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지 않아도 슬픔의 최전선이다
시장통 외진 골목을 걸어가며 우는 뒷모습은,

셔터에 밀려 버려진 가게 문짝들
드럼통과 생선 상자들로 굴곡진 벽
기댈 곳도 잡을 곳도 없다
바닥에 낙엽 한 장 굴러와 쌓일 형편도 아닌 그곳,

앞만 보고 걷다가 하수도 배관에 걸리고 마는 골목,
그곳은 이미 여러 번 고꾸라져 본 이들과
기댈 곳 없어 주저앉던 이들이 지나는 길,

늘어진 전선들이 노을 속에 엉켜 있는 저녁
울며 걷는 사람에게 길은 길이 아닐 때가 있다

사람이 살아가며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미 보아온 골목은
어쭙잖게 훈계나 위로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그가
슬픔을 밟고 지나가도록, 견디어주도록,

그리고, 다 지나간 다음
뒹구는 생선 상자를 제자리에 쌓고
여전히 골목의 끝이 큰길에서 보이지 않게
외진 길로 돌아앉아 있는 것,

구부러진 시장통 골목은 막다른 이가 찾아가는
시장통의 공소公所, 슬픔의 최전선이다
 

고경숙 시인

2001년 계간 ‘시현실’ 등단
수주문학상, 두레문학상, 경기예술인상, 한국예총 예술문화공로상 수상, 부천시 문화상 수상,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공로패 수상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운영위원, 목일신문화재단 이사.
시집 모텔 캘리포니아(2004), 달의 뒤편(2008), 혈을 짚다(2013), 유령이 사랑한 저녁(2016), 허풍쟁이의 하품(2020), 고양이와 집사와 봄(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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