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사기 김명리 지석
1989년 광주 광남동 무덤 이장하며 34cm 종 모양의 분청사기 지석 발견
2011년 경기도 박물관 위탁… 보물 지정
가계·이력·성품·가족·제작 시기 등 안동김시 문온공파 김명리 기록 담아

1989년 경기도 광주 광남동에 위치한 무덤을 이장하면서 34cm에 달하는 커다란 종 모양의 분청사기 지석이 발견되었는데, 국내에서 처음 보는 사례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바로 안동김씨 문온공파대종회의 김명리(金明理 1368.2~1438.12)의 지석이다. 그는 고려시대 척약재(척若齋) 김구용(金九容)의 2남으로 태어나 조선시대 정4품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아버지 김구용은 고려말 도입된 새로운 성리학을 연구한 유명 학자로 당대 이색, 정몽주, 정도전, 권근 등과 교류하였다. 김명리는 신라 경순왕의 후손으로 충렬공 김방경이 5대조이고 아버지인 김구용이 과거제를 통해 중앙관리로 등장하면서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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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粉靑沙器象嵌正統四年銘金明理誌石’, 보물 제1830호, 조선(1439년), 높이 34, 지름22cm, 안동김씨 문온공파 소장, 경기도박물관 위탁 관리

이 도자기의 정식 이름은 ‘분청사기 상감 정통4년명 김명리 지석’으로 묘의 주인인 조선시대 성천도호부 부사(成川都護府副使)를 지낸 김명리의 기록을 담고 있다. 지석의 글은 무덤 주인공의 관직과 이름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김명리의 가계·이력·성품·부인과 자녀에 대한 내용을 기록하였다. 마지막으로 "정통(正統) 4년 기미년(1439, 세종21) 겨울 10월 하순 집현전직제학(集賢殿直提學)을 지낸 류의손(柳義孫)이 삼가 짓다"라 하여 만든 시기를 밝히고 있다. 김명리가 1438년 12월 죽은 후 이듬해인 정통 4년(1439) 기미년 겨울 10월 하순이다. 지석의 바닥면에는 음각으로 ‘행자 학민(行者 學敏) 산직 단동(山直 丹同)’이란 글이 새겨져 있다. 전체 모양은 종과 같은 원통형이고 위쪽에 작게 투각 장식된 연꽃봉우리(蓮峰形) 꼭지가 있다. 지석의 내용은 몸체 전면에 걸쳐 백상감 기법으로 각서(刻書)하였다. 도자의 장식기법 중 바탕 흙과 다른 흰색 흙으로 무늬를 채워넣는 백상감기법을 이용해 글을 남기고 있다.

도자기 지석 세부 바닥면
도자기 지석 세부 바닥면

지석이란 죽은 사람의 인적사항, 묘의 위치와 방향을 적어서 묘에 묻는 판석이나 도자기판을 말한다. 지석은 중국 위(魏)나라에서 유행하기 시작하였는데 무덤을 사치스럽게 꾸미는 대신, 두 장의 판석에 묘주의 기록을 새겨 묘광 앞에 묻도록 한 것에서 유래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조선시대 상류층에서 유행하였다. 고려시대 유교적 의례를 장려하면서 상·장례에 석제 판석의 지석이 등장한다. 당시 귀족들의 장례 절차는 대부분 불교 의식에 따라 행해지고, 여기에 지석이라는 유교적 매장 문화와 도교의 사상이 혼합되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성리학 이념에 따라 송나라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일상에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성종 5년(1474)년 완성한 ‘국조오례의’ 흉례는 주자가례의 내용에 따라 지석을 만들으라고 하여, 나라의 법으로 정하였다. 조선시대 전기 이렇게 유교적 의례와 규범을 장려하였지만, 여전히 고려의 불교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지석들이 제작된다. 여기 소개하는 김명리 지석도 여기에 해당된다.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 보물 제228호, 고려(1376년), 높이 2.1m, 여주 신륵사 소장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 보물 제228호, 고려(1376년), 높이 2.1m, 여주 신륵사 소장

지석의 형태를 살펴보면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 유행한 ‘석종형(石鐘形) 부도(浮屠)’와 유사한 형태로 조선 초 불교적 색채를 띠는 지석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석종형 부도의 대표적인 예는 고려 우왕 5년(1379) 고승인 나옹(懶翁)의 사리를 보관하기 위해 제작된 보물 제228호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이 있다. 몸체가 원통형이고 상단에 연봉으로 장식한 꼭지로 종모양이 매우 흡사하다. 김명리 지석의 꼭대기에도 연봉오리가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연꽃은 고려시대 위패에 등장하던 장식요소로써 ‘연화세계’ 곧 ‘극락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자기로 만든 위패형 지석에 연꽃은 중심 문양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종형 지석은 입체의 형태에 15세기 유행하던 ‘조맹부체’로 빼곡히 쓰인 기록으로, 조선 초의 사료를 보완해주는 매우 귀한 자료이기도 하며, 현재까지 발견된 지석 중 유일한 것이다.

백자 상감 진양군 영인정씨명 묘지, 국보 제172호, 조선(1466년), 높이 38, 너비 20.4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백자 상감 진양군 영인정씨명 묘지, 국보 제172호, 조선(1466년), 높이 38, 너비 20.4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이 유물은 집안에서 귀중하게 보관하던 것이었으나, 2011년 박물관에 위탁되어 학술적 가치가 밝혀지고, 이후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런 아름다운 사례는 문중의 이름을 빛낼 뿐만 아니라 경기도의 소중한 문화재로 보존되고 기록될 것이다. 지금 경기도박물관 2층 상설전시실에 가면 조선시대를 살았던 ‘김명리’의 생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김영미 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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