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역 소방관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은 29일 오후 경기지역 한 소방관이 출동 후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노민규기자
경기지역 소방관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은 29일 오후 경기지역 한 소방관이 출동 후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노민규기자

#몇 년 전 화재 현장에서 동료를 잃은 경기지역 소방관 A씨는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때로 돌아간다.

A씨가 기억하는 당시는 뜨거운 열기와 고통, 그리고 슬픔이다. 화재 현장에서 함께 나오지 못하고 새까만 주검으로 발견된 동료 생각에 잠 못 이룬 채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동료의 죽음에 전 국민이 애도를 표했다. 하지만 그는 동료의 마지막 모습을 떨칠 수가 없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 수면 장애 등 여러 정신적 어려움 관련 상담·치료를 병행하고 있지만, 그날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A씨는 "두려움과 고통, 죄책감과 미안함이 뒤섞인 심정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겠냐"며 "묵묵히 참고 버티면서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숙명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비롯한 정신적 고통은 소방관의 숙명일까.

경기지역 소방관이 PTSD·우울증·수면 문제·문제성 음주 등 정신적 어려움에 놓여있다.

29일 경기도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경기지역 소방관 1천626명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또는 상담을 받았다. 전체 소방관(1만1천448명) 14% 수준으로 10명 가운데 1명 이상이 정신적 고통을 겪는 셈이다.

전국으로 범위를 넓히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지난해 소방청이 실시한 ‘전국 소방공무원 마음건강 설문조사’ 결과 2천390명 소방관이 자살 위험성 관리 필요군으로 분류됐다.

전국 5만8천299명 소방관 가운데 5만3천980명(92.6%)가 참여한 이 설문에서 PTSD는 3천93명(5.7%), 우울증은 2천379명(4.4%)으로 집계됐다. 수면 문제(1만2천310명·22.8%)와 문제성 음주(1만2천271명·22.7%)를 앓는 소방관도 10명 가운데 2명꼴로 나타났다.

자해 행동을 시도한 소방관은 2천589명(4.8%)으로 82명은 실제 극단적 선택까지 각오했다고 답했다.

이처럼 소방관들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지만, 실제 치료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 동안 우울증과 PTSD를 호소한 소방관은 2만1천271명에 달한다. 그러나 실제 치료로 이어진 경우는 2천845명에 그쳤다. 과도한 업무나 사회적 시선 우려 등이 치료받지 못한 까닭으로 꼽힌다.

경기지역 소방관 B씨는 "치료받으면 나약하다, 또는 참을성이 없다는 불편한 낙인이 찍히는 것이 사실이다"며 "때문에 스스로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대부분 치료 없이 넘기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했다. 

양효원·김도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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