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를 방문한 한 고등학생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마주쳤다. 공항의 포터, 버스 운전사, 이발사, 상점 점원 등 대부분의 페루 노동자들은 일솜씨가 부족하지 않은데도 같은 일을 하는 노르웨이 학생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것이었다. 나이가 든 소년은 이 의문을 “생산성이 같은 수준인 사람들인데 나라가 다르면 실질임금이 달라지게 하는 ‘시장’이란 도대체 뭔가”라는 경제학식 질문으로 정리했다.

이 소년이 바로 장하준 교수가 “경제학 부문에 인간문화재 제도가 있다면 그 1호”라고 격찬한 노르웨이 출신 경제학자 에릭 라이너트 에스토니아 탈린 공과대 교수다.

그의 신간 ‘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김병화 옮김, 부키)는 라이너트가 이후 가난한 나라는 왜 계속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지속적으로 연구한 결과물로, 2008년도 뮈르달 상 수상작이다.

이 책에는 지금은 주류 경제학에 의해 역사에서 거의 묻혀 버렸지만 지난 500년에 걸쳐 실질적으로 유럽의 경제 발전을 이끈 경제학 지식이 모두 담겨 있다.

특히 유럽은 경제 발전의 비결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영국은 경제 발전에 성공하고 스페인은 실패한 이유가 무엇인지, 이런 역사적 사실 자체를 주류 경제학은 어떻게 은폐했는지, 그 결과 가난한 나라에서 어떤 비극이 빚어지고 있는지를 지금은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문헌학적 증언과 에콰도르, 몽골, 우간다 비극의 현장에 근거해 생생하게 보여 준다.

이효선기자/hyosun@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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