 크시니 만수무강하게 하시고, 사랑과 은혜는 만백성을 포용하시니 일월처럼 빛나며 천지와 함께 영원하게 하소서. 황제의 자리에 임하시어 천년만년 누릴 수 있는 성세의 기틀을 마련하시게 하소서. 그리고 성자와 신손이 면면이 계승해 종묘사직을 영원히 보위하게 하소서. 엎드려 바라옵건대, 신령님께서는 이 촌성에 감동해 영원한 복을 보전하도록 도와주시고 상제님께서는 이 대한제국에 많은 복을 내려주옵소서. 분향하고 쌀을 바치며 물을 올리고 꽃을 바치오니 신령님들은 흠향하시기 바라옵니다.

이규승은 위기의 국운 앞에 충정의 간절한 마음을 이곳 망경암에 새긴 것이다. 그렇기에 이규승에게 망경암이 있는 이 산은 별이 뜨는 산 성부산보다 국운의 영장을 염원하는 영장산이어야 했다.

이처럼 오랑캐들의 위협으로 조선왕실에서 대한제국 황실로의 변화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라를 지키고 보전하고자 했던 충정의 염원이 새겨진 칠성대를 품은 망경암에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바라보는 마음은 각별해질 수밖에 없다.

성남시 박물관사업소 학예연구사 정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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