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부채를 펼쳐 들고 시원하게 부채질해주는 은행나무 숲길로 두 바퀴를 타고 달린다. 땅에는 벌써 누런 융단을 깔기 시작했다. 흥타령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신나게 달리는데 산책하는 사람 여럿이 가을 정취에 취했는지 재미나는 이야기에 빠졌는지 횡대로 길을 막고 걷고 있다. 나는 그들의 흥을 깰까봐 자전거에서 내려 사람들 틈을 요리조리 피해 지나갔다. ‘비켜달라고 할 것이지…’ ‘미안합니다. 놀라실까 봐서요.’ 기분 좋게 대답하고 나니 자전거 바퀴가 더 가볍게 굴러간다. 예전 같으면 길을 다 차지하고 걷는 사람들을 보면 급하고 뾰족한 성질을 방울에 재워 멀리서부터 ‘딸랑딸랑’ 울려댔다. 놀라서 돌아다 보는 사람이 제 때에 길을 비켜주지 않으면 속으로 짜증을 내며 눈을 잔뜩 찌푸렸다. 내가 변하게 된 것은 외국에 다녀온 언니 말씀 때문이었다.

‘그곳은 조용한 세상이더라. 거리에서 자동차 경적을 들을 수 없고 공공장소 어디서나 높은 소리로 떠드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숙소에서 전화를 거는데 내 목소리만 유독 커 창피한 마음에 전화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달리던 자전거는 걷는 사람을 보면 방울을 울리지 않고 내려서 비켜 가면서 미안하다고 하였다. 길을 물을 때에도, 식당이나 상점에서 종업원을 부를 때에도 꼭 "미안하다"를 앞세웠다. 심지어 아파트 승강기를 타는 꼬마까지도 먼저 타고 있는 어른들에게 미안하다고 하면서 타는 게 아니겠니. 그야말로 미안함이 배어있는 사람들의 나라였다.’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의문이 생겼다. ‘미안하다’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과 군국주의자들은 다른가. 총칼로 약한 나라를 빼앗고 소녀들의 인생을 짓밟아 놓고도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강제 노역에 끌려갔던 피해자들의 보상으로 ‘98엔’, 아이스크림 한 개도 살 수 없는 ‘거금’을 보내왔다. 얼굴에 철판을 깔았거나 두 개의 얼굴을 가졌거나 야수의 DNA를 가지고 있는 것이리라. 지나친 겸손은 가식과 아첨이다. 그래서 그네들을 ‘왜놈’이라 부르게 된 건 아닐까.

누구에게라도 좋은 점은 적당히 배워야겠다.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마음의 그릇을 키우는 약으로 쓸까 한다.

염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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