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 명령을 받았을 때, 한국이 어디 있는 나라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상부에서는 도착하면 알게 될 것이라고만 했습니다. -윌리엄 코(William C. Coe)- ’

한국이 어디인지도 몰랐던 스미스부대원들은 6·25전쟁 발발 이후 파죽지세로 남하하던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 이타즈케공항(현 후쿠오카 공항)에서 C-54 더글라스 수송기 4대를 타고 한국으로 왔다.

유엔군과 북한군의 첫 전투로 기록된 ‘죽미령 전투’를 치르면서 스미스부대원은 북한군의 남침 속도를 늦춰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한 대신 다수의 사상자와 포로가 생기는 비극을 감내해야 했다.

스미스부대원 540명의 넋은 540개의 돌로 쌓은 ‘오산 유엔군초전기념비’로 남아 현재의 우리에게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으며 매년 7월 5일이 되면 오산시 주최로 ‘미 스미스부대 전몰장병 추도식(이하 ‘추도식’)’을 개최하여 평화통일을 염원하고 있다.

추도식이 개최되는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오산시 외삼미동 600-1)’에는 유엔군초전기념관과 스미스평화관이 위치해 있어, 죽미령 전투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여 관람객에게 전쟁의 참상과 평화 수호의 중요성을 알리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스미스평화관 뒤편에 조성된 공원에 들어서면 C-54 더글라스 수송기를 형상화한 조형게이트와 거울연못 등을 뒤로 하고 ‘오산 유엔군초전기념비’와 ‘KSC부대’ 마크와 날짜가 새겨져 있는 알루미늄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 안내판의 정식 명칭은 ‘한국노무단(KSC) 안내판’으로 한국노무단에서 1972년 9월 21일에 오산을 방문하여 유엔군 초전기념비를 보수한 후에 제작해서 남긴 것이다.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요인은 다양하겠지만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일이 바로 ‘보급’이다. 전쟁을 치루기 위해선 무기와 식량, 생활용구 등 전쟁에 필요한 물자 모든 것을 끊임없이 보충해야 하는데 6·25전쟁 당시 미 8군 사령관인 월턴 워커 중장의 가장 큰 고민거리도 바로 이것이었다.

전투로 인해 붕괴된 도로망과 험준한 산악지형으로 인해 자동차로 물자 수송이 어려운 지역이 많았기 때문에 월턴 워커 중장은 한국인들로 구성된 민간인 수송단을 창설하였는데 이들이 바로 현재 한국노무단(KSC, Korean Service Corps)이다.

한국 노무단 소속 노무자들은 지게에 탄약, 연료, 식량, 보급품 등을 싣고 밤낮 가리지 않고 산악지대 800~1천m를 오르내리며 전투지까지 물자를 보급했는데, 이 때 메고 다녔던 지게가 대문자 A와 닮았다 해서 ‘A특공대’라고도 불렀다.

당시의 증언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방 산악지대 고지까지 M1 실탄이 든 철통 2개를 멜빵에 지고 기어오르곤 했다.(진복균씨, 당시 15세)", "이들은 전투지대에서 불순한 기후와 험난한 지형을 무릅쓰고 자동차 수송이 불가능한 지역으로 보급품을 운반하였다.(미8군 사령관 윌리엄 J.리브시)"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은 한국노무단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한국인 노무자들은 미국인보다 평균 신장이 작았으나 매일 10마일(16㎞)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는 고지로 100파운드(45㎏) 정도의 보급품을 운반하고 되돌아왔다. 만일 노무자들이 없었다면 최소한 10만 명 정도의 미군 병력을 추가로 파병해야 했을 것이다."

한국노무단은 보급 활동 이외에도 수색작전, 지뢰 매설, 철조망 설치, 전선지휘소 경계, 방치된 적 물자 폭파, 전차 및 차량 연료 보충, 총기 정비, 전·사상자 후송, 설거지, 음식물쓰레기 매립, 의무대 청소, 전투복 바느질, 전투물자 정리 등 전쟁터에서 전투 이외의 모든 업무를 수행하였다.

평택 험프리스 기지 안에 자리한 한국노무단 사무실 안에는 자기 신체만한 드럼통을 지게에 얹어 운반하는 한국노무자의 사진이 걸려있다. 제대로 된 군복도 없이 무명옷을 입고 지게를 짊어진 모습에서 우리는 전쟁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짐을 지우게 하는지 느낄 수 있다.

또한 다가오는 추도식을 기념하여 다시는 새하얀 무명옷과 같이 아름다운 이 나라에서, 또 다른 어느 누군가의 소중한 조국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해 본다.

박연희 오산시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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