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박기홍 주튀르키예 한국문화원장
한국문화와 유사한 튀르키예 문화
1천500여년 전 돌궐족이 튀르키예의 뿌리
언어·음식·보자기 문화 등 비슷한 점 많아
곳곳 유적 산재 '거대한 옥외 박물관' 표현
이슬람 문화권임에도 문화적 상대성 인정

1951년 튀르키예 군인들은 전쟁으로 상처 입은 아이들의 부모를 자처하며 ‘수원앙카라학원’을 세웠다. 한국전, 그 참혹했던 전쟁 속에도 튀르키예 군인들은 수원 앙카라 학원에서 이 땅의 아이들을 보호하고 가르쳤다.

70년이 지난 지금 점차 희미해지는 앙카라학원의 의의를 재조명하기 위해 중부일보는 8월 13일부터 21일까지 튀르키예 이스탄불·앙카라 참전용사회, 튀르키예 국방부 군사역사기록보관소, 주 튀르키예 한국대사관, 적신월사(적십자) 등을 방문해 취재했다. 

중부일보는 총 10회에 걸쳐 ‘월드리포트 앙카라 학원의 기억과 기록’을 연재하며 참전 용사들의 생생한 증언과 현지 기록을 통해 한국과 튀르키예 우호관계의 원천을 재확인한다.  


형제의 나라로 일컫지만 튀르키예에 대해 잘 알려진 것은 케밥, 이스탄불과 모스크 뿐 많은 한국인에게 튀르키예 문화는 익숙치 않다.

반면 튀르키예에서 한국의 문화는 상당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튀르키예 문화 산업 역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형제의 나라’라는 표어를 넘어 튀르키예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한 대목이다.

튀르키예는 한국과 같은 우랄알타이어족으로 유사한 단어들과 의사표현 방식, 포용적 문화, 찬란한 고대 제국들의 유산 등을 품고 있어 친숙하면서도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나라다.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는 더 많은 교류와 협력으로, 더 많은 교류는 양국에 더 많은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양국 문화 교류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주 튀르키예 한국문화원 박기홍 원장을 통해 보다 상세한 양국의 교류 상황과 튀르키예의 문화를 알아본다. 다음은 그와 일문일답.

박기홍 주튀르키예 한국문화원 원장 사진=주튀르키예 한국문화원
박기홍 주튀르키예 한국문화원 원장 사진=주튀르키예 한국문화원

튀르키예 문화에 대한 소개와 한국문화와 유사점이 있다면?

"우리 민족과 튀르키예족 사이에는 1천500년의 긴 세월을 건너뛰는 역사적 친연성(親緣性)을 갖고 있다. 튀르키예와 대한민국은 아시아 대륙의 양 끝에 위치해 있지만, 튀르키예의 뿌리인 돌궐(突厥)족과 우리의 뿌리인 고구려가 이웃했던 민족이었다. 천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전쟁으로 곤경에 빠진 한국을 돕기 위한 튀르키예의 6.25 전쟁 파병이었으며 이를 통해 피를 나눈 형제국가로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이러한 피로 맺은 형제애는 2002년 월드컵 3~4위전 당시 대형 국기 응원과 지난 해 동경 올림픽 여자배구 8강전 이후 튀르키예 산불 피해를 돕기 위해 한국 국민들이 보내준 15만 그루 묘목으로 한·튀 우정의 숲을 조성하는 등 양국관계의 긴밀함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한국과 튀르키예는 무엇보다도 언어의 유사성이 있다. 튀르키예어와 한국어는 같은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해 문장 구성, 문법, 모음조화 등 거의 비슷하고 어순도 유사하다. 튀르키예와 한국 사람은 언어가 비슷해서 그런지 사고방식 면에서 일면 상통하는 점이 상당히 많고 감정의 표현 방법도 비슷하며 전통적인 관습이나 살아가는 방식에서 유사한 점이 많다. 음식과 관련해서는 한국의 숯불구이와 튀르키예 케밥이 직화구이를 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만두와 튀르키예의 만트는 소를 넣어 싸서 먹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서로 비슷한 공통점과 비교될 수 있는 요소로 볼 수 있다. 양국은 또한 소중한 무언가를 싸서 주는 보자기 문화를 가지고 있다. 오래 전부터 한국에서는 예의를 갖추면서 복을 담아준다는 의미로 보자기를 사용해 왔다면, 튀르키예 사람들은 이와 비슷한 형태로 소중한 물건을 감싸서 주는 다양한 형태의 천인 ‘보흐차(Bohca)’를 이용해 왔다. 튀르키예는 헌법상으로 1928년부터 국교가 정해져 있지 않고,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를 중심으로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이슬람 나라는 아니다. 하지만 튀르키예는 과거 이슬람의 중심이었던 오스만 제국이었기 때문에 튀르키예 사람들 대부분이 이슬람을 믿고 있고, 튀르키예 사람들의 일상 생활 속에도 이슬람이 있다. 예를 들면 튀르키예에서는 매일 5번 기도시간을 알리는 에잔(Ezan)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은 종교적인 의미를 가진 말들, 인샬라(신이 원하신다면 이라는 뜻), 마샬라(다른 사람을 칭찬할때 쓰는 말로 ‘신의 뜻’) 등을 자주 쓴다."
 

박기홍 주튀르키예 한국문화원 원장 사진=안형철기자
박기홍 주튀르키예 한국문화원 원장 사진=안형철기자

튀르키예 문화, 주목할 부분이 있다면?

"튀르키예 곳곳에는 히타이트, 페르시아, 로마, 오스만투르크 등 찬란했던 과거의 역사가 담긴 유적이 산재해 있다. 영국의 세계적 역사가 토인비가 튀르키예를 일컬어 ‘인류 문명이 살아 있는 거대한 옥외 박물관’이라 표현했을 정도로 박물관에 보관할 수 없어 야외에 방치되고 있는 유적도 상당수에 이른다. 유럽과 아시아를 모두 담고 있는 이스탄불 역사지구, 2천 개 전통가옥이 보존 돼있는 사프란볼루, 초룸 하투샤, 괴레메 국립공원과 카파도키아, 차낙칼레 트로이 고고유적지, 히에라폴리스 파묵칼레 등 17건의 문화유산과 2건의 복합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문명과 역사의 중심에 서있었던 튀르키예는 가는 곳마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원래 이슬람 국가들은 타 종교에 대해 상대적으로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많은 이슬람 국가들은 이전에 다른 종교에서 사용한 사원이나 상징물을 없앴다. 하지만 튀르키예인들은 유럽과 아시아의 가운데 위치해 다양한 문화를 접해서 그런지 문화적 상대성을 인정하는 남다른 이슬람 문화를 갖고 있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는 성 소피아 성당이 파괴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아일라 포스터
아일라 포스터
아일라 포스터
아일라 포스터

한국전, 앙카라학원과 관련 영화 ‘아일라’가 유행했다던 데 어떤 수준인지?

"2017년 공개된 한국·튀르키예 수교 60주년 기념 한·터 합작 울카이 감독의 ‘아일라’는 슐레이만 비르빌레이 하사와 전쟁고아 아일라(김은자)의 운명적인 만남과 60년만의 감동적인 재회 사연을 그렸다. 처음 두 사람의 이야기는 2010년 국가보훈처의 유엔참전용사 재방한프로그램인 MBC 다큐멘터리 ‘아일라-푸른 눈의 병사와 고아 소녀’를 통해 방영, 세상에 알려졌고 진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튀르키예 현지에도 소개돼 튀르키예 국민들의 화제와 감동을 일으켜 ‘아일라’라는 영화 제작의 계기가 됐다. 특히, 2010년 4월, 여의도 앙카라공원에서 MBC 다큐멘터리팀의 도움으로 무려 60년 만에 슐레이만과 아일라가 재회하게 된다. 슐레이만과 김은자의 이야기에 깊은 감동을 받은 잔 울카이 감독이 영화로 제작한 ‘아일라’를 2017년 공개했다. 영화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실제 영화의 두 주인공의 60년 만의 가슴 뭉클한 재회 모습과 튀르키예에 계신 아버지를 그리며 쓴 김은자의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장면이 차례로 삽입돼 감동을 줬다. 튀르키예에서 2017년 10월 27일 개봉돼 558만 관객을 돌파, 역대 관객 수 7위를 기록했고 약 370만 달러의 매출을 달성했다. 한국과 튀르키예 수교 60주년 및 2017년 튀르키예-한국 문화의 해 기념으로 열린 제1회 튀르키예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편 2017년 케이프타운국제영화제 편집상 수상, 2017년 아시안월드 필름페스티벌 관객상 수상, 2018년 팜스프링스 국제영화제 외국어 영화상 노미네이트, 2018년 세도나국제영화제 관객상 수상 등 전세계 유수영화제에 초청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2018년 6월 한국에서 개봉돼 전쟁의 아픔과 고통, 상처를 담아내 잊혀져가는 6·25 전쟁과 튀르키예인들의 희생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한국에서 공개되기 전 2017년 12월 6일, 한국-튀르키예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방한한 비날리 을드름 총리를 맞이한 문재인 전 대통령도 영화 ‘아일라’를 언급해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안형철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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