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참여한 이주외국인 "자부심 느낀다"
황은화 안산시의원 "선거한 영주권자들
투표참여로 자존감…주인의식 갖게 된 것"
외국인 선거 유권자 중 상당수 '중국계'
보수권 등 반중정서에 '제한해야' 목소리
소수만 "다문화 시대 맞게 참정권 부여해야"
"이주외국인이 변화 주도해야" 주장도

 

"저는 2016년 귀화한 이후 2017년 치러진 대선부터 모든 선거에서 투표했습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인 만큼 당연히 투표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 방송인 일리야 벨라코프 씨
 

"왜 영주권자에게 투표권을 줘야 하나요? 선거라는 건 국가와 지역의 일꾼을 뽑는 것인데, 한국인도 아니고 우리나라 환경도 모르는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준다는 게 이해가 안 됩니다."  - 시민 예모 씨

 

올해 치러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한 이주 외국인들은 ‘투표는 당연한 권리’라고 강조하며 더 많은 사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소통과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들의 바람과 달리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한다. 형평성에 어긋나는 데다 투표권을 가진 이주민들이 특정 국가에 집중됐다는 이유 등으로 참정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투표 참여한 이주 외국인들 "자부심과 책임감 느껴… 기회 된다면 무조건 참여해야"

귀화한 외국인과 영주권자에게 투표는 곧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이다.

2021년 귀화한 니하트 싱크 씨는 6·1 지방선거가 생애 첫 선거였다. 그는 "후보들이 공약한 부분을 하나씩 비교하며 선택했다"며 "(외국인 정책의) 문제점을 알고 방향을 고민하는 후보를 선택하려 했는데, 그런 사람이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고 소회를 밝혔다.

니하트 씨는 "한국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정치인들의 행동이나 정책은 그 아이들에게 분명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3년 영주권을 취득한 키르기스스탄 출신 홍안나 씨는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이유로 들었다. 홍 씨는 "한국 정치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제 권리를 행사하고 싶어 투표에 참여했다"며 "한국은 ‘제2의 고향’인 만큼 한국의 미래가 저의 미래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이주 외국인의 표심이 크진 않지만, 투표의 결과가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참정권이라는 권리를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산시 1호 다문화 의원인 황은화 시의원은 "원곡동에서 만난 영주권자들은 지방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에 큰 자존감이 있었다"며 "투표 경험이 있는 분들은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투표 의사를 드러냈다. 이주 외국인들이 주인 의식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본인 선택에 대한 사명감 같은 게 있어서인지 투표한 이후 자신이 찍은 후보의 의정 활동 등을 유심히 지켜본다"며 "한국 정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해 투표장에 가지 못할 뿐이다. 결국 선거와 투표에 관한 정보를 많이 알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대림동 차이나타운 일대. 사진=인권증진보도팀
대림동 차이나타운 일대. 사진=인권증진보도팀

◇"왜 투표권을 줘야 하죠?" 부정적 시선에 움츠러든 이주 외국인들

하지만 투표권을 가진 이주 외국인들이 증가하는 것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외국인 유권자의 국적이 대부분 중국계라는 점이 주된 이유다.

이는 최근 홍콩 민주화 운동 탄압과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늘어나면서다. 미국의 여론조사 업체 ‘퓨리서치’가 지난 6월 세계 19개국을 대상으로 중국의 평판을 조사한 결과 16개국이 중국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적 인식이 80% 이상이 넘는 국가도 5곳에 달했다.

국내 반중정서도 점점 높아지는 추세를 보였다. 퓨리서치의 2013년 조사에서는 부정적 인식이 42%에 불과했으나 2017년 처음으로 60%를 넘겼고, 올해 조사에서는 80%까지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를 의식한 듯 지난 6.1 지방선거에서는 몇몇 정치인들이 외국인 영주권자의 투표권을 재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했던 김은혜 전 의원은 지난 4월 자신의 SNS에 "우리 국민은 단 한 명도 중국에서 투표하지 못하는데 10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이 우리나라에서 투표권을 가지는 건 불공평하다"며 "투표권 부여에 상호주의를 적용하고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 역시 "외국인 선거권자 중 특정 국가 출신 비중이 78.9%나 차지하는 상황은 제도 도입 취지와 다르게 민심이 왜곡되는 결과가 야기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포털 뉴스나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도 이 같은 주장에 동조하는 댓글이 많았다.

 

"우리나라 국민도 아닌데 일정 기간을 살면 투표권을 준다고?"
"투표권 있는 대부분은 중국인이라면서요? 자기 나라에서는 투표도 못 하면서… "
"대한민국 사람들만 피해 봅니다. 투표권 박탈해야 합니다."
                                                                                        -네이버 뉴스 댓글

 

윤인진 고려대 교수(사회학)은 "중국 정부가 한국을 대하는 위협적인 자세, 우리의 문화와 정체성을 부정하려고 하는 태도로 인해 중국에 대한 반감이 커진 것"이라며 "다만, 우리가 북한 주민과 북한 정권을 따로 생각하는 것처럼 중국에 대해서도 이를 구분해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주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주는 문제에 대해 시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다수가 부정적 반응을 나타냈다.

대학생 정채윤(22) 씨는 "외국인이 영주권을 획득한다고 해서 우리나라 국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이 우리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옳지 않아 보인다"는 의견을 밝혔다.

직장인 임모(37) 씨는 "청소년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도 찬반으로 엇갈리는데, 한국 국적도 아닌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은 논란은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소수지만 이주 외국인의 투표권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직장인 김석진(50) 씨는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비자를 주고 입국을 허용한 건데 정서적으로 다르다는 이유로 밀어내는 것은 다문화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그들이 가진 장점을 우리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동체적 의식을 가질 때"라고 말했다.

당사자인 영주권자들은 이런 상황을 의식한 듯 정치참여에 대한 언급을 꺼리고 있다.

투표권이 있는 영주권자 A씨는 "외국인이 참정권과 관련된 얘기를 하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어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특히 보수 정치권에서 그런 성향이 더 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조직문화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자기 소신을 말하는 것이 상당히 조심스럽다"며 "자녀들이나 주변 사람들한테도 정치 관련 얘기는 되도록 하지 말라고 입단속을 한다"고 덧붙였다.
 

이태원 일대서 만난 외국인들. 사진=인권증진보도팀
이태원 일대서 만난 외국인들. 사진=인권증진보도팀

◇이주민들의 바람 "정부의 적극적 관심통해 참정권 행사 확대돼야"

이주 외국인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참정권에 대한 적극적인 안내와 정치권의 지속적인 정책 제안을 주문했다.

영주권자인 홍안나 씨는 "선거 공보물이나 번역 자료를 외국인 커뮤니티나 대사관 등에 공유하면 선거를 알리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영어와 중국어 등 기본적인 언어 외에도 소수민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더 다양한 언어로 번역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2016년 귀화한 러시아 출신 방송인 일리야 벨라코프 씨는 "통계 자료를 보니 대한민국 내 귀화인 수가 30만 명에 육박한다"며 "적은 숫자가 아닌 만큼 이제는 정치권에서 이주 외국인에 맞춘 어젠다를 발굴하고 관련 공약을 제시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이주 외국인들이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니하트 씨는 "단번에 이뤄지지 않더라도 이주 외국인들 스스로 변화에 앞장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인권증진보도팀(이세용·이한빛·김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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