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이 변화하고 있다.

대형마트처럼 카트가 설치되고, 주차타워가 세워지고, 쿠폰이 발급되고, 노래가 흘러나오고, 문화공연이 펼쳐진다.

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싼 값에 질 좋은 물건을 사서 좋고, 상인들은 다시 시장을 찾는 사람들에 절로 흥이 난다.

이 모든 변화는 “작은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고 ㈜시장과사람들의 김승일(38) 대표는 말한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 제1호 상인출신 시장문화기획자다.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직업이지만 말 그대로 시장의 문화를 기획하는 직업이다.

그는 수원 못골시장에서 시장문화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못골시장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이제 그는 못골시장 뿐만 아니라 전국의 시장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청년, 장사꾼이 되다

그는 어려서부터 시장을 놀이터 삼아 자랐지만 장사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못골시장에 와보면 현대식 주차타워가 있어요. 이 주차타워 출입구 자리가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살아내려 온 우리 집 터죠. 이곳에서 할아버지는 국수공장을 부모님은 보신탕 가게를 하셨어요.”

그가 나고 자란 곳이 못골시장이기 때문에 터줏대감이라 할 정도로 시장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다. 시장 상인들이 모두 그를 키웠다고 해도 할 정도로 그는 시장 상인들과의 유대도 깊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더 시장이 아닌, 시장보다는 더 큰 세상을 만나보고 싶었다.

“시장에서 나고 자라서 시장 일에 흥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대학에 진학을 했고 학교 부근에 방을 얻어 혼자 자취 생활을 했죠. 학교에서 동아리 생활을 하면서 풍물도 배우고 탈춤도 배웠어요. 그러면서 각종 대회에 참가하고, 시장이 아닌 다른 세상을 만나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죠.”

   
 

그렇게 대학생활에 푹 빠져 있을 때쯤 못골시장이 재정비를 하게 됐고, 재정비 후 기존에 장사를 하던 상인들이 가게를 우선임대 한다는 조건에 따라 가게를 열게 됐다. 하지만 딱히 가게를 운영할 사람이 없었다. 여기서 그의 인생이 제2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아버지는 농구심판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계셨고, 어머니도 가게를 운영하고 계셨기 때문에 장사를 할 사람이 저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덜컹 못골시장에서 장사를 하게 됐죠.”

그렇게 못골시장에 ‘아들네야채가게’를 열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있었다. 시장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채를 사오는 일부터, 파는 일, 재고정리까지. 하나도 쉬운 일은 없었다. 매번 아무런 준비 없이 들어 온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찾아 왔다.

“시장 일이라는 게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도매상에서 큰 묶음으로 들여온 야채를 작은 묶음으로 나눠 파는 일부터, 다른 야채가게들과의 가격 경쟁, 재고처리까지. 처음 몇 개월 동안은 아주 혹독하게 수업을 치렀죠.”

   
 

그 때부터 그는 시장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시장을 잘 알고 있다는 오만함을 버리고 상인의 눈으로 시장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야채가게의 가격동향을 살피고, 야채가 팔려나가는 흐름을 체크하고, 시장 안에서의 수급현황을 체크하고. 그렇게 연구하고 공부한 것을 장사에 하나둘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3년을 넘기긴 힘들었다. 그리고 만두와 찐빵을 파는 분식점으로 전업을 했고, 여기서 지금의 틀을 다지게 됐다.

“야채가게를 하면서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배우게 된거죠. 장사하는 법도 알게 됐고요. 하지만 시쳇말로 ‘3년의 벽’을 넘기기는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분식점을 열게 됐죠. 시장에 오면 누구나 찾는 것이 만두와 찐빵이잖아요. 처음에는 다른 시장에서 떼어다가 팔았는데 이왕 하는거 제대로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레시피를 개발했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맛 좋기로 소문이 나 있더라고요.”



▶못골시장, 문전성시를 이루다

야채가게를 운영하면서 노하우가 생긴데다 장사가 잘 되니 재미가 있었고,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시장사람들도 어느새 그를 어린아이가 아닌 못골시장의 자랑스런 청년 상인으로 바라봐 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시장을 위한 젊은 피가 필요하다는 상인들의 의견에 따라 본격적으로 상인회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재무담당으로 나중에는 총무로 활동했어요, 상인회가 조직되고 나니 시장에도 작은 변화가 시작됐죠.”

상인회 활동을 시작하면서 시장의 문제점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장을 바꾸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시장을 찾아오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야유회, 단합대회를 진행했고, 상인교육을 시작했다.

“시장이 바뀌려면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앞서 상인들이 변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상인교육을 시작했죠. 다행히 못골시장 상인 분들이 다른 시장 상인 분들에 비해 연령대가 낮아 쉽게 이해하고 따라와 주셨죠.”

   
 

수원시에 지원을 요청하는 작업도 함께 병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필요한 작업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어요. 아케이드 공사부터, 하수관로 정비공사 등 상인회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점이 많았죠. 그래서 시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했죠. 특히 상인회장님이 고생이 많으셨어요. 장사가 끝나면 상인회를 소집해 제안서를 만들고, 시 관계자들을 만나고,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었죠.”

그렇게 지금의 못골시장이 탄생됐다. 점포들을 정리해주는 아케이드 공사를 하고, 악취가 나는 하수관을 재정비했다. 눈에 보이는 변화가 시작되자 못골시장이 강원도의 주문진시장과 함께 정부사업의 첫 대상 시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당시 문화관광부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어요. 그때 저희 시장이 주문진 시장과 함께 선정된거죠.”

이 사업이 진행되면서 못골시장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시장에 역사·지역·문화·관광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와 상인회는 다시 바빠졌다. 사업 계획서에 맞춘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사업을 추진하기에 못골시장은 안성마춤 이었어요. 180m의 짧은 거리에 87개의 점포가 마주보고 있었고, 정조대왕, 수원화성 등 다양한 역사 문화적 요소가 많았죠.”

그는 보다 많은 효과를 내기 위해 상인큐레이터제도와 쿠폰제도 등을 도입하고, 상인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외부에서 들어온 프로젝트가 아닌 상인과 함께 만드는 프로젝트임을 끊임없이 전파하고, 참여를 유도시켰다. 그러기 위해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보이는 라디오 프로그램 ‘못골 온에어’와 상인들이 알기를 들고 참여하는 ‘못골밴드’ 등 다양한 동아리를 만들었다.

“‘나 하나쯤이야’하는 생각은 모든 것을 망쳐요. ‘나부터’라는 생각이 기획을 성공시키는 원동력이 되죠. 시장에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인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아무리 완벽한 기획이라 해도 함께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잖아요.”

그렇게 2년여 동안 진행된 문전성시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고, 이제는 시장 상인들이 자체적으로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며 꾸준히 변화의 길을 걷고 있다.



▶시장기획자가 되다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마감으로 그에게도 다시 한 번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온다.

바로 이 프로젝트를 발판삼아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회적기업 (주)시장과사람들을 열게 된 것.

“상인회 활동과 문전성시 프로젝트를 하면서 느낀점은 변화의 바람은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거였어요. 시장이 변화되니까 고객들이 찾아왔죠. 장사가 안된다,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만 하고 있으면 안돼요. 변화해야죠. 고객들이 찾아오게끔요. 하지만 전통시장에서 일하고 계시는 상인분들의 연령대가 높다보니 행정절차 등을 따르는 것을 어려워하세요. 그래서 쉽게 받을 수 있는 지원들도 잘 받지 못하죠. 쉽게 받을 수 있는 지원들도 많은데 시도조차 못해보고 눈앞에서 놓치는 경우도 허다하죠.”

   
 

그래서 그는 자칭타칭 제1호 시장기획자가 됐다. 마포나루상권활성화사업을 비롯해 수원의 팔달문시장·조원시장·구매탄시장·미나리광시장·남문 패션일번가와 공주 산성시장, 양평 맑은물시장, 평창 올림픽시장 등 전국의 크고 작은 전통시장 사업에 참여해 그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우리나라 1천500개의 전통시장들이 활성화 작업을 해야 해요. 나름의 시장문화를 만들어 사람들과 호흡하는 시장으로 거듭나야 하죠. 하지만 시장문화기획자는 턱없이 부족해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죠. 특히 젊은 청년들이 많이 뛰어들었으면 좋겠어요.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열정, 패기만 있다면 얼마든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멋진 일을 해낼 수 있으니까요.”

송시연기자/shn8691@joongboo.com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