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에 터를 둔 원로작가 민정기, 윤석남, 조성묵(왼쪽부터)이 윤 작가의 설치작품 '흰 방' 앞에 나란히 서 있다. 권영우는 건강상의 이유로 함께하지 못했다. 평균나이 73세의 작가들이 수십년간 빚어낸 작품들은 그들의 인생이었고, 또 하나의 한국이었다.

권영우(85), 윤석남(72), 조성묵(72), 민정기(62)는 한국 미술계의 내로라하는 원로작가들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개성적인 작품으로 입지를 굳힌 이들에게는 경기도에 터를 두고 작업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긴 삶의 여정 속에서 꾸준히 창작 활동을 해온 네 사람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데 유용한 전시가 있다.

경기도미술관이 개관 5주년을 맞아 기획한 ‘창창인생(創創人生)’전이다. 네 작가들이 일흔을 앞두거나 넘기고서도 ‘창의’와 ‘창조’의 결과물을 보여줬으며, 앞으로의 삶도 ‘창창’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 이들의 한국화, 서양화, 조각, 설치작품 54점과 인터뷰 영상 등을 모았다.

경기도미술관은 이들의 자료를 모으고 작업실을 방문하는 과정 등을 통해 작가들의 대표작 뿐 아니라 따끈따끈한 신작까지 선보일 수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한지를 재료로 작업한 권영우 작가의 작품을 맞닥뜨리게 된다. 언뜻 보기에는 종이만으로 작업한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전부 한지를 오리고 붙이고 떠내 입체감을 준 작품들이다. 플라스틱 생수통, 부채, 번호판 등 일상 사물에 한지를 붙여 만든 80년대 이후의 조형 작품은 환갑을 넘긴 나이에 새로운 작업을 시도한 작가의 식지 않는 창작열을 보여준다.

두 번째 섹션은 예술을 향한 열정을 억누를 수 없어 나이 마흔에 비로소 작가의 길을 내딛은 윤석남의 공간이다. 종이오리기 작업을 통한 설치 작품 ‘흰 방’이 22 x 6m의 압도적인 크기로 한 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최근 디스크 수술을 받은 작가가 퇴원하자마자 이번 전시를 위해 직접 제작한 작품이다. “우리의 온 몸이 도형이다. 파도만 빼고 전부 도형화할 수 있다”는 작가는 사람 얼굴, 꽃 등이 형상화 된 종이 수백 장을 나란히 배열해 ‘삶 너머’를 표현했다.

톱밥 재료로 쓰이는 나무 모퉁이로 조각한 86년의 작품 등 자신과 당대 여성들의 삶을 대변한 자화상 6점도 함께 전시된다.

‘메신저’ 시리즈로 잘 알려진 조각가 조성묵는 국수와 가짜 빵을 이용한 최근작을 출품했다. 산업용 발포 우레탄으로 만든 빵 덩어리가 하늘에서 빗방울처럼 쏟아지고, 소보로빵 탑과 국수밭이 하나의 풍경을 이루는 ‘빵의 진화’가 특히 흥미롭다. 설치와 조각작품으로 구체화된 작가의 섬세한 드로잉 작품은 윤석남이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한 작품.

참여작가 중 막내격인 민정기 작가는 전시작 9점 가운데 5점이 올해 그려진 최신작이다. 같은 장소의 20여년간 변화를 훑어볼 수 있는 ‘이포나루터’와 ‘벽계구곡’ 외에, 안산 선감도에 있는 경기창작센터에서 머물며 작업한 ‘선감동에서의 일몰’ 등을 선보인다. ‘고지도에 얹힌 안산’은 초상과 철탑, 도로 등이 그려진 한 폭의 현대적 민화다.

‘창창인생’전은 12월 18일까지 계속된다. 문의 031-481-7000.

이효선기자/hyosun@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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