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드라마 광팬…한국 문화에 빠져 한국행 결심
3년 전 입국 후 영어 교사로 활동
모델은 엄마 꿈이자 자신이 꿈꿔온 길
한국 패션업계, 금발·마른 백인 모델 선호
아랍·레바논계 아름다움 적극 알릴 것

다문화人Story

다문화인 200만 시대다. 주위를 둘러보면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관념은 아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중부일보는 이에 대한 간극을 좁히고자 ‘다문화人Story'를 연재한다. ‘‘다문화人Story’는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다문화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소개하고 우리 사회의 변화를 함께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인터뷰 중인 레베카 조지 누어 씨. 사진=이세용기자
인터뷰 중인 레베카 조지 누어 씨. 사진=이세용기자

모델의 캣워크는 강렬하다. 큰 키와 마른 몸매, 좌중을 압도하는 시선으로 성큼성큼 런웨이를 활보한다. 패션 잡지에 소개되는 외국인 모델들은 슬림한 몸매와 작은 얼굴, 하얀 피부를 자랑한다. 어쩌다 흑인 모델이 등장할 때도 있지만 백인들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아랍이나 동남아 출신들은 낄 자리조차 없다. 이런 곳에서 모델의 꿈을 좇는 아랍인이 있다. 바로 레바논계 미국인 레베카 조지 누어(Rebecca George Nour) 씨다. 레베카 씨는 스스로를 ‘건강미 넘치는’ 모델이라고 칭한다.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보면 건강미가 절로 느껴진다. 그는 "마른 몸매와 백인이 아니면 한국 모델계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인식을 당당히 바꾸겠다"고 말했다. 레바카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에는 어떻게 오게 됐나
어렸을 때부터 두 가지 꿈이 있었다. 하나는 다른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딱히 어느 나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K-팝과 K-드라마를 접하게 됐다. 이후 한국 가수 콘서트가 열리는 날이면 모든 일을 제쳐놓고 달려갔다. 한국 드라마는 100편도 넘게 봤다.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에 빠져들게 됐고 한국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내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생활은 어떤가
미국에서는 플로리다에 살았는데 늘 여름 같은 날씨였다. 그래서 3년 전 겨울 한국에 들어올 때도 두꺼운 재킷 하나 챙겨오지 않았다. 이튿날 바로 의류매장에서 두꺼운 점퍼를 사서 입었다.(웃음) 이제 날씨는 그럭저럭 익숙해졌다. 하지만 생활비는 여전히 버겁다. 처음엔 서울에서 살았는데 집이 매우 좁고 월세도 비쌌다. 그러던 중 알게 된 한국인 친구가 인천으로 이사하는 게 어떠냐고 해서 지금은 인천에 살고 있다. 이전보다는 넓은 집이고 집세도 좀 더 싸서 만족한다.
 

모델 활동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나
사실 바로 모델 활동을 하기는 어려웠다. 한국말도 서툰 데다 모델이 되기 위한 방법도, 관계자도 몰랐다. 그래서 일단 영어교사 일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2년 반 정도를 근무했다. 나름 적성에도 맞았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한국말이 많이 늘었다. 아이들이 영어보다 내 서툰 한국말을 더 편하게 느꼈던 것 같다.(웃음) 하지만 영어 교사로서의 삶은 내가 꿈꿨던 삶이 아니었다. 한국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어떻게 하면 모델로 활동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 에이전시를 수소문해 계약하고 프리랜서 모델로 활동을 시작했다.
 

레베카 조지 누어 씨. 사진=이세용기자
레베카 조지 누어 씨. 사진=이세용기자

모델이 되려고한 동기는 무엇이었나
모델로 활동하는 것은 내 꿈과 동시에 엄마의 꿈이다. 엄마는 결혼하기 전 레바논에서 모델로 활동했다. 하지만 모델로서 성공하겠다는 엄마의 꿈은 결혼을 하고 우리 오남매를 낳으면서 부서졌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꿈도 함께 이뤄주고 싶었다. 또 엄마에게 딸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또 다른 이유는 한국인 남자친구를 사귀면서부터였다. 지금은 회사원이지만 남자친구는 이전에 모델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그는 내가 모델로 활동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격려와 응원을 보내준다. 또 모델 경험자로서 패션이나 메이크업 등 다양한 부분에 조언도 많이 해준다. 그의 도움을 받으면서 더 자신감 있게 모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굳이 한국에서 모델을 할 이유가 있었나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내 고향, 내 집처럼 느껴졌다. 또 매우 안전하고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것도 이유가 됐다. 미국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내 집, 내 고향처럼 느껴본 적은 없다. 한국은 들어올 때부터 내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곳이라고 직감했다. 물론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돌며 모델 활동을 할 계획이지만 결국 돌아올 곳은 여기다.
 

한국에 살면서 느끼는 어려움은 뭔가
내가 알기론 한국에 거주하는 레바논계 외국인은 20명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인들 중 레바논인들과 교류해본 사람들도 극소수일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레바논 사람들을 잘 모른다. 나 역시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 사람, 중동 사람 정도로 인식된다. 하지만 레바논은 다른 중동 국가와는 다르다.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과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절반씩 있다. ‘중동=이슬람’이라는 한국인들의 고정관념 때문에 힘들 때가 있다.
 

모델 활동은 할 만 한가
패션업계가 아랍계 모델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다. 외국인 모델을 구할 때도 금발의 백인을 선호한다. 그들은 외국인 모델은 모두 작은 얼굴에 푸른 눈,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패션 잡지에 나오는 외국인 모델들 역시 대부분 백인이다. 아랍계 모델들이 패션 잡지에 나오는 일은 거의 없다. 또 모델은 말라야 한다는 편견이 여전히 존재한다. 조금씩 변해가는 추세지만 여전히 깡마른 몸을 선호한다. 나는 스스로 건강한 몸을 가진 모델이라고 생각하지만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선이나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럴 때 힘들다.

사진=레베카 조지 누어 씨 제공
사진=레베카 조지 누어 씨 제공

편견을 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아랍계 모델로 활동하는 것은 큰 도전이다. 한국인들에게 다양한 형태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그래서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나만의 매력을 알리고 있다.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고 아랍계 여성이나 모델도 아름답다는 인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방송에도 많이 출연하려 한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외국인 방송인 중 아랍계는 거의 없다. 방송에 출연해 레바논이라는 나라와 레바논 사람들, 더 나아가 아랍 사람들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그러다 보면 아랍과 레바논의 아름다움에 대해 인정할 날이 올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보는 것처럼 내 피부는 하얗지 않다. 마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모델로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아직은 내 시간이 아닐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가능성을 믿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곧 한국에서 모델로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고정관념에 쌓여 도전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롤모델이 되고 싶다.

이세용기자/ 
 

※ 우리말이 서툰 레베카 씨를 위해 실제 인터뷰는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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