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알려져 있듯이 박물관을 의미하는 영어의 뮤지엄(museum), 프랑스어의 뮤제(musee), 독일어의 뮤제움(Museum) 등은 모두 고대 그리스의 뮤즈(Muse) 여신에게 바치는 신전 안의 보물 창고인 무세이온(museion)에서 유래한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박물관은 서기전 3세기경 이집트의 수도 알렉산드리아에 있었던 무세이온에서 비롯되었다. 아마도 이것이 세계 최초의 박물관 형태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근대적인 박물관이 등장한 것은 1909년 창경궁에 ‘제실박물관’을 개관하면서부터이다. 100년 넘게 우리와 함께 한 박물관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곳일까? 한때 중·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의무적(?)으로 방문하거나 방학 때 숙제를 하기 위해서 찾던 박물관은 그저 지루하고 재미없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박물관의 체험·교육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면서 박물관은 시민들이 가족이나 친구들과 삼삼오오 들려 자신들만의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문화공간으로 변하였다. 특히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이 늘어나면서 박물관은 학예사를 비롯한 전공자들의 리그에서 시민들이 재능기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이자 제2의 삶을 보내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수도권 지역의 새로운 문화도시로 떠오르고 있는 남양주시는 지난 2021년 3월 고종황제와 순종황제가 잠들어 계신 홍·유릉 앞에 복합문화공간인 ‘리멤버(REMEMBER) 1910’을 새롭게 조성하였다. REMEMBER 1910은 시민들이 우리 민족의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인 경술국치가 일어난 해이자, 이석영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조국 광복을 다짐하며 중국 만주로 망명을 떠난 1910년을 기억하고자 하는 남양주시의 다짐을 의미한다. 아울러 무명의 독립투사들의 피와 땀, 정신을 이어받아 지난 날의 아픈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다짐하는 역사문화공간이기도 하다.

남양주 독립운동가 102분의 명단을 새긴 ‘독립의 계단’을 시작으로 펼쳐지는 REMEMBER 1910은 역사법정, 역사감옥, 독립의 계단, 미디어 홀 등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역사법정 ; 반민족행위처벌 특별법정’은 청소년들이 직접 판사와 검사, 그리고 변호인이 되어 을사오적 등 친일파를 심판하며 올바른 역사관을 수립할 수 있는 곳으로 학교와 청소년 단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대표적인 공간이다.

REMEMBER 1910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정년 퇴임한 중·고등학교 선생님, 지역 문화활동가 등 모두 10여 명으로 구성된 ‘시민도슨트(Docent)’선생님들이다. 시민도슨트는 약 3개월에 걸친 교육과정을 이수한 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특이한 점은 일반적인 도슨트처럼 단순히 전시 관람만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전시 및 교육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는 등 학예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8월부터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남양주 독립운동가를 소개하는 특별기획전 '대한독립만세를 잇다'를 기획, 운영하고 있다. 시민도슨트는 활동비를 많이 주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명예가 따르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누가 강제로 시키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남양주를 사랑하는 분들이 조금이나마 자신들의 재능을 지역에 돌려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활동이다.

근래에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지역을 상징하는 문화공간을 조성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크고 웅장하게 건물을 짓는다고 해서 저절로 멋진 문화공간이 생겨나지는 않는다. 의식 있는 지자체와 열정 넘치는 학예사, 그리고 그 누구보다 지역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시민들이 서로 만났을 때 시민들이 언제나 찾을 수 있는 진정한 랜드마크로서의 문화공간이 탄생한다. REMEMBER 1910이 개관한 지 1년 만에 남양주의 ‘마인드마크’로 자리잡는 데에는 그 누구보다 남양주를 사랑하는 시민도슨트의 역할이 매우 컸다. 앞으로도 더욱 멋진 활동을 기대해 본다.

김규원 남양주시청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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