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대상] 언론사 자체 문제 제기·온라인 커뮤니티 게시물 “출소한 성범죄자가 피해자와 같은 동네에 사는 것을 제한할 수 없다”

성범죄자 출소 이후 거주 문제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의정부 갱생시설 입소를 추진하다 재구속된 아동 성범죄자 김근식에 이어 일명 ‘수원 발발이’라고 불리는 박병화가 출소 이후 화성시 대학가 주변 원룸촌에 거주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재점화됐다.

박병화는 지난 2002년 12월부터 2007년 10월까지 수원시 권선구, 영통구 빌라에 침입해 20대 여성 10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돼 15년형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했다.

화성시는 박병화를 강제퇴거 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박병화의 가족이 출소 일주일 전 위임장도 없이 박병화 도장을 이용해 대리 계약한 점을 근거로 임대차 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내보낼 계획이다.

1일 오전 화성시 봉담읍에서 열린 성범죄자 박병화 화성시 거주 반대 집회에서 지역주민들이 거주 반대를 외치고 있다. 홍기웅기자
1일 오전 화성시 봉담읍에서 열린 성범죄자 박병화 화성시 거주 반대 집회에서 지역주민들이 거주 반대를 외치고 있다. 홍기웅기자

주민들도 출소 당일인 지난달 31일부터 ‘성범죄자 퇴거’를 촉구하며 집회를 이어오고 있다. 주민들은 “박병화가 주로 원룸에 거주하는 여성을 상대로 범죄를 저질렀는데 대학가 원룸에 거주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불안감이 고조되자 화성시와 경찰은 박병화 거주지 인근에 초소와 CCTV를 설치하고 공무원을 배치하는 등 보안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출소한 성범죄자들의 거주 문제로 불안감을 호소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그렇다면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성범죄자의 거주지를 제한하는 것이 가능할까.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동네에 사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중부일보가 이를 팩트체크 했다.

 

[관련 링크]

1.'연쇄 성폭행' 박병화 출소에 지역사회 우려 목소리 고조(중부일보 10월 26일자 보도)

2."여대생 많은 원룸촌에 연쇄 성폭행범이라니…" 수원발발이 거주지 인근 학생들 불안감 호소(중부일보 10월 31일자 보도)

3.“성범죄자 거주지제한”(네이버카페 '일산아지매' 2021년 1월 6일 게시물)

4.“성범죄자 거주지 제한법 없나요?”(네이버카페 '진희맘홀릭' 2020년 12월 12일 게시물)

 

[검증 방법]

출소한 성범죄자의 거주지를 제한하는 조치가 있는지, 가해자가 피해자와 같은 동네에서 거주할 수 있는지 관련 법령을 확인하고 담당 부처인 법무부와 여성가족부에 해당 내용을 문의했다. 더불어 해외 사례는 어떤지 살펴보고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다.

 

[검증 내용]

◇출소한 성범죄자, 전자발찌 말고는 제한할 법적 근거 없어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성범죄자의 거주지를 제한하는 법률은 없다. 헌법 제14조에 명시된 ‘거주·이전의 자유’에 따라 만기 출소한 성범죄자도 자신의 거주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다만 성범죄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은 하위법률에 존재한다.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제9조2에서 따르면 법원이 성범죄자에게 전자장치 부착 명령을 선고할 때 ‘피해자 등 특정인에의 접근금지’를 준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한은 해당 법이 유일하다.

보호관찰과 전자감독 부과 여부를 심사하는 ‘보호관찰 심사위원회’가 있지만, 만기 출소자의 거주지에 대해서는 관여할 수 없다.

출소한 성범죄자가 피해자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조항.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캡처
출소한 성범죄자가 피해자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조항.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캡처

이러한 우려에 법무부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할 시에 보호 관찰관의 현장 출동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전자감독 신속수사팀의 현행범 체포, 형사처벌 등으로 조치하고 있다”면서 “장기간 시설 격리방안, 주거지·주거지역 제한 등 재범 위험성이 높은 성범죄자의 출소 후 재범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발주했다”고 설명했다.

여성가족부에도 문의한 결과 “현행법상 성범죄자의 출소 후 거주지를 제한하는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성범죄자 신상 공개, 성범죄자 알림e 서비스, 전자장치 부착 등으로 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외 국가의 거주지 제한은?

해외 국가에서는 출소한 성범죄자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을까.

미국의 경우 ‘제시카법(Jessica Lunsford Act)’을 통해 출소한 아동 성범죄자에게 평생 전자장치를 부착하고 학교 등 시설로부터 1천피트 이내 거주 제한을 적용하는 등 재범방지와 지역사회 안전을 동시에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또 출소한 아동 성범죄자가 피해자의 집 10km 이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독일은 치료를 목적으로 시설에서 생활하며 사회 적응 훈련을 하는 보호수용제를 시행하고 있다. 바로 사회에 복귀하지 않고 일정 기간 격리해 재범의 우려를 막기 위한 목적이다.

일본에서는 2007년에 ‘갱생보호법’을 제정했다.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사회 내에서 적절한 처우를 내림으로써 재범을 방지하고 범죄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해 피해자와 사회 전체를 보호하고자 도입됐다.
 

◇전문가들 “현행법으로 출소한 성범죄자의 주거지 제한 못 해”

전문가들은 관련 입법의 부재를 지적하며 재범 위험성이 높은 성범죄자를 관리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출소자도 거주 이전의 자유를 보장받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거주지를 제한하는 방법은 없다”며 “강화된 법과 새로운 제도를 통해 출소한 성범죄자의 주거권을 제한해 범죄를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정을 하더라도 개인마다 개선 교화에 정도가 달라 재범 위험성이 높은 사람이 사회에 나갈 수 있다”며 “개인의 위험성을 판단해 개선 교화를 하면서 재범 위험성을 낮춰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원 발발이' 박병화 거주지 앞에 경찰이 마찰 발생 대비를 위해 서 있는 모습. 중부일보 DB
'수원 발발이' 박병화 거주지 앞에 경찰이 마찰 발생 대비를 위해 서 있는 모습. 중부일보 DB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현재 피해자를 위한 조치는 신변 보호나 스마트워치 지급밖에 할 수 없다”며 “피해자뿐만 아니라 잠재적 피해자까지 보호하기 위해서 범죄자의 주거지 제한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갱생보호시설을 보안 시설화하는 방안으로 성범죄자의 주거지를 제한해 피해자를 포함한 지역 주민이 더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은의 성범죄 전문 변호사도 “성범죄자의 거주지를 강제로 제한하는 법이 없고 제정하기도 어렵다”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리돼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지자체와 법무부가 지원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가족부에서는 혼자 사는 여성을 위한 지원이 부족하다”며 “여성 1인 주거가 많은 지역은 순찰 빈도를 늘리거나 치안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피해자의 안전을 위한 제도를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검증 결과]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성범죄자의 주거지 제한에 대해 관련 법을 확인하고 법무부, 여성가족부, 관련 전문가에게 해당 내용을 문의한 결과 출소한 성범죄자의 거주지를 제한하는 법적 근거는 없었다.

다만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에서 전자장치를 부착한 성범죄자의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은 있었다.

따라서 중부일보 팩트인사이드팀은 “출소한 성범죄자가 피해자와 같은 동네에 사는 것을 제한할 수 없다”는 검증문은 ‘사실’이라고 판단한다.

팩트인사이드팀(이한빛 기자, 김광미·강승민 인턴기자)

※네이버에서 팩트인사이드 기사 보기
 

<<중부일보 팩트인사이드팀은 팩트체크 소재에 대한 시민들의 제안을 받고 있습니다. 이메일(jbbodo@joongboo.com)로 제안해 주시면 됩니다.>>

 

[근거자료]

1.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제9조의2)

2.법무부 대변인실 이메일 인터뷰

3.여성가족부 아동청소년성보호과 박경희 주무관 전화인터뷰

4.법무부 ‘고위험 성범죄자 재범방지 추가 대책’ 보도자료(10월 21일자, 제시카법 관련)

5.일본의 갱생보호제도 및 법령 연구(한국법제연구원)

6.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전화인터뷰

7.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전화인터뷰

8.이은의 이은의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전화인터뷰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