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꽃을 보면서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노래하는 것은 어쩌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 아닐까? 꽃의 전 생장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본 후 그 안에서 인간사 희로애락을 읽어내고 활자로 그려내는 일에 비하면 말이다. 물론 각각의 꽃과 마주할 때 작가의 심상이 담겨짐은 당연한 결과다. 지난 17일 북콘서트를 통해 공개된 김은주 작가의 포토에세이, ‘바람불어 꽃씨 날리면’은 바로 그런 책이다.

유럽이 원산지이지만 현재는 국내에서 자생중인 귀화식물 ‘쇠채아재비’. 사진=‘바람불어 꽃씨 날리면’
유럽이 원산지이지만 현재는 국내에서 자생중인 귀화식물 ‘쇠채아재비’. 사진=‘바람불어 꽃씨 날리면’

강물이 아무 말 없이 / 흘러간다 /인간사 마음대로 / 되지 않는다고 / 채근하지 마라 한다. / 하늘 높이 바람 따라 / 돌고 돌며 / 세상 속으로 떠나는 / 너의 씨앗 / 무겁던 근심 걱정 / 살포시 얹어 보낸다.

‘쇠채아재비’란 꽃을 바라보며 노래했다는, 꽃이름과 같은 제목의 이 시 역시 같은 결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작가에게 물어보니 ‘쇠채아재비’는 유럽이 원산지이지만 현재는 국내에서 자생 중인 귀화식물이란다.

지난 17일 북콘서트를 통해 포토에세이, ‘바람불어 꽃씨 날리면’을 공개한 김은주 작가. 강경묵기자
지난 17일 북콘서트를 통해 포토에세이, ‘바람불어 꽃씨 날리면’을 공개한 김은주 작가. 강경묵기자

김은주 작가는 "5~6월에 개화하는 이 꽃은 동틀 무렵부터 피기 시작해 2~3시간만 활짝 핀 후 아물어 씨앗을 품는다"며 "특히 민들레처럼 씨앗이 날아가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환상적"이라고 전했다. 또, 얼핏 보기에 민들레보다 약 20배 정도는 큰 사이즈라고 하니 가히 장관을 이룰 듯하다.

김 작가는 "정말 귀하고도 중요한 건 이 꽃들도 찰나의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20대, 30대 순간의 찰나에 제일 화려할 때가 있듯, 이 꽃들도 그런 때가 있더라. 인생에는 자연처럼 사계절이 있다고 하는데, 이 아이들을 보면서 ‘어머, 정말 사계절을 제대로 잘 지키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아주 작은 씨앗을 땅에 뿌리니 봄의 따뜻한 햇살을 받아 싹이 트고, 아직은 여리여리한 몸으로 태풍과 비바람 등 커다란 역경을 다 이겨낸 뒤 아름다운 모습의 꽃으로 자신과 만났을 때의 감동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뿐만 아니다. 서릿발 같은 바람이 겨울을 몰고 올 때쯤이면 영근 씨앗을 하나 둘 떨어뜨리고, 혹독한 겨울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는 것은 다음 해 봄에 대한 꿈을 꾸기 위함으로 느껴졌다고 그녀는 설명했다.

지난 17일 북콘서트를 통해 포토에세이, ‘바람불어 꽃씨 날리면’을 공개한 김은주 작가. 강경묵기자
지난 17일 북콘서트를 통해 포토에세이, ‘바람불어 꽃씨 날리면’을 공개한 김은주 작가. 강경묵기자

김 작가가 ‘윤회’를 마주하게 된 운명의 시간이 찾아왔던 것이다. "내가 그동안 버리지 못하고 있던 것들을 저 시간 속에 얹어서 보내볼까? 버리지 못한 것들, 버려야 될 것들을 떨어지는 작은 꽃잎에 실어서, 아니면 지나가는 바람 향기에 묻혀 날려버리면 어떨까 싶었죠. 그랬더니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어요. 또한,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우리네 삶이더라고요."

문득 북토크 당시 그녀가 가장 힘주어 말했던 대목이 떠올랐다. "작가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면 이미 여러분들 코 끝에는 향기로운 꽃내음이 들어갈 것이고, 귓가에는 소슬바람이 스쳐가는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그 순간 그것은 한낱 종이에 박힌 사진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어떤 마음을 갖고 사진을 찍었는지, 왜 굳이 그 방향에서 찍고 이런 모양을 보여주려 했는지 중점적으로 봐달라는 요청도 잊지 않았다.

책을 보면 알겠지만, 실은 그런 말들이 필요 없었지 싶다. 일단 책을 펴면 흔히 접해보지 못한 꽃들이 마찬가지로 생소한 이름표를 달고 인사를 건넨다. 자연스럽게 김 작가의 에세이로 눈을 돌려 글을 읽노라면 어느새 시선이 다시 사진으로 옮겨지길 반복하는 까닭이다.

알다시피 세상에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게 참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때로는 마주한 상황이나 느낌을 공감케 하면서도 결코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는 김은주 작가의 에세이는 보다 풍부한 사고(思考)를 경험하게 한다. 마음껏 상상력을 펼칠 수 있게 해주는 이런 책이야말로, 어쩌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 그 어느 때보다 희망과 긍정의 에너지가 필요한 요즘이다.

강경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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