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원인 모른 채 고통의 나날..민간인이라 정부지원 한 푼 못받아

   
▲ 24일 오후 중부전선 최전방지역인 강원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민간인 출입통제선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1970년대 마을 주변에 뿌려졌던 고엽제 피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몸이 가려워 피가 나올 정도로 긁어도 고통스러워 농약이라도 먹고 죽고 싶었는데.."

 최근 불거진 경북 왜관의 미군기지 내 고엽제 매몰 의혹사건으로 고엽제에 대한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가운데 강원도 철원군 최전방 접경지역 주민 상당수가 비무장지대에 살포된 고엽제에 노출돼 수십년째 고통을 겪고 있으나 민간인이라는 이유로 한 푼의 정부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중부전선 최전방지역인 강원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민간인 출입통제선 안에 사는 주민 김모(77)씨.

 24일 오후 영농철을 맞아 마을의 지뢰밭 옆에서 이웃과 모내기 준비를 하던 그는 과거 1970년대 마을 주변에 뿌렸던 고엽제로 인해 생긴 몸의 반점과 같은 피부병흔적을 보여주며 말문을 열었다.

 정부가 6.25전쟁 이후 방치되는 최전방지역의 황무지를 개간하기 위한 입주정책을 추진하면서 1970년에 들어온 김씨는 군인들이 간첩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는 개울 옆으로 약을 뿌리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약을 뿌린 뒤 며칠이 지나자 풀과 나무가 전부 붉게 변하면서 말라 죽는 것을 보고 '좋은 약'이라고 생각해 군인들로부터 조금 얻어 맨손으로 자신의 밭 주변에 뿌렸다.

 하지만 당시 이 약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김씨는 1973년부터 온몸이 가렵고 새빨간 점이 생기면서 진물이 나는 이상한 피부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따라 닭고기나 돼지고기, 술 등의 음식물을 먹으면 온몸이 가려워 잠조차 이루지 못하는 생활의 고통이 시작됐다.

 당시 마을 주변에서 근무하며 철모에 이 약을 담아 휴전선 초소 주변에 뿌렸던 군인 가운데 일부는 폐병이 걸리거나 심지어 눈이 먼 경우까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많은 고엽제 환자들은 나병환자를 치료하는 병원 등 유명한 큰 병원을 전전하면서 엄청난 비용을 들였지만 아직까지 피부병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김 씨는 훗날 이 약이 맹독성 제초제의 일종인 고엽제인 것을 알고 약값이라도 보태기 위해 정부에 피해 보상 등을 신청했지만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했다.

 전방지역의 고엽제 피해가 알려지면서 2000년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1967년 10월 9일부터 1970년 7월31일까지 남방한계선 인접지역에서 근무한 장병과 군무원 등에게만 정부 지원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결국 김씨는 고엽제를 뿌렸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관계당국의 말에 서울까지 오르내리던 길을 접어야 했다.

 당시 고엽제 증상을 호소하던 20여명의 주민 가운데 대다수는 결국 신청을 포기했으며 김씨 등 보상을 요구했던 주민 2명도 한 푼도 보상받지 못했다.

 김 씨는 "고엽제를 드럼통에 담아 놓고 뿌릴 때는 주의사항을 알려주었어야 하며 군인과 민간인에게 발생한 피해에 대해서는 정부가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몸이 가려워 피가 나올 정도로 긁어도 고통스러워 농약이라도 먹고 죽고 싶은적도 있었다. 약값 정도라도 받을 수 있을까 보상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답답했다"고 말했다.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와 육단리 등 민통선 북방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철책선이 있던 주변에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고엽제가 뿌려진 68, 69년을 전후로 집단 이주해철책선에서 불과 1㎞ 가량 떨어진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는데 상당수의 주민들이 40여년 동안 병명을 알 수 없는 피부병 등에 시달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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