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노화 연구 어디까지 왔나
젊은 피가 노화진행 속도 늦춰
똥 속 미생물 덕에 뇌 회춘시켜

BC 3세기 중국의 진시황은 불로장생을 꿈꾸며 불로초를 구하려 노력했다. 17세기 독일의 의학자이자 화학자인 안드레아스 리바비우스는 젊은 청년과 노인의 동맥을 연결하면 젊은 혈액이 노인의 몸에 들어가 회춘한다고 믿었다. 결과적으로 진시황은 49세에 사망했고 리바비우스의 연구는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교황의 수혈금지령 포고와 함께 중단됐다. 그러나 ‘불로장생’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진행 중이다.
 

◇항노화를 향한 세계적 관심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이 지난 2013년 설립한 ‘칼리코’는 노화 원인과 수명연장에 대해 연구하는 기업이다. 2014년부터 글로벌 제약사 애브비와 15억 달러를 투자해 노화방지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오라클의 공동창업자인 래리 앨리슨은 1997년 노화 연구에 주력하는 ‘앨리슨 의학재단’을 설립하고 수억 달러 이상 지원했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러시아계 억만장자 유리 밀러와 함께 지난해 생명공학 스타트업인 ‘알토스랩’에 거액을 투자해 관심을 모았다. 총 3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해 이목을 끈 알토스랩은 지난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공식 출범해 5월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최근엔 영국 케임브리지 소재 첨단 산업단지인 그란트파크에 연구소를 신설하며 연구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이들 연구의 목적은 노화 과정 자체를 억제해 노화 관련 질병의 발병을 막거나 늦추는 것이다. 노화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조작해 노화를 이겨내려는 연구는 수십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져 왔다.

◇다양한 갈래의 항노화 연구

-‘젊은 세포’로 늙은 세포를 대체하는 방법은 항노화 연구에서 대표적인 방법이다. 2012년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이자 알토랩의 수석 과학고문인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성체 세포를 원시 상태로 돌릴 인자를 찾아내 ‘야마나카 인자’라 칭하고 이를 주입해 만든 줄기세포를 ‘유도만능 줄기세포(IPS)’라고 불렀다. 세포로 구성된 신체에서 노화된 세포를 되돌릴 수 있다면 이론적으로는 신체 회춘이 가능하다. 실제 영국 케임브리지대 생명과학연구소는 53세 실험자의 성체 피부세포에 이 기술을 적용해 23세의 피부 세포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30년을 되돌린 피부세포가 콜라겐 생성 등 본래 역할을 하며 정상 피부로 기능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역분화가 잘못되면 세포분열이 멈추지 않아 암으로 발전할 확률이 높다. 환자에게 적용하려면 매우 정밀한 역분화 세포 처리 기술이 필요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젊은 피’를 수혈하는 방법도 주요 연구 대상이다. 2005년 네이처지는 늙은 쥐와 젊은 쥐의 혈관을 연결한 결과, 늙은 쥐의 상처 회복 속도가 빨라졌다는 미국 스탠퍼드대와 UC버클리 연구진의 논문을 발표했다.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의대 연구진은 늙은 쥐에게 젊은 쥐의 피를 반복적으로 투여한 후 늙은 쥐의 기억력이 향상한 것을 확인했다. 2017년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65세 이상 치매 환자 18명에게 젊은 사람의 혈액에서 추출한 혈장을 투여한 결과 치매 증상이 완화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젊은 분변’을 활용하는 방법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아일랜드 코크대의 존 크라이언 교수 연구진은 네이처지를 통해 늙은 쥐에게 젊은 쥐의 분변 미생물을 이식해 뇌를 다시 젊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사람으로 치면 청년인 3~4개월 젊은 쥐의 분변을 채취해 20개월 된 늙은 쥐에게 이식했다. 1주에 2회씩 8주 동안 젊은 쥐의 분변 시료를 먹이자 학습과 기억을 담당하는 뇌 영역인 해마가 물리적·화학적으로 젊은 쥐와 비슷해졌다. 연구진은 뇌의 회춘에 미생물이 관여했다고 밝혔다. 현재 분변을 통해 장내 미생물을 이식하는 시술은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에 의한 장염 등을 치료하는 데 쓰이며 적용 질환 범위의 확대를 위해 국내에서도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식이제한’이 노화와 관련된 질환을 감소시킨다는 사실은 1935년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2009년 평균수명 27년인 붉은 털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30% 열량을 줄인 식단을 20년간 제공한 원숭이 그룹이 심장질환과 당뇨 등의 성인 질환이 3분의 1가량으로 줄었으며 두뇌 퇴행도 더디게 진행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과학자들은 판매 중인 의약품을 중심으로 신체를 공복 상태로 만드는 약품을 탐색했다. 에너지 조절 단백질의 활성을 조절해 세포 내 에너지 감소상황의 신호를 줌으로써 간헐적 단식의 효과를 내는 약에 주목하며 연구 중이다. 대표적인 약이 당뇨 치료제에 들어있는 ‘메트포르민’이다. 미국에서는 2016년부터 이와 관련한 연구가 미국 내 14개 센터의 비당뇨병 피험자 3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 중이다. 면역억제제 ‘라파마이신’도 여러 동물 실험을 통해 포유류 수명을 연장시키는 효과가 있음이 밝혀지면서 노화 억제 물질로 관심을 받고 있다. 2016년 워싱턴대는 이라이프지에 20개월 된 늙은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눈 뒤 라파마이신과 위약을 각각 투여한 결과 라파마이신을 투여받은 쥐들이 최대 60% 이상 오래 생존했다고 발표했다.

◇기대해 볼 만한 노화 치료제

건강한 삶을 위협하는 암이나 치매, 심혈관계질환 등 중증 질환의 원인은 대부분 ‘노화’에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8년 노화를 질병으로 분류했다. 노화를 자연스러운 신체의 변화가 아닌 질병으로 본다면 노화 자체가 치료 대상이 된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대의 니어 바르질라이 노화연구소장은 그의 저서 ‘노화는 치료할 수 있다’를 통해 "노화 치료제로 건강 수명을 연장할 수 있어 병치레가 잦은 인생 마지막 58년을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회춘이나 불로장생, 불로병사 등의 단어가 상상의 영역에서 벗어나 현실화될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박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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