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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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 시대’라는 말이 익숙해진 지 오래다. 그만큼 기대 수명이 크게 늘었다. 현대 의학의 발달과 개인의 건강에 대한 관심 및 노력이 이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지난 7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OECD 보건통계 2022>로 보는 우리나라 보건의료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건강·보건의료이용·의료장비 보유 수준이 OECD 평균보다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는 연간 14.7회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기대수명 역시 83.5년으로 상위권에 속했다. 그러나 통계에서 보여주는 순위가 ‘질병 없이 건강한 삶’을 산다는 것과 직결되진 않는다. 평균수명이 늘면서 다양한 질환의 유병률도 증가하고 있다. 질병과의 싸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암’이라 불리는 ‘악성종양’은 환자뿐 아니라 가족까지 무너뜨리는 대표적 질병이다. 암에 걸린 환자들과 가족들은 더욱 확실한 치료 방법을 찾으려 분투 중이다. 그리고 최근 발표된 3곳 병원(세브란스·서울대학교·제주대학교병원)의 ‘중입자치료 실시 예정’ 소식은 이들의 치료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혹시 중입자치료 받아보신 분 계신가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3대 사망 원인(2020년 기준)은 암, 심장 질환, 폐렴이다. 한 해 암으로 진단받는 환자는 25만 명에 달하고, 암으로 인한 사망은 전체의 27%를 차지하며 수십 년째 사인 1위를 차지해왔다. 특히 암 사망률은 10만 명당 160.1명으로 사인 2위로 나타난 심장질환(63명) 사망률의 2.5배를 넘는다. 게다가 암 사망률은 그래프상 꾸준히 높아지며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만큼 암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존재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암 진단을 받은 사람이나 가족 중 암 환자가 있는 이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가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새로운 정보에 관심을 보이며 국내외 사례들과 경험담을 공유하고 있다. 그중 ‘중입자치료’와 관련된 내용을 여럿 볼 수 있다. 효과적인 암 치료법으로 알려진 중입자치료는 그간 국내에서 실시하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많은 이가 중개업체를 통해 고액의 비용을 지불하고 독일이나 일본 등 해외 병원으로 나서야 했다.

국내 중개업체를 통하지 않는다고 해도 비용이 많이 들기는 마찬가지다. 췌장암을 앓고 있는 남편과 일본에서 지내고 있는 A씨는 자신이 활동하는 온라인 카페를 통해 일본 QST 병원과 카나가와현립 병원을 이용할 때 드는 비용과 절차를 소개했다. 지난 4월 기준 총 770만 엔(7천500만 원)가량으로 기본비용과 치료 전 필요한 영상 검사비, 외국인 환자 대행 의료코디네이터 비용 등이 포함된다. 여기에 항공료와 식비, 치료 기간에 지낼 숙소비 등도 고려해야 한다.

비용 문제는 차치하고 정보라도 제대로 얻으면 다행이다. 환자와 가족의 타들어가는 마음을 악용해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업체도 더러 있었다. 동 카페 회원인 B씨는 대장암 말기에서 폐전이로 고통받는 아버지를 위해 중개업체만 믿고 치료를 시도했다가 부작용으로 아버지를 더욱 힘들게 했던 사연을 공개했다. 업체는 B씨의 아버지가 중입자치료 대상자가 될 것처럼 희망을 불어넣어 계약을 유도하고, 시일이 지난 후 독일병원으로부터 치료불가 답변을 받았다며 전혀 다른 치료법과 병원을 권했다. B씨는 업체의 말을 믿고 1억2천만 원을 들여 독일행을 택했지만 아버지는 부작용으로 전보다 더 고통받다가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중입자치료가 뭐길래

중입자치료는 방사선 치료의 하나로 무거운 입자를 사용하는 치료다.

기존 방사선치료는 가정용 전압의 5만 배 높은 X선이나 감마선 같은 에너지를 종양에 쪼이면서 암세포의 DNA를 파괴하는 방식이다. 햇빛을 돋보기로 모아 종이를 태우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이 방식은 종양뿐 아니라 주변의 정상조직도 함께 손상시켜 치료 부위에 따라 부작용 생길 수 있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등장한 것으로 양성자(proton)치료가 있다. 가정용 전압의 100만 배 높은 양성자선을 암세포에 조사해 집중적으로 DNA를 파괴하는 방식이다. 일정 깊이에서 단번에 에너지 방출하고 사라지는 양성자 빔의 현상 활용한 치료법이다. 종양 부위에만 선택적으로 고에너지를 투과하므로 종양의 앞과 뒤에 있는 정상조직은 방사선 피해를 덜 입게 된다. 암세포에는 최대 손상을 주고 주위 조직 손상은 최소화하는 특징이 있다. 양성자치료는 국립암센터가 15년째 시행하고 있으며 삼성서울병원에서도 실시하고 있다.

중입자치료는 양성자치료에 사용되는 수소입자보다 12배 무거운 탄소입자를 이용해 중입자선을 암세포에 조사해 파괴한다. 더욱 무거운 입자가 더 빠른 속도로 조준한 목표(종양)에 도달하게 함으로써 파괴력을 높인 방식이다. 탄소 이온을 빛의 속도의 70%까지 가속해 암세포만 명중한다. 기존 방사선치료에 비해 암세포를 죽이는 능력이 2~3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강도가 세기에 기존 치료가 5~6주 걸린다면 3주 수준으로 짧아진다. 양성자치료에 이어 난치암을 극복할 수 있는 ‘꿈의 암 치료기’라고 불린다.

◇내년 3월부터 국내서도 중입자치료 가능

세계입자방사선치료학회(PTCOG)가 이달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중입자치료 가능 국가는 일본(7곳), 중국(3곳), 독일(2곳), 이탈리아(1곳), 오스트리아(1곳), 대만(1곳)이다. 국내에선 세브란스병원이 내년 3월 첫 환자 치료를 시작하며 서울대학교병원은 2025년 오픈할 예정인 부산 기장 암센터에서 2027년 치료를 목표로 준비 중이다. 제주대병원도 최근 일본 관계 기관 등과 MOU를 체결하고 2025년까지 ‘한국 중입자선 암치료 메디컬 리조트’를 완공하고 2026년부터 운영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국내 환자들을 맞게 될 세브란스병원의 중입자암치료센터에는 고정치료실 1곳과 회전치료실 2곳이 마련됐다. 고정치료실에서는 환자가 누워있으면 수평 방향으로 조사한다. 회전치료실에선 직경 약 12미터의 원통형 장비가 환자의 몸을 중심으로 360도 회전하며 최적의 방향에서 치료선을 조사한다. 치료가 필요한 신체 어느 부위든 조사 가능해 정밀한 치료를 기대할 수 있다.

◇모든 암을 퇴치할 ‘꿈의 암 치료기’?

중입자치료기 국내 도입과 세브란스병원의 내년 3월 치료 시작 소식에 암 환자들은 당장이라도 암을 이겨낼 수 있을 듯한 기대감에 환영하는 분위기다. 중입자치료는 고형암을 대상으로 하는 치료다. 치료 후 경과에 따라 항암치료가 이어질 수도 있다. 암을 단번에 해결할 꿈의 치료라고 너무 큰 기대를 하기엔 무리가 있다. 연세의료원 중입자건립추진본부 부본부장인 김용배 교수는 "대부분의 고형암 치료에 사용 가능하다"며 "특히 폐암, 간암, 췌장암 등 3대 난치암은 물론 치료가 어려웠던 골 및 연부조직 육종, 척삭종, 재발성 직장암, 두경부암, 악성 흑색종 등에 우수한 치료 성적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암 대부분이 고형암이기에 모든 암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분명 조건이 있다. 광범위하게 전신에 전이된 암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다만 전이된 부위에 2~3개 정도의 암세포만 있을 땐 치료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과거에 방사선치료를 받은 적 있는 환자도 중입자치료가 어려울 수 있다. 백혈병 등 전신에 광범위하게 퍼진 혈액암은 당연히 제외다. 위암이나 대장암 같이 연동운동을 하는 장기의 암도 중입자치료가 어렵다.

부작용에 대해 세브란스병원 금웅섭 방사선종양학과교수는 "부작용은 암치료 과정에서 어떤 치료든 발생할 수밖에 없으나, 이 치료는 기존보다 부작용이 훨씬 적은 것은 확실하다"며 "치료 대상이 돼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는 전문의와의 상담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입자치료는 양성자치료를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치료비 문제가 걸려있다. 처음 도입된 만큼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되지 않아 치료비용이 수천만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브란스병원 박진섭 홍보팀장은 "치료효과를 입증할 자료를 바탕으로 보험적용 대상이 되도록 계속적으로 행정청에 신청할 것이다"라며 "보험 적용으로 더 많은 환자가 혜택을 입을 수 있도록 병원 차원에서 노력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연세중입자암센터는 중입자치료기를 수개월 째 시범가동하며 의료장비 도입에 대한 행정절차를 밟고 있다. 현재 중입자치료 관련 진료 문의를 따로 받고 있진 않으며, 첫 치료를 시작할 내년 3월부터 전문의들의 협진을 통해 치료를 결정하게 된다.

박지영·신다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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