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이원익 주튀르키예 한국대사 인터뷰

"애정이 넘치는 나라, 전 국토가 박물관인 나라, 한국전의 기억이 곳곳에 남아있는 나라, 한국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나라,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와 튀르키예 사람들에 대한 이원익 주튀르키예 한국대사의 표현이다.

그의 표현처럼 튀르키예는 한국에게 단순히 하나의 의미로 정리할 수는 없는 나라이다.

이원익 대사는 한국전과 앙카라 학원은 튀르키예 사람들에게 역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양국 교류의 뿌리라고 평가한다.

그의 얘기를 듣다보면 한국전 당시 튀르키예 군인들의 앙카라학원 설립은 어쩌면 필연적인 인연으로 여겨진다.

기나긴 역사가 흘러 지금의 ‘형제의 나라’가 있기까지의 연원과 의미를 이원익 대사를 통해 되짚어본다.

이원익 주튀르키예 한국대사
이원익 주튀르키예 한국대사

◇튀르키예는 어떤 나라인가?

튀르키예는 우리 한반도의 3.5배 크기로 8천500만명에 가까운 인구를 가진 나라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이웃으로 둔 지역이자,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지역에 접한 지역으로서 많은 문명이 거쳐 가고 수많은 전쟁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는 땅을 파면 석탄이나 석유와 같은 자원이 나오지만, 튀르키예는 다양한 역사 유물이 나온다고 할 만큼 국가 전체가 야외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튀르키예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온정이 넘치는 나라라고 말할 수 있는데, 현재 시리아 난민을 포함해 400만 명이 넘는 난민을 자국 내에 받아들이고 있다. 한편, 6.25 전쟁 중에는 튀르키예 참전용사들이 한국 아이들을 위한 앙카라 학원을 설립하기도 했는데, 이처럼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면이 있는 듯 하다.

참전용사 메달 수여식
참전용사 메달 수여식

◇한국 전쟁에 참전한 튀르키예 참전용사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튀르키예를 비롯한 당시 국제사회의 참전과 지원이 없었다면 한국은 지금의 자유와 번영을 누리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튀르키예 참전 용사들은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8천 km나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 땅에서 벌어진 전투에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뛰어들었다. 튀르키예 참전용사들의 헌신과 활약은 지금의 우호적인 양국관계의 가장 중요한 뿌리가 됐다. 특히 튀르키예 참전용사들은 튀르키예에서 인기를 끌었던 영화 ‘아일라’에 나온 것처럼 한국에서 단지 전투에 참가한 것 만이 아니라, 전쟁 중에도 한국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워 이들을 돌보기도 했다. 이는 당시 튀르키예 참전용사들이 얼마나 한국과 한국 국민들을 진정으로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제 6.25 전쟁에 참전했던 튀르키예 참전 용사들은 고령의 노인이 됐고, 많은 분들이 돌아가신 것이 매우 안타깝다. 하지만 튀르키예 참전용사들이 한국 전쟁에서 보여주었던 용맹함과 헌신은 저를 포함한 한국 국민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형제 국가의 유산’이 될 것이다.

한국 정부, 시리아 국경 인근 하란에 '서울중' 설립

앙카라학원 뜻 70년만에 교육으로 보답

참전용사 한국 초청·장학사업 등 매진

서울중학교 개교식에 참석한 이원익 대사
서울중학교 개교식에 참석한 이원익 대사

◇앙카라 학원의 의미는?

전쟁 중에 학교가 파괴 돼 교실이 없어진 어린 한국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야외에서 책을 펴고 공부하던 모습을 보면서 튀르키예 참전 군인들은 한국인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은 교육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에 앙카라 학원을 세우고 운영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앙카라 학원을 소재로 한 영화 ‘아일라’가 튀르키예에서 공전의 히트를 쳤는 데, 여기 튀르키예 국민들 대부분이 이 영화를 알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근 우리 정부의 인도적 지원으로 튀르키예에 ‘서울중학교’가 설립됐다. 시리아 국경에 가까운 하란이라는 지역에 시리아 난민들과 그곳 튀르키예 학생들을 위해 세운 학교이고 개교식에 저 역시 참석한 바 있다. 주튀르키예 한국대사관은 앙카라대 한국어학과 학생들과 함께 이 학교의 이름을 뭐라고 지을지 고민했는 데, 한국어학과 학생들이 6.25 전쟁 때 한국 수원에 세워졌던 ‘앙카라 학원’처럼 ‘서울중학교’로 이름 짓자고 제안해 채택됐다. 6.25 전쟁 후 70여년만에 우리가 보답을 한 것이다. 우리는 정부 차원의 인도적 지원으로 서울중학교를 설립했을 뿐 아니라, 이후에도 서울시교육청에서 4천 여 권의 도서를 기증해 학교 내 세종도서관을 만들었다. 대사관에서도 빔프로젝터를 기증하는 등 사랑의 손길을 계속 보내고 있으며 서울중학교(튀르키예 하란) 학생들은 학교 이름을 매우 자랑스러워한다고 한다. 저도 개인적으로 서울중학교 인스타그램을 자주 보면서 ‘하트’와 응원을 보내고 있다.

앙카라시 소재 한국공원에서 진행한 6.25 행사
앙카라시 소재 한국공원에서 진행한 6.25 행사

◇참전용사에 대한 지원이 있다면?

현재 국가보훈처 주도로 튀르키예 참전용사에 대한 보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는 참전용사 및 그 가족들을 한국으로 초청하는 재방한 사업이다. 한국을 방문해 오늘날 한국의 발전상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이분들에게는 참전의 보람과 의미를 확인시켜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참전용사 후손들에 대한 장학사업도 계속하고 있으며, 한인회 등 민간단체에서도 참전용사 주택개량 사업 등 참전용사 및 후손들을 위한 다양한 보은사업을 하고 있다. 참전용사들은 튀르키예 내에서도 정부의 지원과 연금, 세금 우대 등 어느 정도의 혜택을 받고 있으므로 우리 정부의 참전용사 보은사업은 그분들의 희생과 지원을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이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측면이 크다.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 대사로서 튀르키예 지방 출장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드시 참전용사분들이나 참전용사 가족 분들을 만나서 감사를 전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미 90세가 넘으신 참전용사분들에게 제가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는 대한민국 대사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분들과 헤어질 때는 마치 마지막 작별 인사인 것처럼 서로 함께 힘찬 포옹을 하면서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다.

튀르키예, 거대 시장·인구·발달된 제조업 갖춘 이웃

대기업 넘어 부품·소재 분야 중기 진출로

튀르키예 수입대체산업 육성시 금상첨화

◇오늘날 양국 관계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양국 관계는 수천년의 역사를 거슬러 갈 정도로 오래되었지만, 오늘날 ‘형제의 나라’로 불리는 양국 관계의 토대를 만든 것은 두말할 것 없이 튀르키예의 6.25 전쟁 참전이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누구나 ‘코레가지’라고 불리는 참전용사를 부모님, 친척, 마을 아저씨로 두고 있다. 제가 만난 모든 참전용사들은 자신들의 6.25 전쟁 참전 경험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으며, 오늘날 한국의 발전과 번영을 자기 일처럼 매우 자랑스러워하고 기뻐하고 있다. 양국 관계 발전에서 특이한 점은 스포츠를 통해 양국 국민들의 우정이 더욱 깊어지는 계기가 마련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2002년 월드컵에 이어 지난해 개최된 도쿄올림픽 당시 한-튀르키예 배구 8강전을 계기로 튀르키예의 산불 소식을 접한 우리 국민들은 15만 그루의 묘목을 튀르키예에 기부했다. 스포츠를 통한 우정이 양국 국민의 환경보호협력으로 발전한 것이다. 올해는 한-튀르키예 수교 65주년이 되는 해이자, 양국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 1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이다. 1957년 수교 이래 양국관계는 정치·경제·문화·인적교류 등 다방면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해왔으며 언제나 오늘이 양국 관계의 최고의 날이었다. 따라서 앞으로도 역시 양국 관계는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다.

서울중학교 세종도서관
서울중학교 세종도서관

◇한국-튀르키예 미래 관계는?

한-튀르키예 관계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무역·투자 분야이다. 튀르키예는 유럽, 중동 등 엄청난 주변 시장과 8천500만 명의 인구, 특히 높은 젊은 인구 비율, 발달된 제조업 등을 가지고 있어 세계 10대 경제국 중 하나인 한국과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경제 파트너이다. 무엇보다 양국 경제구조는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상호호혜적 구조라는 점에서 양국간 무역·투자 규모의 확대는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다. 지금까지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포스코 등 190여개 우리 업체가 튀르키예에 진출했지만 양국 간 특별한 관계나 상호 호혜적인 무역구조를 감안하면 무역이나 투자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훨씬 더 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기업 위주의 투자 진출을 넘어 부품·소재분야의 경쟁력을 갖춘 우리 중소기업이 진출해 튀르키예의 수입대체산업 육성에 기여할 수 있다면 더욱 이상적일 것이다.

안형철기자

중부일보 취재팀=강경묵 문화부장·김용국 박사·용인외국인지원센터장·공익법인 아시아문화연구원장·안형철 문화부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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