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튀르키예의 연구자들
알리 데니즐리 교수·외메르 일디림 소장

앙카라학원은 한국과 튀르키예 양국교류에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많은 기록이 소실되고, 사람들의 기억은 점차 지워지면서 연구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연구가 진행돼도 한국전의 한 부분으로만 이해돼 앙카라 학원만 초점을 맞춘 연구는 더더욱 귀하다.

알리 데니즐리 교수(이스탄불 루멜리 대학 군사학 전공)는 저서 ‘터키인이 본 6.25전쟁’을 집필하는 등 튀르키예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국전 연구자로 최근 앙카라학원에 대한 연구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취재에도 일부 동행해 자문과 도움을 줬으며 현지 여러기관과 소통창구 역할을 했다.

현지 방문에 앞서 튀르키예 국방부 군사역사 기록보관소의 연구자들이 보내온 문서에서는 당시 튀르키예가 앙카라학원과 같이 지원했던 ‘타이샨학원’의 존재도 알게됐다.

타이샨 학원의 정확한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튀르키예 국방부 군사역사 기록보관소의 연구자들과 만나 얘기를 나눴다.

다음은 지난 8월 15일 이스탄불 참전용사회 인터뷰를 마치고 나눈 알리 데니즐리 교수와 일문일답.

알리 데니즐리 교수
알리 데니즐리 교수

알리 데니즐리 교수
참전국중 유일 학교·학원 만들어 교육
韓-튀르키예 비슷한 문화 가진 '닮은 꼴'
앙카라 학원 담은 '터키인이 본…' 집필
학원 규모·도움 준 사람 인터뷰 등 수록
"앙카라학원 아이들은 모두 우리의 아이
모두 찾아 기록·연구하고 시민권 줘야"

-튀르키예에게 한국전이란?

"한국전은 튀르키예 사람들에게도 역사적으로 큰 전쟁이다. 튀르키예 공화국 독립전쟁 이후 튀르키예가 치른 첫 전쟁이란 점도 중요하고 많은 인원을 파병하고 전적을 세웠다는 점도 중요하다. 튀르키예군은 한국전에서 3년 동안 총 14번의 전투를 치렀는데 대표적으로 평안도 청천지역에서 후퇴 중인 미 8군을 도와 철수한 군우리 전투, 서울탈환전투, 중국군 1만5천 명을 격퇴한 김량장리(금양장리) 전투, 중국군 3천 명을 격퇴하며 서울을 사수한 베가스전투가 있다. 미국이나 영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는 50~100명의 군인을 보냈지만 튀르키예는 5천 명의 인원을 파병해 한국을 도왔다."
 

-앙카라학원 어떤 곳인가?

"너무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국전에 참전한 나라 가운데 튀르키예만 학교, 학원을 만들었다. 한국과 튀르키예, 우리는 가족과 같이 닮아있다. 같은 인종이고 혈연적으로 가깝다. 웃어른을 공경하는 마음도 닮고 비슷한 문화가 많다. 우리는 서쪽으로 왔고 한국은 동쪽에 남아 있을 뿐이다. 이렇게 가까운 사람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만 볼 수 없었던 군인들이 음식과 옷을 제공했다. 아이들에게는 앙카라학원을 지어 자기 자식처럼 키웠다. 아이들을 위해 자기 것을 먹지 않고 아껴서 준 경우도 많았다. 나의 아버지(한국전 참전군인) 역시 한국사람들과 많은 생활을 했으며 이에 대해 전해 들었다. 또 앙카라학원에 대해 내가 쓴 책(터키인이 본 6.25전쟁)에도 일부 내용이 나온다. 책에는 한국전 당시 참전용사 가운데 앙카라학원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거나 학원 설립과 운영에 도움을 준 사람들의 기록과 인터뷰가 수록돼 있다. 나즘 뒨다르 대위, 백상기 전 주튀르키예 한국대사관 고문, 사치트 귀륀뤼 대위 등이며 이들의 기억 속에서 전선에서 아이들을 데려왔던 일화, 앙카라학원에서 아이들을 만난 일화, 앙카라 학원의 운영 규모와 방식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저서 ‘터키인이 본 6.25 전쟁’ 가운데 앙카라학원 관련 내용.
그의 저서 ‘터키인이 본 6.25 전쟁’ 가운데 앙카라학원 관련 내용.

-앙카라학원 연구 무엇이 부족한가?

"튀르키예와 한국에서 연구가 병행돼야한다. 특히 김용국 교수(아시아문화연구원장)는 모든 (앙카라학원) 아이들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각 아이들은 각자의 기록을 담은 책이나 연구가 있어야 한다. 앙카라학원 아이들 모두에게 이야기가 있으니 모든 삶을 책에 기록해야한다. 민자가 대표적인데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기록돼야한다. 튀르키예에서 민자를 초대했어야 했는데 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결국 민자가 앙카라에 찾아왔지만 자신을 돌봐줬던 쉴레이만의 무덤만 방문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과 튀르키예는 남은 앙카라학원 아이들 모두에게 튀르키예 시민권을 줘도 된다는 생각이다. 우리의 아이들이나 마찬가지라는 마음이고 교육을 받아 튀르키예에서 대학교까지 진학한 사례가 실제로 있다. 일례로 비슷한 혈통을 가진 알바니아 사람들에게 러시아에서 시민권을 준 적이 있다. 이렇게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기록으로 남겨야한다. 하지만 앙카라학원에 대한 연구자 자체가 너무 적은 것이 문제다."

다음 날인 8월 16일 앙카라 소재 튀르키예 국방부 군사역사 기록보관소에서 외메르 일디림 소장 등 연구자들과 만남을 약속했다.

방문을 위해서는 군인들이 소총을 들고 경비를 서는 삼엄한 경계를 통과해야했다. 군인들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곳에는 튀르키예 국방부 군사역사 기록보관소의 연구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은 연구자들과 일문일답.
 

무장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경계를 통과하고 나서 마주한 튀르키예 국방부 기록보관소 입구. 오른쪽으로 꺾어들어가면 무장한 군인이 지키는 바리케이트가 또 있다.
무장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경계를 통과하고 나서 마주한 튀르키예 국방부 기록보관소 입구. 오른쪽으로 꺾어들어가면 무장한 군인이 지키는 바리케이트가 또 있다.

-타이샨 학원 어떤 곳인가?

"(수북한 자료를 뒤적이며) 설립기간은 모르지만 군인들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 남아있다. 타이샨 학원은 일단 앙카라학원 옆에 있는 작은 중학교이다. 한국사람들이 지은 학교이고 원래 있던 학교이다. 이를 튀르키예군이 지원했다."

튀르키예 국방부 군사역사 기록보관소 소장 외메르 일디림
튀르키예 국방부 군사역사 기록보관소 소장 외메르 일디림

외메르 일디림 소장
"5여단 옆 타야샨학원도 지원
더 연구해서 내용 공유하겠다"

-이외에도 해양바다소년소녀단을 지원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해양바다소년소녀단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타이샨 학원에 대해서는 튀르키예군이 돈과 음식을 도와준 것이 기록돼 있다. 우리도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전부다 알고 있지 못하고 지금 말한 것이 알고 있는 것의 대부분이다. 이것이 맞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토지를 구입해 타이샨 학원에 지원했다. (앙카라학원에 토지를 구입해 전달한 것을 혼동한 것으로 추측)

튀르키예 국방부 기록보관소 연구자들과 취재진
튀르키예 국방부 기록보관소 연구자들과 취재진

-정확히 타이샨 학원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 수 있나?

"5여단 활동을 적어 놓은 문서에 타이샨 학원이 기록돼 있다. 정확히는 앙카라학원 옆이 아니라 5여단 옆에 위치한 학원이다. 하지만 여단 주둔지는 계속해서 이동했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다른 기록도 찾아보고 우리도 연구해서 관련 내용을 공유하겠다."

앙카라학원과 타이샨학원 지원기록
앙카라학원과 타이샨학원 지원기록

아쉽게도 튀르키예 국방부 기록보관소에서 현재까지 추가적으로 전달된 내용은 없지만 인터뷰를 통해 당시 튀르키예군은 앙카라학원 이외에도 한국의 교육기관을 지원하는 등 한국의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지극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중부일보 취재팀=강경묵 문화부장·김용국 박사·용인외국인지원센터장·공익법인 아시아문화연구원장·안형철 문화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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