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공무원 근무하다 한국으로 여행
안내해준 인연으로 현재 남편도 만나
외국에서 왔다고 차별보다 친절 많아
현재는 다문화 언어강사로 활동
주한몽골여성연맹회장도 4년간 역임
이주민도 긍정적 마인드로 교류 필요

다문화人Story

다문화인 200만 시대다. 주위를 둘러보면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관념은 아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중부일보는 이에 대한 간극을 좁히고자 ‘다문화人Story’를 연재한다. ‘다문화人Story’는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다문화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소개하고 우리 사회의 변화를 함께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공무원이란 안정적인 신분도 포기했다. 여행차 들른 한국에서 평생의 배필을 만났기 때문이다. 몽골 출신 결혼 이주 여성 이슬기 씨는 그렇게 준비도 없이 한국살이를 시작했다. 어느덧 결혼 18년 차를 맞은 이 씨는 이제 여기가 몽골보다 더 편하다고 말한다. 그는 외국인이라서 차별을 받았다기보다 외국인이라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지금은 그걸 갚기 위해 다양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다. 도움받는 사람이 아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어 행복하다는 이슬기 씨. 다문화 언어 강사로 근무 중인 고양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그를 만났다.

-한국에 살게 된 이유는 뭔가

몽골에서 대학에 다닐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대부분 건설과에 다녔다. 졸업 후 건설회사에 취업한 친구들이 일 때문에 한국을 자주 왕래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다. 그래서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지난 2004년 여행을 왔다. 그때 나를 안내했던 한국인이 지금의 남편이다. 그는 여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에게 고백을 했다. 좋아한다고.(웃음) 사실 나도 남편을 처음 봤을 때부터 멋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통한 거다.

-몽골에 직장도 있었을 텐데

나는 몽골에서 공무원이었다. 수도인 울란바토르 내 자치구 정치과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직장보다 중요한 게 사랑이었다.

-여행과 사는 것은 다를 것 같다

새로 태어난 느낌이었다. 언어도, 문화도 모두 달랐다. 한국의 정치나 사회 시스템도 전혀 몰랐다. 뭔가를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열심히 공부했다.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게 어렵진 않나

특별히 어려운 건 없다. 오히려 외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주위에서 도움도 많이 준다. 어떤 이들은 차별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건 한국 사회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있다. 어쩌면 내가 몽골에서 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해 준 것이란 생각도 든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엉덩이에 보이는 검은 점을 ‘몽골 반점’이라고 부르지 않나. 그 때문인지 몽골 사람들에 대해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다.

-다문화 언어 강사로 활동 중인데 어떤 일을 하나

다문화 언어 강사는 한국어가 서툰 다문화 가정 자녀, 중도입국 청소년 등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일을 한다. 때로는 아이들의 보호자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의 생각을 파악하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본국에서 아무리 우등했던 학생이라도 낯선 문화와 부족한 한국어 능력 때문에 바보 같은 행동을 할 때가 있다. 그런 실수가 잦아지면 아이는 점점 위축감을 느낀다. 다문화 언어 강사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보다 정서적 유대감을 쌓아가면서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아이들이 많이 따를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다면

근무하던 학교를 그만둬야 할 때가 있었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아이들이 펑펑 울면서 아쉬워했다. 그중 한 학생이 본인 이름의 성을 내 성으로 바꿔 부르며 선생님 아이가 되고 싶다고 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아이들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얼마나 외로우면 이럴까’ 하는 감정도 들었다.

-왜 교육자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나

나는 두 아이의 엄마다. 그런데 한국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엄마로서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컸다. 또 내가 거주하고 있는 군포에는 몽골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들 중 내가 한국어를 제일 잘했다. 동포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다는 생각에 교육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사회 운동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주한몽골여성연맹 회장도 지낸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늘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어떤 기회로 주한몽골여성총연맹 회장에 선출돼 4년간 활동했다. 몽골에서 기자와 공무원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어서 사회 시스템을 이해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한국 시스템에 대한 정보를 빨리 파악해 알릴 수 있다면 몽골 동포들이 더 빨리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맹은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

몽골인뿐만 아니라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들은 한국어가 서툴 수밖에 없다. 자연히 정착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특히 성인이 돼서 들어오면 1분 1초가 급한데 적응에 4~5년을 투자하는 건 너무 낭비다. 그들이 목표했던 일이나 공부를 하루라도 빨리 진행할 수 있도록 한국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쉽고 다양하게 전하려 노력한다. 또 예전이나 지금이나 외롭게 지내는 몽골인들이 많다. 말도 잘 못하고 문화도 다르니까 친구를 사귀는 게 힘들다. 이들을 위해 몽골 전통 무용, 노래 공연팀 같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몽골의 정치·경제인들과 한국을 잇는 가교역할도 한다. 최근 몽골 국회의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주 외국인들이 매해 늘고 있다. 이들을 위해 조언을 해준다면

한국에 가는 것을 외국에 간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계 시민으로서 다양한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길 바란다. 동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라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인드도 함께 가졌으면 좋겠다. 한국사회는 경제력이 낮은 나라에서 오는 사람들을 소위 ’다문화‘라는 테두리 안에 넣고 사회적 약자로 분류한다. 사실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보호막에 스스로 갇히지 말고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면서 살겠다는 생각을 갖는다면 더 빨리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생활한 지 20년이 되어 간다. 감회가 있다면

한국에 온 것은 너무 좋은 결정이었다. 몽골 동포들이 봤을 때 나는 성공한 사람이다. 이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보다 도움을 주는 일이 늘어났다. 이런 위치에 올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감격스럽다.

이세용기자
사진=홍기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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