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약식회담의 형식이라지만 2년 9개월 만의 한일 정상회담이 유엔총회를 계기로 미국 뉴욕에서 열렸다. 사전에 의제를 정하지 않은 형식으로, 30분가량 진행됐지만 나름 의미는 있었다는 평가다. 여기에 대통령실은 한일 정상이 "현안을 해결해 두 나라 관계를 개선할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의 이러한 얘기 뒤에는 현실적으로 불편한 지금의 한일관계를 반드시 고쳐나가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여기저기에서 우리와 일본과의 관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일본인들이 우리 한국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어찌보면 두 개로 나뉘고 있다는 얘기다. 한류는 좋아하되 한국 정치는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의 배경을 우리가 모르는 바 아니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외교 당국 간 대화에 속도를 높여야 하고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는 의지를 표명했는지 모른다. 구체적인 현안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두 나라간 최대 쟁점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의 해법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번 회담에서 구체적인 합의는 이루지 못한 것에 대통령실 측은 양 정상이 만나 해결을 위한 첫걸음을 뗐다고 의미를 설명해 앞으로 남은 문이 많다는 배경을 암시했다. 그렇다. 그간 버려둔 그리고 외면해 온 산적한 숙제들이 많다. 실제로 이번 한일정상회담에서 ‘합의했다’는 우리 측 발표에, 일본 측이 ‘확정된 건 없다’고 나오면서 막판까지 성사 여부가 불투명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나마 회담이 열린 것은 현안 해결과 관계 개선에 대한 양 정상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도 풀이된다.

알려졌다시피 이번 한일 정상에서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공유하고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해 나가자는 데도 뜻을 모았다. 북한을 놓고 벌어지는 국제정세에 두 나라가 공조해야 하는 것은 분명한 의지일 수 있어서다. 우리는 그간 한일정상회담 개최 여건이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다는 판단 속에서도 양국 정상이 유엔에서 마주 앉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다. 녹록하지 않은 주제들에 대해 벽으로 막힌 일은 서서히 풀어나가면 된다. 서로 열망을 하고 있지만 문제는 적극적이지 않은 행동에 있다. 누구라도 정상회담에 미온적인 신호를 따질 일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매달려야 우리 후손들의 미래가 밝다. 괜한 자존심 싸움이 필요 없는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이다. 먼저 손을 내미는 국가가 역사에 기억될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지 않은가.

자존심으로 이뤄질 양국 간 외교는 멀어질 뿐이다. 가장 가까운 국가간의 회담이 이러저러한 구설 속에 미뤄지고 괜한 힘겨루기로 떠 밀려질 게 아니다. ‘안 보면 멀어진다’는 속담도 있다. 아직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정부 관계자의 설명을 믿고 싶다. 우리가, 또는 일본이 서로에게 빌려야 할 손은 많다. 우선 경제문제가 그렇고 시급한 국방도 그렇다. 커 나가는 후손들의 미래는 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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