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참전용사의 아들을 만나다
동요 불러주던 아버지 압둘카디르 타브샨

1951년 튀르키예 군인들은 전쟁으로 상처 입은 아이들의 부모를 자처하며 ‘수원앙카라학원’을 세웠다. 한국전, 그 참혹했던 전쟁 속에도 튀르키예 군인들은 수원 앙카라 학원에서 이 땅의 아이들을 보호하고 가르쳤다.

 70년이 지난 지금 점차 희미해지는 앙카라학원의 의의를 재조명하기 위해 중부일보는 8월 13일부터 21일까지 튀르키예 이스탄불·앙카라 참전용사회, 튀르키예 국방부 군사역사기록보관소, 주 튀르키예 한국대사관, 적신월사(적십자) 등을 방문해 취재했다. 

향후 중부일보는 10회에 걸쳐 ‘월드리포트 앙카라 학원의 기억과 기록’을 연재하며 참전 용사들의 생생한 증언과 현지 기록을 통해 한국과 튀르키예 우호관계의 원천을 재확인한다.  

압둘카디르 타브샨이 우리나라 동요 ‘산토끼’를 부를 때 모습. 사진=타브샨 아들
압둘카디르 타브샨이 우리나라 동요 ‘산토끼’를 부를 때 모습. 사진=타브샨 아들

군사학교 졸업한 뒤 대한민국으로 부임
수원에 기지를 둔 기관총 부대에 배치
지뢰 폭발로 한쪽 다리를 잃은 타브샨
"한국은 또 다른 고향…전쟁 또 발생하면
남은 한쪽 다리까지 기꺼이 바칠 것이다"

우리나라의 동요 ‘산토끼’를 23세에 배우고, 결혼 후엔 어린 자식과 함께 노래하면서 80이 넘은 나이가 될 때까지 이 노래를 흥얼거린 사람. 한국전쟁 때 튀르키예 참전 용사로 대한민국에 들어와 뜨거운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느낀 주인공, 바로 압둘카디르 타브샨이다. 당초 취재 일정에 없던 그의 아들 위수튀네르 타브샨과의 만남은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성사됐다. 어쩌면 이날이 튀르키예 출장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압둘카디르 타브샨은 정통적인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해 대한민국으로 부임했다. 사진=강경묵기자
압둘카디르 타브샨은 정통적인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해 대한민국으로 부임했다. 사진=강경묵기자

아들 위수튀네르 어린시절 추억 회상
"아이들에게 '토끼산' 별명 얻은 아버지 
산토끼 노래를 좋아해 가르쳐 주셨죠"
앙카라학원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낸 듯

‘토끼산, 토끼산’해서 처음엔 동요 제목인 ‘산토끼’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그것은 타브샨이 한국에서 근무할 때 동생처럼 대해주던 동네 아이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당시 그가 터키에서 왔다고 하니 아이들이 ‘토끼산’이라 부르며 놀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산토끼’란 노래를 좋아하게 됐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께서 애기들이랑 산토끼를 부르면서 놀았다는 얘기를 자주 하셨고, 노래도 가르쳐 주셨다"면서 이내 ‘산토끼 토끼야 어데로 가느냐, 깡총 깡총 뛰면서 어데를 가느냐’라며 흥겹게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합창이 이뤄졌다. 이제는 그때의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진 아들이었지만, 그 모습은 어린시절 아버지와의 추억 속에 있는 순수한 꼬마 그 자체였다.

압둘카디르 타브샨
압둘카디르 타브샨

압둘카디르 타브샨. 그는 정통 군사학교를 졸업한 뒤 소위로 임관, 대한민국으로 오면서 수원에 기지를 둔 기관총 부대에 배치받은 인물이다. 이때 그의 나이 23세였고, 결혼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신혼이었다. 얼마나 가족이 그립고, 또 부인이 보고 싶었을까? 게다가 전쟁 상황에 헤어짐이라니, 감히 미루어 짐작하기도 버거운 일이다.

남편을 전쟁터로 보내며 흘렸을 눈물의 온도가 당장 느껴지는 듯했다. 타부샨 역시 그런 아내 생각에 눈시울을 붉혔을 터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게 타부샨은 정찰 중 지뢰 폭발로 인해 한쪽 다리를 잃고 만다. 중국과의 치열한 전투를 마치고, 적군이 모두 사망한 것으로 판단한 시점에 벌어진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에 또 다른 전쟁이 발생하면 남은 한쪽 다리까지 기꺼이 바칠 준비가 돼 있다. 한국은 내게 단순한 참전국이 아니라, 추억을 선물한 또 다른 고향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어김 없이 ‘수원 앙카라 학원’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몇 가지 일화를 통해 엿볼 수 있는 타브샨의 특징은 무엇보다 다정한 사람이라는 점이 아닐까 싶다. 지금으로 말하면 서호천이 얼었을 땐 아이들을 데리고 가 썰매를 밀어주기도 하고, 얼음 판 위에서 팽이 돌리기를 함께 할 정도로 친구처럼 지낸 듯하다.

2007년 9월 대한민국 상이군경회가 해외 6·25 참전용사를 초청했다. 사진은 2008년 9월 행사 때 모습.
2007년 9월 대한민국 상이군경회가 해외 6·25 참전용사를 초청했다. 사진은 2008년 9월 행사 때 모습.

김용국 원장은 "기본적으로 튀르키예 참전 용사분들에 대한 고마움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앙카라 학원에서 아이들을 돌봐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함이 크다"며 "아무리 작은 증거라도 착실하게 모아서 튀르키예 군인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기록하겠다. 이것이 우리가 여기까지 온 이유"라고 말했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들 위수튀네르 타브샨은 열정적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아버지 때부터 줄곧 살았다는 집안 구석구석을 안내하며 아버지의 손때 묻은 물건을 일일이 꺼내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게 보니 사방에 가득찬 옛날 사진들이 빛은 바랬지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시점에 있는 듯한 착각속에 빠지게 됐다.

압둘카디르 타브샨의 군사학교 졸업사진.
압둘카디르 타브샨의 군사학교 졸업사진.

그는 "앞으로 앙카라에 한국과 튀르키예 간 ‘형제의 나라 숲’을 만들고 싶다"며 "기념 공원을 만들어 기념비도 세우고, 두 나라가 우정을 키워갈 수 있는 문화적 공간으로 꾸밀 수 있으면 좋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튀르키예군이 당시 한국인들에게 신이 보내준 선물 같은 사람이 되길 바랐다는 말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특히,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된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는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의 발전을 기원해 본다.


◇상처입은 토끼의 꿈

상처입은 토끼의 꿈
 

아들에게 줄 선물로 준비해 간 동화책
박인자 작가가 쓴 '상처입은 토끼의 꿈'
이미 소중히 간직…재출판 계획 밝히기도

취재진은 타브샨의 아들에게 줄 선물로 박인자 작가가 지은 ‘상처입은 토끼의 꿈’이라는 책을 들고 갔다. 책 속에 그의 아버지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책이 있다는 것 조차 몰랐다가 출국 직전에야 알게 됐는데, 이미 절판된 상태였다. 부랴부랴 작가를 수소문해 연락이 닿았고 원본을 구해 복제를 할 수 있었다.

이에 김용국 원장이 "튀르키예에 오기 불과 3일 전에 알리 데니즐리 교수가 이 책을 구해서 가져와 줄 수 있냐고 부탁을 하셨다"며 "귀한 자료니까 선물로 드리고 싶었다"며 책을 꺼냈다.

김용국 원장이 압둘카디르 타브샨의 아들 위수튀네르 타브샨과 악수하고 있는 모습. 사진=강경묵기자
김용국 원장이 압둘카디르 타브샨의 아들 위수튀네르 타브샨과 악수하고 있는 모습. 사진=강경묵기자

그런데 타브샨의 아들은 벌써부터 이 책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원하는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지만 마음 만큼은 통했기에 모두가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다. 더불어 책의 내용을 한국 사람들과 공유하고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하고 싶어 책을 더 찍어야 겠다는 계획도 곁들여졌다. 책의 내용을 조금 소개해 보면 이렇다.

"머리가 하얀 84세의 타브샨 할아버지는 ‘산토끼’를 잘 부르십니다. 할아버지는 비행기를 타고 12시간을 가는 아시아 대륙, 서쪽 끝에 있는 터키 사람입니다. 타브샨은 부대 옆 담벼락 양지에 옹기종기 모인 조무래기 아이들을 봅니다. 구슬치기, 공기놀이를 합니다. 어깨동무하며 산토끼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빙그레 집니다. 여자 아이들은 짧은 저고리, 주름진 치마를 입었지요. 긴 바지, 후줄그레한 저고리의 사내아이들, 연방 코를 문질러 소매 끝이 빤질빤질한 아이도 있었습니다. 타브샨은 아이들에게 비스킷이나 초콜릿을 주며 같이 놀았지요. 어린 아이를 유난히 예뻐하고 동요 부르기를 좋아했습니다. 틈이 나면 아이들과 기쁨을 함께 했지요. 막사 안에 부모 잃은 아이들을 모아 놓고 돌봐주기도 했습니다."

취재진은 타브샨의 아들에게 ‘아버님께서 앙카라 학원의 아이들과 매우 가깝게 지내시며, 그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을 충분히 알았다’고 감사를 표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담긴 동화책을 한국 사람들에게 좀 더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강경묵기자

중부일보 취재팀=강경묵 문화부장·김용국 박사·용인외국인지원센터장·공익법인 아시아문화연구원장·안형철 문화부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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