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폭탄 돌리기이다. 화성시에서는 박병화가 안산시에서 조두순이 전입을 한다니 온 주민들이 다 난리이다. 성인 여성 여러 명을 성폭행했던 박씨는 젊은 여성들이 범람하는 수원대 앞에 원룸을 얻었고 아동성폭력범인 조두순이 이사를 가려는 곳에는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과 학교들이 즐비하다고 한다. 결국 최근에 조두순의 아내가 와서 남편이 회사원이라고 한 거짓말을 철석같이 믿고 임대차 계약을 했었던 안산시의 집주인은 백만 원을 더 주고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였다고 한다. 한편 초등학생들을 열 명 이상 참혹하게 성폭행 했던 김근식은 치료감호를 부가하는 방식으로 당분간 출소를 하여 지역사회로 돌아오지는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과거 박병화나 김근식과 같은 범죄를 저질렀던 고위험 성범죄자들은 이들뿐만이 아닐 것이기에 구체적 대안 없는 현재의 상태가 여간 답답하지가 않은 것이다.

2004년도 이런 자들에게 적용할 수도 있었을 법한 사회보호법 폐지 논의를 할 때가 있었다. 물론 범죄자를 정해진 징역기간을 넘어 부정기형으로 감호시설에 구금한다는 것은 위법한 일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이 법률을 폐지해버렸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결국 필자도 청송감호소를 방문하여 수용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연구에 참여하였었다. 당시 수용이 되어 있던 사람들은 모두 형기 만료자로서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정치권의 짐작대로 사상의 문제로 인해 소위 전향하지 않은 양심수들이 한 무리를 이루었고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들 무리도 존재했었다. 그들에 비해 다수를 차지하였던 사람들은 소위 부랑자라고 당시에 일컬어지던 절도 강도 상습범들이었다. 결국 사회적 취약계층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사회보호법 폐지의 기본 논거가 되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가장 크게 의문이 드는 대목은 우리나라의 보안감호시설에는 왜 외국처럼 성범죄자들이 많지 않은 것인지였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의 보안감호 혹은 부정기형 치료감호의 대상자들은 모두가 성범죄 상습범들이나 강간살인범들인데, 왜 그 우리나라에는 비슷한 제도의 대상에 성범죄자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까? 이제사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인데 그때는 그 답을 알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바로 당시에는 성범죄로 징역형을 선고받는 피고인들이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친고죄로 인하여 사실상 너무나 많은 성범죄들이 신고도 되지 않은 채 암수범죄화 되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20년 우리사회의 성범죄에 대한 규범은 너무나 빠른 속도로 격변하여 왔다. 그 중심에 바로 친고죄의 폐지를 불러온 조두순 사건이 존재하는 것이다. 2004년도 대법원에서 사회보호법의 존치 논거 그 어디에도 아동에 대한 성보호가 필요하다는 취지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막연히 법률을 순식간에 폐지하였다가 차후 필요가 도래하면 어찌 하는가 하는 고민이 있기는 하였으나 미국의 ‘Sexually Violent Predator Law’같은 것은 성적으로 문란한 서구사회의 일이겠거니 아무도 눈길조차 돌리지 않았다. 다들 범죄자도 형사책임을 다 소각한 다음에는 일반인과 동등한 자유권의 회복이 필요하다 결론지었다. 당시 범죄피해자들에 대한 배려 같은 것은 형사사법의 목적에 거론되지 조차 않았을 때이다. 그러나 이십년도 채 되지 않아, 일각에서는 화성시나 안산시에서의 논란에 대한 해법으로서 보호수용의 부활이 다시 언급되고 있다. 필자는 그러나 과거 청송감호소 같은 격리시설의 부활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대신 치료 목적의 야간 수용, 낮에는 전자발찌로 지리적 감시가 가능하니 외출을 하였다가 통금시간에 맞추어 귀가하여 야간에만 음란물 시청이나 성매매 등을 하지 못하게 보안적 감시를 할 수 있는 주거지로서의 수용시설이 필요함을 제안한다. 폭탄을 더 이상 시민사회에 떠맡기는 일만큼은 막아주길 기대해본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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